코스피 5000 시대, ‘애널리스트'는 사라지는 역설

by 한끗

코스피 5000, 코스닥 1000 시대가 열리며 시장의 파이는 커졌다. 투자 심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지만, 정작 투자의 나침반 역할을 해온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존재감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인력과 위상 모두 축소되는 리서치 조직의 현주소, 그리고 이것이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해 본다.

15년 새 30% 증발한 애널리스트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금융투자분석사 자격증 소지자는 이달 초 기준 1,069명이다. 이는 15년 전과 비교해 30% 넘게 줄어든 수치다. 시장은 커졌는데, 시장을 분석하는 사람은 3분의 1이 사라진 기이한 현상이다.

왜 떠나는가? : "돈이 안 되니까"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핵심은 수익성이다.

• 수익 구조의 변화: 증권사의 돈벌이가 브로커리지(위탁매매)에서 IB(기업금융)와 WM(자산관리)으로 이동했다. 직접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리서치센터는 비용 부서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 낮은 보상, 높은 강도: 근무 강도는 살인적인데, 타 부서(IB 등) 대비 성과급은 낮다.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환경의 변화: 스마트폰과 MTS의 대중화로 투자자들이 정보를 얻는 경로가 다양해지며, 리서치 리포트의 독점적 지위가 약해졌다.

'인재 사관학교'의 딜레마

역설적인 건, 리서치센터 출신에 대한 시장 수요는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자산운용사(Buy-side), 기업 IR, 데이터 분석, 최근엔 AI 관련 조직까지 리서치 경험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저연차 애널리스트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여기에 "AI가 애널리스트를 대체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까지 더해져, 신규 진입마저 줄어드는 추세다.

할 말 못 하는 '벙어리 리포트'

구조적인 한계도 명확하다. 한국 증권사는 기업(법인) 영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애널리스트가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매도(Sell)' 의견을 내기 어렵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기관이 리서치를 유료로 구매하거나, 독립 리서치가 공매도 포지션을 잡고 기업의 환부를 도려내는 모델은 국내의 엄격한 규제와 이해상충 방지 조항 탓에 요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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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끗 Note

AI 시대, 오히려 '인간의 인사이트'는 더 비싸진다.

리서치 인력이 줄어드는 건 놀랍지 않다. 기업은 비용 효율화를 위해 AI 도입을 핑계로 인력을 줄이고, 대중은 "어차피 AI가 다 할 텐데"라며 이 직업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일까?

'정보(Data)'의 공급은 넘쳐나지만, '통찰(Insight)'의 공급은 말라버리는 불균형이다.

AI는 흩어진 데이터를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는 탁월하다. 하지만 행간을 읽고, 시장의 미묘한 뉘앙스를 파악하고, 숫자에 숨겨진 맥락을 연결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모두가 챗GPT가 써준 천편일률적인 요약본을 볼 때,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인간 애널리스트의 희소성은 오히려 폭등하게 된다.

또한, 리서치 역량은 금융업의 기초 체력과 같다.​

IB가 화려한 메인 요리라면, 리서치는 소금과 물이다. 당장 눈에 띄지 않고 돈이 안 되는 것 같아도, 소금이 없으면 요리의 간을 맞출 수 없고 물이 없으면 라면조차 끓일 수 없다.

기업을 분석하고 가치를 산정하는 능력 없이 제대로 된 IB 딜을 할 수 있을까?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고객 자산을 관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우리는 흔히 효율성을 좇으며 기초를 비용으로 치부하고 내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물이 마르면 배는 뜰 수 없다.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칠수록, 그 파도를 읽어내는 리서치라는 기초 체력은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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