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꽂히면 파고드는 사람은 더
초등학생 때 정육면체의 전개도를 배운다.
다들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전개도 보기를 주고 이 중에서 정육면체를 고르라는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몇 번 틀렸다.
그 뒤부터 내 머릿속 한편에는 계속해서 가상의 정육면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내가 마음대로 해체할 수 있는 걸로.
걸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반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뜨문뜨문 그 정육면체를 떠올렸다. 이리저리 굴려보고 펼쳐보고 평면도를 다시 접어서 정육면체로 만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멍 때리는 것 같기도, 아니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봤자 5학년 초등학생이었겠지만.
다음 시험에 비슷한 문제가 나왔고, 머릿속으로 전개도를 가지고 놀던 나는 쉽게 그 문제를 맞혔다. 혼자 조용히 파고든 결과였다. 그날 종례가 끝나고 책가방을 챙기는데 친한 남자애가 와서 물었다.
- 너는 이거 맞혔어?
- 응
- 전개도 문제 너무 어려워
- 아 그거 나도 처음에 그랬는데 머릿속에 정육면체 하나 만든 다음에 그걸 펼쳐 그럼 되던데?
같은 고민을 했던 경험에서 나는 들떠서 어떤 상상을 했고, 어떻게 전개도를 펼쳤다가 접었다가 했는지 비법(?)을 전수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정육면체를 어떻게 펼쳐? 하고 신기한 그리고 약간은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다.
지금까지도 그 대화가 기억난다. 무슨 이유에서 일까? 내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그 친구에겐 아니라서? 뭔가 잘한다는 사실에 또 기분이 좋아서? 정답은 없겠지.
나에게 자연스러운 행위에서 그런 건지,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하나에 빠지면 골똘히 생각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고 구조를 가진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점이 스스로도 맘에 들었다.
공부를 잘했던 이유도 이런 성격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이해될 때까지 왜?를 머릿속에서 던져가며 답을 찾으려고 파헤치고 골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탁! 되는 순간의 짜릿함을 사랑했다.
***
어른이 되고, 사람을 대하고,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다 보면 때때로 이러한 성정이 방해될 때가 있다.
저 사람의 의도를 파헤치고 싶은 욕구.
말 이면에 있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은 마음.
누군가는 이것을 통찰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이것을 쓰잘데없는 생각이라고 한다.
생각이 깊어지면 진지해지고 진지해지면 결의에 차고 비장해진다.
그런데 그런 태도로는 전개도 문제의 정답을 맞힐 수는 있어도, 내가 상상하고 추론한 누군가의 본질과 의도를 맞힐 순 없다. 설령 정답이라고 하더라도 답지가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러니까,
“비장해지지 말자”
회사 동료가 한 말이다. 누구에게 이런 말을 들어도 저런 말을 들어도 그 의도를 굳이 비장한 태도로 파헤치려 하지 말자고.
(하지만 그 비장해지지 말자를 또 비장하게 결심하는 내 자신을 보고 아휴- 한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더 먹을수록, 학업과 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치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전자에는 비장한 태도와 각오가 좀 더 필요하고, 후자는 표면 위를 사뿐 걷는 느낌을 유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물론 회사 생활이든 인간관계든 매번 어떤 말도 쉽게 흘려 내보내 지진 않겠지만,
잠깐 푹 빠지더라도 그곳이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진흙 같은 곳이 아니길. 당신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