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에 적응한 개인, 애꿎은 돌 맞다…
12월 17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대를 터치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해당 수준을 두고 “위기라 할 수 있으며 걱정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금융위기 국면은 아니지만,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태라는 진단이다.
총재는 지금과 같은 원화 약세 흐름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물가 상승률이 2%대 초·중반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사실 고환율 기조에 대한 경고음은 이미 11월부터 울리고 있었다. 당시 원화 가치가 주요 통화 대비 유독 약세를 보이자, 시장에서는 그 배경으로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에 따른 수급 요인이 지목됐다. 원화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환율은 단기적인 수급만으로 설명되는 변수는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한미 간 경제성장률 격차, 금리 차, 그리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반영된 국내 주식시장 구조 등 복합적인 요인이 환율 수준을 결정한다. 이런 구조적 요인은 조정에 시간이 걸린다.
이 총재 역시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해외 투자 쏠림을 언급한 것은 특정 집단을 탓하기보다는, 당장의 위기 국면에서 수급 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취지였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다만 이 지점에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를 먼저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 제시한 뒤, 뒤늦게 구조적 요인을 강조하는 방식은 자칫 책임의 방향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의 근본 원인이 장기 구조에 있다면, 개인의 선택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가깝다.
원화 약세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정부는 최근 국민연금과 주요 수출 대기업을 상대로 달러 매도를 유도하는 등 시장 개입에 나섰다. 국민연금은 전략적 환헤지를 통해 달러 매도 물량을 공급하고, 이를 내년 말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러한 조치만으로 원화 약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원화 약세가 단기 처방으로 반전되기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투자 심리가 이미 크게 훼손된 상황에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릴 만한 뚜렷한 재료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연말로 갈수록 비교적 작은 매도에도 환율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환율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원화 가치 하락은 곧바로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는 가계의 소비 여력을 잠식하고, 경기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미국 증시가 조정을 받을 경우,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되며 달러 강세가 나타나고, 이는 다시 원·달러 환율 상승과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만든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이 흐름 속에서 개인 투자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난 100년간 미국 주요 주가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약 10% 수준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2016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지수가 10배 안팎까지 치솟았다. 세전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해도 집을 마련하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근로자의 소득 증가율보다 아파트라는 자본 자산의 가격 상승률이 훨씬 빠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두 자릿수 이자율 덕분에 근로소득 증가율과 자산 가격 상승률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며 이 균형은 무너졌다. 소득은 느리게 오르는데, 그동안 축적된 자본은 부동산을 중심으로 더 빠르게 불어났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영원히 젊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근로소득이 비교적 높은 시기에, 노동이 가능한 시기에 최대한 자산을 마련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 속에서 연 10% 안팎의 수익률조차 부동산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게 됐다.
나는 미국 증시, 특히 M7 개별주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대단히 위험을 선호하는 투기적 투자자라고 보지 않는다. 이들은 무모한 베팅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뀐 환경에 적응한 개인들이다.
만약 이들이 198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높은 예금금리로 월급을 불려 자산을 형성했을 것이다.
ETF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산 ‘유지’가 아니라 ‘증식’을 목표로 하는 젊은 세대가 개별주로 눈을 돌리는 것 또한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그런데 이들은 어느새 고위험·고수익을 좇는 투기꾼이 되었고, 나아가 환율 불안의 주범으로까지 지목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환율에 장기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단기적 조정의 시급성을 강조하기 위해 개인의 해외 투자를 언급했을 수는 있다.
그 취지는 이해한다. 다만 구조에 적응하라고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서 선택을 한 개인에게, 이제 와서 책임까지 떠넘기는 듯한 메시지는 공정하게 들리지 않는다.
2030 서학개미 개인 투자자로서, 그리고 국내 주식에도 투자하는 한 명의 시장 참여자로서 솔직히 썩 유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