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리고 하니에게 앞설 것을 말하며 나는 하니의 등 뒤에서 밀착하여 하니가 디디는 발을 손으로 받쳐주며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내디뎠다. 이 코스의 가장 힘든 점은.. 만약 발을 헛디디거나 손을 쇠밧줄에서 미끄러져 놓치는 경우의 수가 발생하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자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감행을 결정한 것이다. 돌로미티에서 하니와 함께한 동고동락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과한 우리 앞에 하늘은 잔칫상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절경 앞에서 감탄을 하며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추억을 선물로 받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듣던 돌로미티의 장관은 조물주가 통과의례를 요구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우리 앞에는 여전히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여정 행불행의 변곡점_同苦同樂 끄트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돌로미티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난관에 봉착한 것이자, 우리 앞에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라도 하니가 헛발을 디딜까 전전긍긍하며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산행에서 자주 사용하는 깔딱고개가 아니라 전문 산악인들인 클라이머의 동작을 요구하는 깍아지른 절벽이 우리 앞에 병풍처럼 둘러져있는 것이다.
우리가 매우 느리게 절벽을 오르는 동안.. 하산 길에 오른 사람들과 우리를 뒤따라 오던 사람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서서 우리가 난관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경우의 수가 우리 앞에 놓인 것이다. 하니의 발 뒤꿈치에서 가녀린 떨림이 전해져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 한편 잠시 짬이라도 생기면 돌아갈(내려갈) 생각이 꿈만 같았다. 그 장면을 힘들게 카메라에 담아봤다. 매우 짧은 순간 뒤를 돌아보며 남긴 기록들이다.
돌로미티의 진퇴양난_進退兩難
우리가 지나온 길이 위 자료사진에는 편평하게 보이지만 사진 뒤로 보이는 풍경을 참조하면 고도를 높일수록 점점 더 가팔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은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에 쇠줄을 걸어놓은 것이다. 쇠줄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그땐 돌로미티 꽃양귀비가 우리를 마중하고 배웅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곳은 울퉁불퉁한 바위가 전부였다.
책상 앞에서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등산 장비라고는 등산화가 전부였고 동네 뒷산에서나 어울릴 법한 나무 짝대기가 우리 손에 들려있었다. 물론 배낭에는 돌로미티가 내준 생수와 쉼터에서 끓여온 따끈한 커피와 도시락과 간식이 들어있긴 했다. 이런 산행의 경험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니와 함께 공룡능선을 다녀올 때 매우 힘들어했던 난코스가 몇 군데 있었는데.. 공룡능선 끄트머리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이어지는 마지막 절벽이었다. 그곳은 기다랗게 연결된 쇠줄이 전부였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감행했던 공룡능선 가을 산행에서 짙은 안개가 가는 빗줄기로 변했다가 그친 다음이었다.
등산화 바닥은 굵은 모래알이 박혀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어떤 때는 바위에 살짝 미끄러지기도 한 것이다. 당시에는 내가 먼저 쇠줄을 붙들고 내려온 다음 하니가 뒷걸음질로 한 걸음씩 옮기는 과정이었다. 무너미 고개를 지나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한 다음.. 비선대에서 다시 설악동까지 내려올 때 칠흑 같은 깜깜한 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대략 16시간 동안 이어진 강행군에서 초주검이 된 채 설악동에서 1박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힘든 경험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그렇게 어려운 산행을 다녀왔으면 두 번 다시 그곳을 가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참 희한하지.. 온몸이 근육통에 시달리며 '죽을 맛'인가 싶다가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공룡능선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감행된 산행이 생애 처음 만난 설악산 공룡능선의 단풍이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내 준 큰 선물이랄까..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설악산으로 돌아갈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어느덧 이탈리아에 터를 일구며 살고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당시 황홀한 경험이 가슴에 그대로 남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때는 공룡능선 끄트머리에서 느꼈던 매우 위험한 상황이 생각나며 전율이 이는 것이다. 산행에서 처음 느껴본 공포심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던 것. 벼랑길을 오르다 발아래로 보니 돌로미티 리푸지오 삐쉬아두(Rifugio Pisciadù)의 속살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억만 겁의 시간이 오롯이 박제되어 있는 현장. 우리는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우리 삶에도 이런 과정이 있었을까.. 돌이켜 보니 내게 대략 서너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거나 매우 힘든 과정이 있었다. 그때마다 하늘은 나의 편에서 나의 손을 들어주었고, 나는 용케도 살아남아 꿈에 그리던 공간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퇴양난의 경우의 수에 부딪쳐 좌초하거나, 생명을 잃거나, 날개가 부러지거나,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경우의 수는 당신의 의지와 의사와 관계없이 당신을 휩쓸고 간 돌바람이었을 것. 어느 날 아침, 우리가 터를 잡은 쉼터의 뒷산(?)에 잠시 소풍 삼아 나왔던 우리 앞에 닥친 돌바람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하니의 등산화 밑에서 느껴졌던 가녀린 떨림이 아니었다면 내겐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니에게 힘에 부치는 산행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잠시 난관을 극복한 후 바위틈바구니에서 휴식을 취할 때 하니의 모습을 보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런 반면, 힘껏 고도를 높인 바위틈에서 잠시 휴식 중에 바라본 돌로미티의 전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돌로미티로 떠나기 전 검색에서 열어본 어떤 사이트에서는 '돌로미티에서 태곳적 바다를 느껴보라'라고 했다. 어느 날 바다가 융기한 그곳에 우리가 발품을 팔고 있는 것이며, 그 이전에는 물고기들이 바닷속의 돌 틈을 비집고 다녔을까.. 우리는 머지않아 태곳적 바다속의 심연을 느끼고 있었다. 바다속이 허공에 돌출된 곳..!
그동안 돌로미티 여행기를 열어본 독자분들께서는 아실 것이다. 현재의 고도와 트래킹 직전의 고도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였으며 우리는 점점 더 하늘 가까이 신선의 지경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쉬는 동안 우리가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니 청춘들이 단박에 우리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장비는 물론 안청춘이었지..ㅜ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07 Nov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