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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9. 2021

길_꿈과 환상(還上)

#3 긴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의 사진첩


지난 여정(길_기적의 손길) 끄트머리



절망적이었다. 하니는 매일 저녁 음료수 병으로 만든 핫팩을 허리에 받쳐 찜질을 했다. 물이 식으면 다시 뜨겁게 데워 찜질을 이어갔다. 어떤 때는 너무 뜨거워 천추 뼈와 엉덩이 사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대략 사정이 이러한 때 마리아가 우리에게 숨통이 트이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우리와 무슨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몸 상태도 나쁜 1인이 조수석에 앉아 그냥 눈팅만 할 것이지..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댓으니 "아직 덜 아팠구먼..ㅜ" 하는 듯한 하니의 표정이 가관이다. 그렇게 건진 사진들이 어느 날 브런치에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적 같은 일이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길_꿈과 환상(還上)


자동차가 꼬자이께 시내를 벗어나자 전혀 다른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내에서 가끔씩 보이던 초초(Chocho, 루피네스(Lupinus)를 이웃 사람들은 초초라 부른다.) 꽃이 길 가장자리에 빼곡히 줄지어 서 있다. 마치 환영인파가 도열해 있는 듯한 풍경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꽃들은 북부 파타고니아의 대표 종(種)이라 할 정도로 무리 지어 핀 꽃들이 장관이었다. 어디를 가나 초초가 마중을 나오거나 배웅을 했다. 그들의 환영을 받으며 드라이브에 나서면 환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지구촌 촌놈이 어느 날 파타고니아 여행에 나섰다가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풍경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죽으라는 팔자는 아니었던지 아니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던지.. 도로면이 비교적 매끈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흔들림에도 허리의 통증은 여전했다. 그러나 운전 중에 셔터음을 흡족해하는 마리아에게 고통을 전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값 없이 베푼 친절에 조금이라도 실망감을 안겨줄 수 없었던 것이다. 



여행자가 어느 날 숙소에만 처박혀 있는 게 얼마나 안쓰러웠으면,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 서면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이 되거나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릴 것이다. 당시 나는 후자의 경우였다. 생전 처음 겪는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알 수 없는 허리병 때문에 인디오 바위 언덕 위를 머릿속에 그리는 일이 잦아졌던 것이다. 



그런 반면 하니를 생각하면 최선을 다해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러니까 환상적인 꽃길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꿈과 현실이 뒤범벅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기나긴 여정을 계획하고 떠난 파타고니아 여행에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발병이 난 것이다. 이런 경우 나의 의사와 의지에 관계없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며 나는 물론 조상의 음덕까지 생각해 내는 것이다. 



사는 동안 이웃에 선한 일을 베풀고 공덕을 쌓았으면 하늘의 도움이 있을 것이다. 이게 하인리히의 법칙 1 : 29 : 300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모르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종교에서 부활을 말하는 것이나 환생을 말하는 것이나 업보를 말하는 것 등은 영적 사이클을 말하는 것이며, 그 실체는 육체의 자아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육체적 고통은 두 가지 중 하나로 능력 밖의 무리한 행위가 허리병을 유발한 것이다. 무거운 카메라와 배낭과 짐보따리가 주요인이었다. 반면에 마리아의 도움은 음덕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음덕은 누가 쌓은 것일까.. 



요즘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이며, 이곳에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므로 결과적으로 나는 매우 고통스럽고 위험한 순간을 잘 이겨낸 것이다. 당시 기록된 사진첩을 열어 과거를 회상해 보고 있는 것. 인간 예수와 프란체스코를 사랑한 내가 그분들을 배경에 놓고 만든 종교의 원리 대신 붓다의 길을 간 싯달타의 종교 원리를 소환하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후자의 경우가 내게 보다 더 설득력 있고 과학적이랄까.. 



하인리히 법칙과 음덕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은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며 그 과정은 높은 탑을 쌓는 과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가깝게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과 부모님을 낳아주신 조부모님과 선조님들이.. 천지신명께 기도하듯 삶을 살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명이 길고 짧은 것조차 하늘이 결정할 일이며, 부활과 윤회의 사이클 속에 놓인 인생들의 모습은 생명의 길이가 반드시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일도 아니었다. 모두 당신이 지은 업보에 따른 결과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나의 운명을 거듭되는 사이클에 비교해 보니 아직은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듯 보인다. 내게 임한 음덕이 마리아로부터 실행되고 있었다면, 나는 다시 마리아의 선행을 거울 삼아 이웃에게 선한 업보를 쌓아야 할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사진첩을 열어보니 나의 모습이 초초가 흐드러진 길 위에 오롯이 놓여있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COYHAIQUE CILE
Scritto_il 09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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