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Feb 05. 2021

길_기적의 손길

#2 긴 잠에서 깨어난 파타고니아의 사진첩


지난 여정



거리는 불과 수백 밑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 킬로미터를 걷는 듯했다. 통증 때문에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였다. 울고 싶은 힘 조차 없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런 상태로 하니에게 다가가 통증을 호소했지만 하닌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하니는 그때부터 나를 간호하느라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런 어느 날 마리아가 바람도 쐴 겸 드라이브나 하자며 제안했다. 그때 조수석에서 앉아 촬영한 기록들이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녀는 우리를 당신의 남편이 일하는 곳으로 인도했다. 도시의 풍경은 약간 삭막했지만 시외로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길_기적의 손길


잘 정비된 도로였지만 어쩌다 도로가 패인 곳을 자동차가 지나가면 나는 움찔거렸다. 작은 충격에도 극심한 통증이 허리에 전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소리를 질러 통증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그러했다면 마리아의 수고도 허사로 돌아갈 게 뻔했다. 환자를 조수석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한다는 건 누가 봐도 무리한 일 아닌가. 



어느 날 아침 마리아는 하니와 나 그리고 딸내미를 태우고 친구 툴리오의 일터를 찾아 나선 것이다. 차가 꼬자이께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주변의 풍경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마리아 덕분에 북부 파타고니아에 숨겨진 비경 곳곳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여러 번 계속 이어졌다. 


숙소 2층에서 누워있거나 1층 거실에서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타나 나의 안부를 묻곤 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서 제일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다. 마리아의 친구가 나서서 나를 응급실로 보내는 한편 그곳에서 나의 몸상태가 점검되었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마리아 친구와 잠시 다투기도 했다. 의료비용을 마리아 친구가 물겠다고 하므로 "그런 법이 어딨냐"며 말한 것이다. 마리아 친구는 "우리나라(칠레)가 좋아서 여행 온 손님인데 진료를 해주면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따지며 대들었다. 그런 잠시 후 인턴 여러 명을 대동한 한 의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하니는 여전히 내 곁에 있었다. 그들은 나를 진료하기 전에 "우리나라 사람(거주자)이 아닌데 진료해도 되나요"라며 수군거렸다. 나는 그 즉시 여행자라고 말하며 친구의 배려로 이곳에 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랬더니 "앗, 죄송합니다. 스페인어를 말할 줄 아시는군요"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의료비용이나 진찰 과정이 아니었다. 그들이 내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진통제를 주사한 것 밖에 없었다. 나의 몸상태는 전문병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관절에 문제가 생겼으며 척추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무거운 카메라는 물론 배낭과 짐보따리를 가지고 다닌 게 문제의 근원이었다. 그런 현상을 느낀 건 로스 라고스 주의 아름다운 마을 오르노삐렌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피로해진 척추가 잠시 얻어 탄 마차 위에서 비틀어지며 통증을 유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차에서 내린 후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 후 오르노삐렌에서 꼬자이께로 이동할 당시 배낭에 짐을 챙겨 넣다가 허리가 삐끗한 느낌을 처음 받은 것이다. 그때 통증이 이 도시에 도착할 때 최고조에 이른 것이며, 그때 내 앞에 두 사람의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디에와 마리아..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두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여행은 고사하고 내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이어졌는데 뾰족한 바늘로 골수를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으며 그때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곤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하니의 표정도 동시에 일그러졌다. 죽고 싶었다. 난생처럼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가까운 리오 심프슨(Rio simpson) 강의 인디오 바위 절벽 위를 생각해 내곤 한 것이다. 절망적이었다. 하니는 매일 저녁 음료수 병으로 만든 핫팩을 허리에 받쳐 찜질을 했다. 물이 식으면 다시 뜨겁게 데워 찜질을 이어갔다. 어떤 때는 너무 뜨거워 천추 뼈와 엉덩이 사이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대략 사정이 이러한 때 마리아가 우리에게 숨통이 트이는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우리와 무슨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몸 상태도 나쁜 1인이 조수석에 앉아 그냥 눈팅만 할 것이지.. 그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댓으니 "아직 덜 아팠구먼..ㅜ" 하는 듯한 하니의 표정이 가관이다. 그렇게 건진 사진들이 어느 날 브런치에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적 같은 일이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계속>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con mia moglie_COYHAIQUE CILE
Scritto_il Primo Febbra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길_꿈과 환상(幻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