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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6. 2021

피렌체에 가시 거덜랑

-FIRENZE_흐르는 강물처럼

피렌체에 가면 누구나 성냥팔이 소녀가 되는 것일까..?!!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풍경이지만 대한민국이 먹고살기 힘들고 가난하게 살 때는 앵벌이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가 하면 버스나 기차 속에서도 아무에게나 손을 내밀었다. 주로 어린아이들인 앵벌이의 얼굴은 세수 한 번 안 한 것 같고 차림은 꾀죄죄했다. 내민 손도 다를 바 없었다. 손톱 아래는 때가 새까맣게 끼어있었다. 거리에서는 자리를 펴 놓고 깡통을 앞에 두고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며 동냥을 구했다. 사람들로부터 구걸을 하려면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 했을까.. 


처음엔 그들이 불쌍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스로 길거리 등지로 구걸을 나온 게 아니라 앵벌이 조직이 관여하고 있다고 헸다. 이른바 '형아'들이 조직의 두목이 되어 그들을 길거리로 내몬 것이다. 아마도 요즘은 그런 풍경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지고 가난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세계 10위권에 드는 무역대국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노숙자나 독거노인은 있을 망정 빌어먹을 정도는 아닌 것이다. 



영상, FIRENZE_흐르는 강물처럼





피렌체에 가시 거덜랑



   서기 2021년 5월 15일 저녁(현지시각), 노트북을 켜고 사진첩을 열어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를 휘감고 도는 아르노 강변으로 향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바를레타의 저녁은 시끌벅적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로 청춘들이 외출을 나와 도시가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지금 추세라면 머지않아 정상을 되찾고 이탈리아 전역은 관광객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중 메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는 몰려드는 인파들 때문에 몸살을 앓을 게 틀림없다. 



우리가 피렌체서 사는 동안 눈에 띈 게 피렌체를 찾은 세계인들이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도 피렌체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동선을 보면 주로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 등이었다. 하니와 내가 죽기 전에 살아보고 싶었던 도시가 피렌체였으므로 다른 도시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사전에 파악한 현지 정보 등으로 최종적으로 낙점을 받은 곳이 피렌체와 사르데냐였다. 



인생 후반전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우리는 소원을 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피렌체에 관한 한 나름의 터줏대감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피렌체는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이곳에 민박집만 30개 정도가 난립하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어떤 민박집은 한 달 월세가 3000유로에 달할 정도로 기업형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분들은 코로나 시대 때문에 거의 혼절 수준일 것이다. 최소한 1년 동안 코로나가 창궐한 탓에 적자 투성이거나 어떤 곳은 문을 걸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이후 그리고 하니와 함께 이곳에 둥지를 틀 때까지 민박집을 애용했으므로 민박집 사정은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렌체에 가시 거덜랑이라는 제하의 글을 끼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피렌체에 오신 분들 다수는 1막 2일 아니면 2박 3일, 길어봤자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짧은 여정에 피렌체는 물론 가까운 피사의 사탑 등을 둘러보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이분들은 민박집에서 잠만 자고 하루 종일 발품을 팔다가 다시 발품을 파는 일을 이어가는 것이다. 



어떤 민박집에서는 아예 피렌체 지도를 복사해 놓고 피렌체 일정을 조율하기도 했다. 저긴 두오모 요긴 종탑 조금 더 가면 시뇨리아 광장 그리고 베끼오 다리 그다음 미켈란젤로 광장에 갔다가 숙소 옆에 있는 가죽 시장 등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분들은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 



한국에서 이역만리 먼 땅까지 시간들이고 비용들이고 노력한 끝에 성냥팔이 혹은 앵벌이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분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은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민박집주인이거나 한국인 길라잡이이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사전에 피렌체 등에 대한 정보를 얼렁뚱땅 대충 파악하고 바쁘게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거의 똑같다.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고 맨 먼저 들르는 곳에서 사진을 찍고 그다음 순서로 사진을 찍고 아르노 강변에 도착하면 베끼오 다리 위에서 사진 찍고 두오모 앞에서 사진 찍고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사진 찍고 사진 찍고 또 사진 찍는 기념사진 촬영이 숱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그다음이 더 재밌다. 저녁때가 되면 메디치 예배당 뒤의 계단에 쭉 둘러앉아, 길라잡이로부터 피렌체의 관련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은 어디서 많이 봤던 풍경이라 생각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서 교육받는 풍경이 딱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 속으로 빵 터지고 말았다. 길라집이가 조교로 보이는 것이다. 



생각해 보나 마나 당일치기로 그 귀한 시간을 들여 현장에서 피렌체의 어떤 유적이나 유물의 설명을 들어야 할까.. 그래도 한국인 관광객은 조금 나은 편이다. 동양인들 중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은 아예 유치원 아이들처럼 길라집이가 깃발을 들고 앞서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목적지에 다다르면 길라잡이의 설명이 이어지고 다음 목적지로 다시 졸졸 따라다닌다. 이런 풍경은 동서양 사람들이 거의 같은 풍경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치껏 이곳저곳을 찾아다니지만, 그들은 공항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내리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졸졸졸.. 



앵벌이는 형아들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성냥팔이 소녀는 술 취한 아버지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추운 날 길거리로 나가 성냥을 팔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들의 수중에는 먹고 죽을 돈마저도 없는 가난한 처지의 불쌍한 소년 소녀였다. 오죽하면 성냥팔이 소녀는 추운 날 성냥불을 켜서 몸을 데우고자 했을까.. 그 아이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동사 직전에 성냥불을 켠 것이다. 그때 환상이 보이기 사작한 것이다. 



가엾은 그 소녀는 사는 동안 해 보고 싶었던 꿈들이 환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첫 번째 켠 성냥은 커다란 난로가 됐지만 금세 꺼지고 말았다. 두 번째 켠 성냥은 푸짐한 요리가 큰 상에 차려진 환상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성냥을 켜는 순간 크리스마스 트리에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 직후 할머니는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해 남은 성냥 전부를 켜서 할머니를 보고 싶었다. 결국 소녀는 할머니 품에 안겨 천국에 도착해 할머니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몹시도 추운 겨울밤이 지나자 길거리에서 미소를 띠며 죽어간 소녀를 발견하게 됐다. 사람들은 그제야 가난한 소녀와 이웃을 돕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는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동화 속의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 크다. 당시엔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은 중세 혹은 르네상스 시대도 아닌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인데 왜 스스로 돈들이고 시간들이고 노력해서 줄 서는 일에 집착하는 것일까..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피렌체에 가시 거덜랑 이전에 봐 왔던 풍경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는 어디를 건드려도 이야기보따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스토리텔링의 도시이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인구 30만 명이 조금 더 되는 이 도시에 깃들여져 있는 것이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는 우리 삶을 메마르게 하는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집콕을 하는 동안 관련 정보와 지식 등을 쌓으면 어느 날 성냥을 하나씩 그을 때마다 시간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성냥을 켜면 미켈란젤로의 어린 모습이 눈 앞에 환하게 나타날 것이다, 둘째 성냥을 켜면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나타날 것이다. 셋째 성냥을 켜면 두오모와 종탑이.. 그리고 가슴속에 쌓아둔 성냥을 하나씩 켤 때마다 줄줄이 사탕처럼 피렌체가 당신의 가슴에 살포시 안길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당신이 어느 날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르네상스 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데자뷔 현상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짬이 나는 대로 매일 먹던 밥풀 삼매경에 빠져들지 마시고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아르노 강가로 바람을 쇠러 나가보시라. 



그곳에는 신의 그림자가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당신이 지나온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풍경이 기다리는 곳. 시간은 아르노 강물처럼 흐르고 당신을 위해 빛나던 별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당신의 영혼을 살 찌운 볕들이 가슴속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여태껏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한 호흡이 얼마나 소중한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두 눈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것이다. 한 호흡에 겹친 한 장면들.. 



우리는 매일 육신을 위해 밥을 먹고사는 동안, 게을리했던 영혼의 양식에 갑자기 허기가 몰려들 것이다. 그리하여 잠시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새로운 다짐과 함께.. 여태껏 꾸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어떤 소녀는 너무 추워서 성냥불을 켜고 환상을 보았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당신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신의 그림자를 위해 성냥불을 켜지 않는다. 신의 그림자를 위해 성냥불을 켜는 순간부터 당신의 가슴에 별이 반짝일 것이다. 그 별은 장차 당신이 꿈꾸던 나라로 인도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La primavera fiorentina del Rinascimento_FIRENZE
il 16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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