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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5. 2021

어느 꽃양귀비의 항변(抗辯)

#3 꽃양귀비가 살고 있는 작은 행성의 아침

   어느 날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의 지방법원에 희한한 사건이 일어났다. 농민들이 식물을 고소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농민들이 고소한 식물은 봄철에 빨간 꽃잎을 내놓는 꽃양귀비였다. 고소 취지는 이 식물이 당신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꽃양귀비 무리는 즉각 대표를 선정하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항변하는 한편 원고 측이 제시한 증거물 등에 대해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원고 마르코(가명) 외 수천 명의 농민이 고소한 사건에 대해 피고 대표 꽃양귀비는 변호인 1인을 대동하고 외롭게 대항하고 있다. 변호인은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대한민국 사람으로 뿔리아 주에 살고 있었다. 보통은 변호인이 이탈리아인이어야 마땅하지만 한국인이 변호를 맡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인:한국인의 법정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원고 측은 변론기일을 통해 당신들이 입은 피해 전부를 재판부에 일러바치는 한편,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증거를 내놓으며 피해 보상은 물론 꽃양귀비를 나라 밖으로 추방하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꽃양귀비 측은 농부들이 자기들밖에 모르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들임을 주장하며, 소송의 책임은 전적으로 이들 농부들에 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그런 한편 농부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자신들의 손해에 합리적이고 충분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농토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농부들 때문에 그들의 삶의 터전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주장이 불꽃을 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원고가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갑 제1 호증이 사실입니까?"


하고 재판부가 묻자, 그 즉시 "네"하고 대답하며 꽃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핀 뿔리아 주 바를레타 인근의 농토를 보여주었다. 재판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갑 제1 호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원고는 다른 입증 자료도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비슷한 증거자료 갑 제2 호증을 내밀었다. 재판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갑 제2 호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재판부가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농작물이 자라야 할 땅에 양귀비와 풀꽃이 가득한 모습 때문이었다. 원고 측의 주장 사실이 그럴듯했다. 그런 한편 피고 측의 주장 사실이 옳은지 등에 대해 심문이 시작됐다. 심문기일을 통해 피고 측이 제시한 주장 사실은 이러했다.



"피고가 재판부에 제출한 주장 사실이 전부 사실입니까..?"


하고 재판부는 꽃양귀비 측 변호인에게 물었다. 변호인의 부인과 항변을 통해 원고 측의 주장 사실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변호인이 이탈리아에 살면서 목격한 사실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을 했다. 그 가운데는 인류문화사와 식물의 기원까지 언급되고 있었다. 예컨대 인간들이 지구촌에 등장한 시간이 대략 몇 백 만년이라면 식물들의 기원은 수 억년도 더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이었다. 이 땅의 원래 소유주는 식물들이었으며, 인간들이 나중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등기를 하면서부터 식물들은 인간들의 장식품 정도로 여긴 것이랄까.. 피고 변호인 측의 부인과 항변이 이어지자 대표로 법정에 출석한 꽃양귀비는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속으로 나지막하게 "맞아요. 옳아요"라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동안 자신들이 부자 농부들 때문에 겪은 서러운 현장을 기억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농부들이 곳곳에 산재한 이탈리아에서 농부들은 늘 꽃양귀비 타령을 하며 '미운 오리 새끼' 대하듯 한 것이다. 농사를 망치는 주범이 꽃양귀비였을까..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피고 측 변호인은 그동안 당신이 목격한 꽃양귀비의 억울한 누명을 하나씩 재판부에 항변을 했다. 그들은 학교 옆 울타리에 아름답게 피어있어도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바닷가 언덕은 물론 집 앞 공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어느 곳으로 가도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 재판부가 피고 측에 물었다.


"그러니까 이탈리아인들이 꽃양귀비를 우습게 여긴 사실이 농부들 때문이며, 이들이 외면을 당한 주요 사실이란 거죠? 맞습니까?"



그러자 피고 측은 즉각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꽃양귀비를 거들떠보지 않는 이유가 농부들의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즉각 재판부의 심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피고 측의 주장 사실은 사람들의 먹거리 농사와 다르다는 거죠?"


피고 측 변호인은 차분하게 또박또박 재판부를 향해 꽃양귀비의 쓸모 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인간은 밥만 먹고사는 동물이 아닙니다. 밥은 인체를 살찌우지만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은 영혼을 살찌우는 거죠. 하늘이 내린 꽃양귀비가 그러합니다. 이들이 저를 변호인으로 내세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혜량해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재판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꽃양귀비는 씩~웃어 보였다. 당신의 쓸모에 대해 동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재판부는 다시 피고 측 변호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영혼을 살찌운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피고 측 변호인은 휴대폰을 꺼내어 서기에게 건네주며 재판부가 참고하도록 했다. 을 제1 호증이 현장에서 제출된 것이다. (그곳에는 내가 꿈꾸는 그곳 브런치가 열려있었다.) 그러자 원고 측이 긴장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증거가 휴대폰 속에 들어있다는 말인가" 싶은 것이다. 그곳에는 꽃양귀비가 그들의 이웃 풀꽃들과 함께 아름답고 고혹적인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볼 수 있도록 휴대폰을 건넸다. 원고 측은 사색이 됐다. 당신들은 밥만 주장했지만,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제사 깨닫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얼굴이 굳어진 그들의 표정을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 기일에 선고를 하도록 하고요. 기일은.. 가만있자(달력을 보며).. 최대한 빨리 잡도록 하겠습니다."



선고기일이 다가오자 꽃양귀비 나라는 난리가 났다. 마침내 누군가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파하게 된 것이다. 원고 측은 아예 법정에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간략하게 사건을 정리하고 곧 선고에 들어갔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한국인들의 꽃양귀비 사랑을 극찬하며 이렇게 선고했다.


"한국인들의 꽃양귀비 사랑이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고 꽃양귀비의 무죄를 선고한다. 원고는 피고에게 사죄할 것을 명하며 피고의 동의 없이 함부로 밭을 갈아엎는 일이 없도록 명한다. 만약 이러한 일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농토를 지방법원이 관리하게 될 것이다. 땅땅땅!!~"


Su un piccolo pianeta abitato dai papaveri_con Mia moglie
il 14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in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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