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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May 14. 2021

흙 없는 마을에 남긴 우리의 흔적들

#10 파타고니아 깊숙이 숨겨진 작은 마을 깔레타 토르텔

누구든지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운명.. 현재 나의 좌표는 어디쯤일까..?!!



   브런치를 열자마자 눈에 띄는 사진은 하니가 찍어준 몇 안 되는 사진 중에 하나이다. 이곳은 중부 파타고니아 깊은 곳에 위치한 깔레따 또르뗄(Caleta Tortel)이란 곳이다. 칠레의 아이센 주(regione di Aysén)에 속하는 깔레타 토르텔은 대략 500여 명이 몰려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의 중심에는 흙이 없는 것이다. 상상이 가시는가.. 세상에 흙이 없는 마을도 있었던 것이다. 


마을은 거대한 피오르드(Fiordo) 기슭 바닷가에 만들어졌으며, 마을을 떠 받치고 있는 것은 나무로 만든 도로와 골목이었으며, 집들 또한 목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쉽게 상상이 안 가실 것이다. 지도에서 만난 칠레의 동태평양의 피오르드가 매우 궁금했지만, 막상 이곳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별천지라는 말이 어울렸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 처했어도 살아가기 미련이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래전에 사라졌던 원주민(인디오)의 후손을 만났으며, 파타고니아 깊숙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던 야생화는 물론 살아있는 생태계의 보고를 만나기도 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제외한 여타 지역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그리고 마을 뒷산에 올라 피오르드 협만을 굽어보며.. 갈 수 있는 데까지 먼 곳으로 가 보고 싶었던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사노라면 지치고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잊고 싶은 일도 부지기 수일 것이다. 그때 무기력해진 당신의 존재감을 회복하고 삶에 희망을 북돋울 수 있는 먼 나라 여행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곳에서 만난 건 흥미로운 구조의 마을뿐만 아니었다. 자기 이웃은 물론 먼 우주와 소통하고 있었던 풀꽃들까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꽃잎을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절망에 익숙했다면 꽃을 내놓았을까.. 사진첩을 열어놓고 보니 나부터 먼저 가슴이 설렌다.


이렇게 깔레따 또르뗄의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때(흙 없는 마을 찾아가는 길)는 지난 1월 25일이었다. 그리고 관련 포스트(마냥 걷고 싶은 흙 없는 마을)를 마지막으로 연재한 때는 3월 10일이었다. 사정상 연재를 중단했다가 오늘 다시 시작한 것이다. 연재가 중단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계절(봄)에 맞는 포스트를 작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녹음이 짙어가는 5월부터는 생각만큼 큰 이벤트가 없는 게 계절의 특징이다. 아름다운 브런치를 추구하는 내게 계절이 미치는 영향이 꽤나 큰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작성되는 포스트는 의미가 크다.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촌을 힘들게 하는 코로나 19 때문에 우리는 원치 않았던 별리를 경험했고, 그 시간이 어느덧 7개월째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지구촌에서는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지금도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했는데 사는 게 그런 모습이다.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 있어서 죽고 사는 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며, 어느 날 코로나가 우리네 삶에 끼어든 것이다. 



그나마 우리는 견우와 직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는 시간에 관련 유가족들의 슬픔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다. 고민은 인간의 몫인 것이다. 하니와 나는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이곳 깔레타 또르텔에서 처음으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느낌을 받았다. 


흙 없는 마을의 나무로 만든 도로 끝까지 가 봤더니, 그곳에 유일하게 작은 습지와 사구와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흙 없는 마을에 유일하게 흙이 있는 곳. 



그곳은 리오 코크랑(Rio cochrane) 강과 맞닿은 곳이었으며 더 나아갈 곳이 없었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눈에 보이는 건 거대한 피오르드뿐이었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바닷가는 마치 불시착한 어느 비행사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을 준 곳이다. 


이 먼 곳까지 진출한 여행자의 텐트가 눈길을 끈다.


우리가 잘 아는 생텍쥐페리(앙투안 마리 장 바티스트 로제 드 생텍쥐페리, Antoine Marie Jean-Baptiste Roger de Saint-Exupéry)는 그의 역작 <어린 왕자>에서 어느 날 두 가지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사막에 불시착한 그는 고장 난 엔진을 수리해야만 했다. 엔진 수리가 불가능하면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희박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아니 구세주를 만든 것이다. 그가 어린 왕자였다. 소설 속에서 비행사는 두 가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당신이 태어난 별자리로 돌아가느냐 하는 운명과 마주치는 것이다. 쉬운 듯 어려운 대단한 설정이 소설에 깃든 것이다. 고장 난 비행기와 어린 왕자..



생떽쥐페리는 지금으로부터 121년 전이었던 1900년 6월 29일에 태어났으며 1944년 7월 31일(추정)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44년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북서 아프리카, 남대서양, 남아메리카 항공로의 개척자이며, 야간 비행의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처럼 1944년 7월 마지막 비행 도중에 행방불명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0년에 그의 유품으로 보이는 비행기 부품이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그가 행방불명된 이유는 비행기의 고장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고 악착같이 살아보려고 한다. 100년을 넘어 천년을 살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을 최소한 100년 정도를 거꾸로 돌려 과거로 돌아가면, 그의 죽음을 예견해 볼 수 있다. 



생떽쥐페리의 생애에 관한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리옹에서 귀족 중의 귀족 집안(백작 신분인 귀족 아버지와 귀족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성주였으므로 성(城)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1904 년에 괴한의 습격으로 사망했는데.. 가장을 잃자 생떽쥐페리의 어머니는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외할아버지의 성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3 년 뒤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종조모의 성으로 이사를 갔다. 그는 열네 살의 소년이 될 때까지 귀족의 성채에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복을 태어난 그는, 1921 년 군에 입대했고 공군에 배치되면서 자신이 동경해 오던 비행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비행기 정비 대대에 배속되어 비행기 수리만 하게 되어, 결국 사비를 들여 비행기 조종 개인 교습을 받으며 민간인 비행사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그 후 1922 년 육군 항공대 조종 학생이 되어 군용기 조종 면허를 취득하고, 제33대 비행 연대에서 소위로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스물여섯 살 되던 해,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항공사 정비원으로 취직하고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야간 우편 비행을 시작했다. 스물일곱 살 때 사막 한가운데로 발령을 받아 불시착한 비행기를 수리하거나 조난당한 비행사 구조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그의 역작 <어린 왕자>가 어떤 과정에서 쓰였는지 유추되는 이력이다. 그런 그가 1943년에 어린 왕자를 발표한 다음 행방불명되는 것이다.  



서기 2021년 5월 13일 저녁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그의 생애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행방불명된 사건이 당신 스스로 자진한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남미까지 비행을 한 이력이 있으므로, 당신은 더 이상 세상에 누릴만한 일이 없었던 것이랄까.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청년기 이후부터 세상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며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이 일제강점기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희망을 가지게 될까 싶은 것이다. 우리보다 최소한 100년을 앞서 살다 간 그의 생애를 통해, 누구든지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운명을 생각해 내고 있는 것이다. 



언제인가 당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당신이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곳은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안드로메다 너머의 작은 행성이자 당신의 본향이다. 어린 왕자가 사막 한가운데서 뱀에 물려 그의 별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 생떽쥐페리는 어느 날 어린 왕자를 내세워 유서를 쓴 것이랄까..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의 현재 나의 좌표 혹은 우리들의 좌표는 어디쯤일까..



하니와 나는 숙소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곳까지 진출했다. 더 나아갈 수 없는 땅. 우리는 그곳에서 파타고니아 여행 중에 가장 많은 인증숏을 날렸다. 바람 부는 사구 위에서 피오르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그녀는 그네를 타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서 재롱을 떨기도 했다. 



우리가 흔적을 남긴 이곳은 빙하기 때 만들어진 피오르드(fjord, 협만, (峽灣))로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도와 뉴질랜드 남섬의 밀퍼드 사운드, 미국 알래스카 남단, 북극해 연안, 그린란드 해안과 함께 세계에서 6곳밖에 없는 지구촌의 명소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이 협만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계속>


Non c'è terra nel villaggio_Caleta Tortel, Patagonia CILE
il 14 Maggio 2021,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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