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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Apr 24. 2020

왜 잔인한 4월인가

-COVID-19 시대에 만난 양귀비 꽃무리

서기 2020년 4월 23일 오후 4시 15분경..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4월은 잔인했다. 

그냥 잔인한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잔인했다. 

도대체 이런 느낌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내와 나는 바를레타(Provincia di Barletta-Andria-Trani)의 구시가지(Centro storico)로부터 천천히 걸어 바닷가 산책로로 진입했다. 그곳은 시민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던 곳이었다. 집을 나설 때 하늘이 우중충하여 우산을 지참했다. 가까운 거리를 다녀올 계획이었다면 우산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틀 전에 세운 발칙한 계획에 따라 도시에 동선을 그은 다음 외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나설 때부터 구시가지 한복판을 가로질러 걸을 때 눈에 띄는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가끔 한 두 사람이 눈에 띄었으나 그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시내 어디를 가도 이 같은 풍경은 낯설지 않게 됐다. 서기 2020년 지구별에 등장한 비루스의 대유행(COVID-19) 때문에 외출을 하는 즉시 얼굴 반쪽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봤을 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얼굴의 반쪽이 사라진 사람들..



발칙한 계획이란, 남들이 하고 싶어도 참고 있는 일이자, 이름하여 자가격리 혹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비루스 때문에 진화한 탈출극의 일종이다. 한 달 이상을 집안에 콕~ 처박혀있다 보니 온몸이 뒤틀린다. 아내는 괜히 이유 없는(?) 짜증을 내기도 했다. 참 희한하지..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방구석에서 한 두 달을 제대로 버티지 못하면 말이나 되남..


어릴 때 본 뒤뜰의 누렁이는 하루 종일 목을 매달아 두어도, 어린 녀석들이 나타나면 꼬리를 흔들어대며 오줌까지 지릴 정도로 반가워했다. 닭장 속의 병아리는 물론 우리 속의 돼지들.. 가축들이 손바닥만 한 공간만 생겨도 당장 적응하며 살아가는데, 만물의 영장은 무슨 이유 때문에 발버둥을 치며 생난리 이상의 지랄발광들을 하고 자빠지셨는지.. 



비루스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한 달 이상의 격리기간이 지속되자, 아예 방탄조끼에 자동소총까지 무장하고 시위에 나섰으며, 배고파 못살겠다며 아우성이었다. 하루 이틀 만에 끝날 일도 아니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처럼 똘똘뭉쳐 비루스를 한 방에 확~잡은 것도 아니었다.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비루스 때문에 마냥 사람들을 방에 가두어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까지는 용서가 되었고 기분 좋은 휴식과 귀차니즘을 해소하는 통 큰 조치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일주일.. 한 달이 넘어가자 자칫 '비루스 때문에 만물의 영장 잡는다'는 말이 생길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우리의 탈출극은 그렇게 감행된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았던 탈출극은 1시간 남짓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집을 나서 바닷가 산책로까지 기면 그곳에서 다시 시 외곽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가는 것. 그동안 산책로에서는 집안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만끽하게 된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비루스 때문에 관리를 하지 못한 도로는 잡초가 무성했으며 풀꽃들이 어지럽게 피어나 있었다. 집안에서 외출하여 볼 수 있는 풍경이 이 정도일 뿐인데 속이 다 시원한 것이다. 아내의 발걸음은 사뿐거렸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방콕을 하며 짜증을 부릴 때 이렇게 말했지..


얘야.. 얼라 콧구멍에 바람 좀 쇠려무나..!!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4월이 왜 잔인한지' 보여주는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목숨 걸고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거나.. 당신의 고백이 퇴짜라도 맞는 날이면, 그 보다 더 서러운 날이 있을까.. (ㅋ 웃겨요. 욱겨!! ^^)


당신의 품에 꼬옥 안기어 "너만 사랑해"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사랑은 다 그런 거.. 글쎄.. 그게 마음대로 안 돼요. 방콕을 하는 동안 가슴앓이를 얼마나 했으면 양귀비꽃은 저리도 붉디붉을까.. 잔인함은 이웃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도 모자라 방콕을 탈출한 우리 앞에서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이다. 돌아서는 길.. 하늘만 우중충 했지 봄비는 오시지 않았다. 글치만 자꾸만 봄비가 기다려진다.


Perché aprile crudele_COVID-19 in ITALIA
il 24 April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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