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국제학교 교사의 "나다움" Part #1

by 파이송

어릴 적, 처음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내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미국 발음으로 영어를 완벽히 말하기"

매일 발음 교정 연습을 하며, 내가 가진 억양을 지우는 데 열중했다.

이름도 바꿨다. 미국 친구들, 선생님들이 발음하기 어려워 하는 나의 이름 "유림" 대신

"Michelle" 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다.

한국어 책을 멀리하고, 한국어를 최대한 쓰지 않으려 애쓰며 '완전한' 새 언어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싱가포르의 한 국제학교에 일하면서 이 모든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깨닫는다.

이곳은 75개국에서 온 학생들, 47개국에서 온 선생님들이 모인 곳이다.

다양한 억양이 넘쳐나는 이 환경에서 나는 내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억양이 정말 이렇게 중요할까?"


억양은 단지 소리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를 담고 있는 매체다.

미국 발음, 영국 발음. 그 중 하나가 '옳다'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 학교의 헤드마스터는 세 개의 여권을 가진 분이다.

포르투갈, 남아공, 브라질. 발음과 억양 역시 혼합되어 있다.

하지만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억양 때문이 아닌,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다움을 당당히 드러내며 일하기 때문이다.


억양을 배우는 것은 나쁘지 않다.

미국식 억양을 흉내 내보는 것도, 영국식 발음을 연습하는 것도 소통의 범위를 넓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단어는 도저히 그 억양으로 발음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Data"를 미국식으로 "데이타"라고 해야 할지, 영국식으로 "다타"라고 해야 할지 헷갈릴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억양 자체가 아니라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는가 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제 말한다.

억양을 바꾸려 노력하는 건 괜찮아. 배우는 건 항상 좋은 일이니까.

하지만 네 억양을 부끄러워하지는 마

우리 각자의 억양은 우리가 걸어온 길과 배경을 담고 있는 정체성의 일부 이니까.


나다움은 억양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이야기를 인정하고,

억양과 발음이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 있게 소통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진짜로 필요한 영어는 발음의 완벽함이 아니라,

내 생각과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고, 상대방과 연결되는 힘이다.


그래서 지금은 당당히 내 이름을 불러달라 한다.

"Michelle" 이 아니라 "유림" 으로.

학생들도 나를 Mrs. 송 이 아닌, Mrs. 유림 이라 한다.

내 이름에는 내가 자라온 환경과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나다움은 내 억양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다.

영어를 배워도 내 억양은 내가 걸어온 길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그 흔적이 나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 사실을 기억하자.


나다움이란, 나의 억양과 이름, 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내보이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