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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4. 2018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내 여행의 순간들

지나왔기에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여행의 모든 순간들이 다 소중하지만 유독 기억에 짙게 남는 순간들이 있다. 물론 같은 계절과 같은 날씨, 또 같은 시간에 같은 여행지를 가서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느끼는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은 분명 다를 거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피어났던 나의 감정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꼭 추천하고 싶다. 당신은 다르게 보고 다르게 감상하겠지만 분명 당신대로의 아름다움으로 남을 것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 성 가족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 가족 대성당 내부

이미 많이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성당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왈칵 눈물이 나왔다. 펑펑 울다가 옆을 보니 함께 여행을 온 친구도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건축물에게 위로를 받았다. 그건 정말이지 진귀한 경험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따뜻한 빛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에는 수많은 코스가 있다. 가우디는 천재 건축가가 확실하고, 그의 건축물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절대 형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해놓은 생각의 범주를 그는 항상 벗어나 있다. 하지만 나는 성 가족 대성당을 빼고는 기대만큼의 감흥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데는 몰라도 당신이 이곳만큼은 바르셀로나에서 꼭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덧붙여 바르셀로나에 간다면 매일 볼 수 있는 맑고 파란 하늘과 아기자기하고 멋스러운 골목길, 그리고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바르셀로나에 갈 이유가 넘치게 충분하다.



체코 프라하 - 까를교 밑에서 보트 타기
보트 위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의 야경

저렴한 물가와 아름답게 남아있는 옛 도시의 모습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프라하. 하지만 나에게 프라하는 그다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물론 눈 두는 모든 곳이 감탄이었지만 심하게 관광화가 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프라하를 가장 즐길 수 있었던 순간이 바로 이 보트 위에서였다. 우연히 낮에 탔다가 너무 좋아서 프라하를 떠나는 날 밤에 한 번 더 탔다. 둘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둘 다 좋다. 블타바 강 위에서 낮에 보는 프라하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특히 너무 예쁘고, 밤에 보는 프라하는 온 세상이 황금빛이다. 반짝반짝 너무나도 예쁘다.


내 친구는 해리포터 광팬이었는데, 마치 호그와트로 가는 배를 탄 기분이라며 신이 났다. 그래서 해리포터 배경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옆 배에 있던 훈훈한 외국인 청년들이 응답해줬다. 함께 신나게 해리포터를 연호한 게 뜻밖의 추억으로 남는다. 밤 보트에 올라탈 때는 해리포터 BGM과 함께하길. 겨울에 프라하로 여행 가는 친구에게 이 보트를 꼭 타라고 추천해줬는데, 아쉽게도 겨울에는 운행을 안 한다고 한다. 부디 화창한 여름에 즐기길!



포르투갈 리스본 - 근교 오비두스 성벽 걷기
오비두스의 흔한 골목길

내가 스페인 다음으로 사랑하는 곳, 바로 포르투갈이다. 겨울, 영국에서 포르투갈로 넘어오는 여행을 해서인지 일단 따뜻한 날씨에 몸이 사르르 녹아버렸고, 포르투갈만이 갖는 아기자기한 정서에 반해버렸다. 포르투갈은 리스본보다 작은 도시인 포르토가 더 매력적이고, 그중에서도 근교 여행이 참 즐겁다. 포르토를 여행한다면 근교에 있는 줄무늬 마을 코스타노바도 추천한다. 물론 포르투갈은 그 어디든 다 좋다.


오비두스는 리스본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성벽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는 붉은 지붕도, 하얀 벽도, 오렌지 나무도, 작게 핀 꽃들도 다 너무 사랑스럽다. 내가 여행하던 날은 심지어 날씨가 화창하지 않은 편이었는데도 약간의 우중충함이 오비두스의 올드한 매력을 한껏 살려주었다. 오비두스 안의 골목골목과 상점들도 너무 예쁘지만 성벽 걷기를 먼저 추천하는 이유는 일단 오비두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마을 반대편에는 가슴이 뻥 뚫리도록 넓은 들판이 보인다. 성벽은 그리 길지 않다. 천천히 다 둘러보아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오비두스는 작아서 반나절이면 구석구석을 다 돌아볼 수 있다. 마을을 다 보고 나면 괜스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따뜻한 곳이다.



라오스 방비엥 - 탐짱동굴 자연 수영장

내가 라오스를 여행하던 7-8월은 우기였다. 그래서 블루라군을 갔을 때 뿌연 흙탕물만 잔뜩 보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날. 우연히 들른 방비엥 투어 인포메이션 직원이 이곳 탐짱동굴을 추천해줬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이 이곳 투어 인포메이션을 지나친다. 그래서 내가 들어갔을 때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설명해주던 직원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라오스에서 그만큼 격한 반김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쏠쏠한 정보를 무료로 많이 제공해주니, 방비엥 큰 길가에 있는 이 투어 인포메이션을 한 번쯤 들려봐도 좋겠다.


방비엥에서 딱 반나절 시간이 남았던 나는 자전거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의 탐짱동굴로 주저 없이 향했고, 다만 가는 길을 헤매서 시간을 조금 지체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으나, 비포장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거라 엉덩이가 많이 아플 수 있다. 탐짱동굴로 올라가기 전 사진에 보이는 진짜 블루라군이 그곳에 존재한다. 나는 탐짱동굴까지는 가지 못했다. 앞서 말했듯 길을 헤매기도 했고 그 앞에 펼쳐진 자연 수영장, 그리고 그곳에서 수영하며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현지 아이들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곳에서 수영하는 사람이 소수의 현지 아이들뿐이라 물은 맑디 맑았다. 아, 내가 보려던 블라라군이 바로 이 색이구나. 나는 한참을 감탄했다.


아이들은 외지인이 신기한지 한동안 관찰하다가 이내 한 명씩 뽐내듯 다이빙 쇼를 보여줬다. 신나서 열심히 박수를 치니 아이들은 더 신나서 계속 다이빙을 했다. 그 순수한 우쭐함이 너무나 귀여웠다. 당시 떠날 시간이 얼마 안 남았고 이미 수많은 물놀이를 했던 터라 더 이상 갈아입을 옷이 없던 나는 차마 뛰어들지 못하고 발만 담그고 있었다. 그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연 수영장은 수심이 깊은 편이고 밑에 바위가 들쭉날쭉 있긴 하지만 투명해서 한눈에 다 보인다. 나는 블루라군보다 이곳을 추천한다. 당신은 부디 이곳에 첨벙 뛰어들 수 있기를.



발리 로비나 - 돌고래 투어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 있는 로비나의 바닷가

로비나는 발리 북부에 위치하며, 조금 더 위에 있는 멘장안과 함께 스노클링 포인트로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갔던 이유는 오직 돌고래였다. 여행 책자에서 우연히 본 돌고래 투어에 꽂혀 발리 꾸따에서 차로 5시간 이상이 걸리는 고행길을 택했다. 꾸따에서 로비나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산을 빙빙 둘러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살면서 멀미 한번 해본 적 없는 나 조차도 속이 울렁거릴 판이었다. 그리고 로비나 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시내까지 거리가 좀 있다. 나는 지나가는 툭툭이나 택시를 발견하지 못해서 무작정 캐리어를 끌고 흙바닥을 걸어갔는데 이 방법은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동남아시아는 역시 캐리어 대신 배낭이 최고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이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내가 로비나를 추천하는 이유는 황홀했던 일출과 맑은 바다, 그리고 숙소 때문이다. 로비나는 오직 돌고래 때문에 갔던 거라 딱 이틀밖에 머물지 않았다. 그 외에도 발리는 가볼 곳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에 간다면 조금 더 진득하니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다. 돌고래 투어가 좋았던 건 새벽과 아침의 경계에 있는 로비나의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었고, 또 바다 한가운데서 맞이하는 일출은 평생 가도 잊지 못한다. 게다가 물이 정말 맑아서 바닷속에 사는 니모들을 맨눈으로 실컷 볼 수 있다. 5시간 차를 탈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 로비나이다.


hotel melamun

내가 로비나를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돌고래 투어 가이드는 한국인을 2년 만에 처음 보는 거라고 했다. 그만큼 한국인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숙소 정보를 찾기 힘들었다. 오랜 검색 끝에 아주 만족스러운 후기의 이곳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내린 버스터미널에서 그나마 가까웠고, 바로 근처가 바닷가였으며 직접 가본 숙소는 그 이상으로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관광으로 먹고사는 발리에서 내가 가 본 숙소 중 단연 최고였다.


2017년 기준, 1박에 2인 7만 원이었다. 깎아달라고 흥정했더니 인터넷에서 미리 예약하는 게 더 비싸다며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가격에 묵는 것인지 호텔 직원은 나를 설득했다. 하룻밤인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이 숙소는 강력하게 추천한다. 깔끔하고 넓은 방과 욕실, 문을 열면 바로 앞에 보이는 푸른 수영장, 그리고 특히나 아침 무료 조식이 훌륭했다. 메뉴판을 주면서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고를 수 있게 하는데, 여기서 먹은 나시고렝은 내 인생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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