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자의 이야기
“누나 어머니 돌아가셨어, 지금 요양원으로 와요. “
어머니 얼굴을 본지가 1년 6개월 전이다.
어머니가 오래 살아서 다행이다. 이미 늙은 자식들은 슬픔까지도 늙었으리라.
울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겠지.
경자는 천천히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한 박금숙씨는 혼자 몸으로 자식 셋을 먹여 살리는 것 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학교육성회비를 내는 달이면 딸들에게는 저절로 모진 말이 나왔다.
아들육성회비야 하루라도 늦을새라 챙겼지만 딸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아깝고 아깝기만 했다.
마침 옆 동네 잘사는 집 식모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라면 첫째 일숙이가 적당했지만, 일숙이는 동네에서 억세기로 유명했다. 손끝이 야무지지도 못했고 식탐이 많았다. 얼마 있지 못하고 쫒겨날 게 분명했다. 박금숙 씨는 여러모로 적당한 둘째 경자를 보낸다.
경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채 옆 동네 잘사는 집 식모로 갔다.
경자는 그 집에서 13살부터 18살까지 꼬박 5년을 살았다. 국민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던 경자는 중학교 진학은 꿈도 못꾸고 찬물에 손이 부르트도록 식모살이를 하며 5년을 살았다. 경자는 그 시절 안주인 할머니가 자신을 시험하려고 아궁이 옆에 놓은 100원 짜리를 탐내지 않고 갖다 드린 것을 두고두고 이야기 했다. 안주인 할머니의 인정이 어린 경자에게는 타인의 인정을 받은 유일하 순간이었다.
경자가 기억하는 건 한달에 한번 경자의 월급을 받으러 오는 어머니였다. 따뜻한 말도 뭣도 없었다. 열세 살 경자의 손이 얼마나 부르텄는지, 배는 곯지 않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이 안주인 할머니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며 돈을 챙겨 나가는 뒷모습에 차마 “엄마” 한번 불러보지 못했다.
경자는 식모살이가 끝나고 봉제공장을 다니며 틈틈히 공부해 검정고시를 보았고, 고졸이 될 수 있었다. 결혼 전까지는 월급의 대부분을 어머니께 드렸다.
월급날에야 시큰둥한 ‘고생했다’ 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자는 자신을 낳고 계집애만 낳아서 재수가 없었다던 어머니에게 재수가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경자는 박금숙씨가 죽는 날까지 단 한번도 재수가 되질 못했다.
경자는 영리하고 야무졌다. 누가 봐도 재수가 맞았지만 세상에 단 한 명 어머니 박금숙씨에 의해 재수없는 존재로 낙인되었기 떄문이다.
경자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공장에서 만난 남편과 가정을 꾸린 후에는 함께 식당을 했는데 일년에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렇게 10년. 강남 중 제일 싸지만 강남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자식 뒷바라지에도 최선을 다했고 큰 아들은 서울대까지 보냈다.
자신의 삶이 재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70살까지 살아왔다.
임종을 함께한 자식은 없다.
전 재산을 아들 경태에게 주었지만 경태에겐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며 모실 효심이 없었다.
박금숙씨는 요양원에서 경태를 통해 자식들을 불러모았다. 자신에게 있던 금붙이를 나눠주고 싶어한다고 경태는 경자에게 전했다.
그때만큼은 경자도 죽음을 목전에 둔 어머니에게 연민이 들어 눈시울을 붉혔다.
주말 드라마에서도 보던 장면 아닌가.
미웠던 부모가 돌아가시기전 마음의 응어리를 풀고 그동안 몰랐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아름다운 순간을.
어쩌면 마음속으로 바랬던,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경자는 금붙이 몇개 곱게 싸서 집에 오며 생각했다. 이거면 마음 한 켠 지옥에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자는 고리 떨어진 목걸이, 사이즈 안 맞는 반지 같은 금붙이를 보며 하나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었다.
특별한 기분이었다. 엄마가 준 것들이라니…
자신이 몰랐을 뿐,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일흔 바라보는 나이에도 엄마의 사랑에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랬다.
금은방 사장님의 말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고 사모님 어디서 도금만 갖고 오셨네.”
아, 어머니가 주신거라도 말이라도 말껄,
그것들을 주어들고 도망치듯 가게를 나왔다.
놀랍지 않은가.
생이 소멸되는 그 순간에도 아들에게 줄 순금과 딸에게 줄 도금을 골라내었다는 것이.
1년 6개월 전의 일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혼자 있게 되자 조금 울었다.
이제 아무도 자신을 재수없는 존재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어린 경자의 마음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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