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이자 최후의 왕

by 윤지안


최초이자 최후의 왕
왕국은 한 번도 이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지도가 필요 없었고,
연대는 적힐 종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그곳에 있었고,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했을 것이다.
이름이 없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 왕국에 단 한 명의 왕이 태어났다.
왕은 태어날 때부터 왕이었다.
예언이 그를 왕좌로 밀어 올렸고,
백성의 침묵이 그를 떠받쳤다.
왕관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이미 그의 이마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즉위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왕이 되었고,
퇴위가 무엇인지 모른 채 통치했다.

왕의 이름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면 그가 인간이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왕국에는 법이 없었다.

왕의 말이 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말수가 적었다.
그는 명령 대신 관찰을 택했고,
형벌 대신 기다림을 선택했다.
백성들은 자유를 누렸으나 동시에 불안해했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왕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어느 날, 왕의 곁을 지키는 기록관이 물었다.
기록관은 왕국에서 유일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기록관의 글은 종이에 남지 않았고,
그의 기억에만 새겨졌다.

그는 왕국의 기억이었다
.
왕은 한참 동안 창밖을 보다가 대답했다.
“말을 하면 끝이 생긴다.”
기록관은 그 말을 기록했다.

‘말은 끝을 만든다.’

왕국은 오래도록 평온했다.
계절은 늘 제때 왔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랐다.
전쟁은 필요 없었고, 국경은 의미 없었다.

그러나 평온은 질문을 낳았다.
질문은 균열을 만들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왕에게 묻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이곳에만 머무르는가.
왜 다른 왕국은 없는가.
왜 왕은 늙지 않는가.

왕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왕 앞에서

백성들은 각자의 답을 만들었다.
어떤 이는 왕을 신이라 불렀고,
어떤 이는 괴물이라 불렀다.
어떤 이는 왕을 사랑했고,

어떤 이는 왕을 두려워했다.
그 모든 감정은 왕국의 심장처럼 고동쳤다.

균열은 밤에 먼저 나타났다.
하늘에 금이 갔다.

별들이 그 금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공유했다.
그날, 왕은 왕좌에서 일어났다.
왕이 왕좌를 떠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왕은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성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그동안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왕국은 어디까지입니까?” 기록관이 물었다.
왕은 대답했다.
“여기까지였다.”

그 말과 함께 땅이 흔들렸다.
경계가 무너졌다.
왕국은 자신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깨달았다.
그 순간,

사람들은 처음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떠남은 왕을 위협했다.
왕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그것은 그의 가장 긴 연설이었다.
“나는 너희의 시작이었고, 너희의 끝이었다.
그러나 이제 끝은 너희가 정해라."

백성들은 침묵했다.
왕이 선택을 넘겨주자, 자유는 무게를 드러냈다.
누군가는 남았고, 누군가는 떠났다.
떠나는 자들은 국경이 없던 왕국을 떠나

처음으로 길을 만들었다.

왕국은 점점 비어갔다.
왕은 늙지 않았으나, 고요해졌다.
왕좌는 점점 커 보였고, 왕관은 무거워졌다.
기록관은 여전히 곁에 있었다.

“이제 무엇을 기록해야 합니까?” 기록관이 물었다.
왕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내 마지막을.”

그날 밤, 왕은 왕관을 벗었다.
왕관은 바닥에 닿자 가루가 되었다.
왕좌도, 성도, 성문도 서서히 사라졌다.
왕국은 마치 한숨처럼 접혀 들어갔다.

왕은 인간이 되었다.
그 순간, 왕은 늙기 시작했다.
주름이 생기고, 숨이 가빠졌다.
그는 웃었다. 처음으로 웃었다.

“이제 나는 누구입니까?” 왕이 물었다.
기록관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관은 처음으로 기록을 멈췄다.
기억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해가 떠올랐을 때, 왕은 없었다.
왕국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남긴 길만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었고,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최초이자 최후의 왕이 있었다고.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왕은 없었다.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새로운 왕국들의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