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쿠키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나비였다.
정확히는, 나비를 본떠 만든 쿠키.
날개엔 설탕 결정이 붙어 있었고,
중앙에는 초콜릿이 얇게 발라져 있었다.
너무 정교해서 차라리 먹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늘 날개부터 부러뜨렸다.
몸통을 남겨두고 날개만 먹는 버릇은
언제부터였을까.
바삭—
소리는 작았지만, 그 소리가 나면
나는 항상 아주 잠깐 숨을 멈췄다.
마치 무언가가 부서졌다는 사실을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어릴 적,
나는 나비를 잡지 않았다.
대신 관찰했다.
관찰한다는 말은 언제나 무해하게 들리지만,
실은 손을 더 오래 뻗지 않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투명한 유리병 안에서
나비는 날갯짓을 멈췄다.
그때 나는 안도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쿠키를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부서지는 감각이
기억을 건드린다.
설탕이 녹고,
부스러기가 혀에 남고,
나는 그 잔해를 끝까지 삼킨다.
나비는 부서져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쿠키는 부서질 때
정직하게 소리를 낸다.
그래서 나는 쿠키를 더 믿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쿠키 봉지를 열면
나비의 그림이 나를 보고 있었다.
정면으로.
마치 “이번엔 어디부터?”라고 묻는 것처럼.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날개부터.
그 선택이 잔인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날개를 먼저 없애야
도망치지 않으니까.
사람의 마음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너무 자유로운 부분부터
부러뜨려 두어야 조용해진다.
생각이 날아가지 않게,
기억이 퍼덕거리지 않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가장 가벼운 부분을 먼저 먹는다.
꿈, 기대, 가능성 같은 것들.
몸통은 늘 마지막이다.
왜냐하면
그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마지막 쿠키를 먹던 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부순 건
나비가 아니었다.
쿠키도 아니었다.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안심하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