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저 무심코 넘긴 한 생각,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아주 작은 판단.
그 순간, 어딘가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했다.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비증후군을 외부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브라질의 숲, 태평양의 폭풍,
원인과 결과의 기묘한 연결.
하지만 내가 겪은 나비는 숲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날아올랐다.
생각 하나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태도가 되었으며,
태도는 결국 나의 선택을 조금씩 비틀었다.
너무 미세해서
나는 여전히 내가 ‘나답게’ 살고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변화가 언제나 합리적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잖아.”
“다들 이렇게 해.”
“이번만이야.”
그 말들이 쌓일수록
내 안의 방 하나가 조용히 잠겼다.
나는 그 방이 원래부터 어두웠다고 기억을 고쳐 썼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아주 낯선 표정을 발견했다.
놀라운 건,
그 표정이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는 사실이다.
마치 처음부터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제야 알았다.
나비는 이미 수천 번 날갯짓을 했고,
폭풍은 이미 내 삶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는 것을.
공포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
비명도, 피도 필요 없다.
공포는 기억을 수정하고,
선택을 합리화하며,
마침내 “이게 정상”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그래서 가장 무서운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내가 내린 이 판단은
정말 지금의 나의 것일까,
아니면 오래전 날아올랐던
그 나비의 흔적일까.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고른다.
너무 작아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선택 하나를 앞에 두고.
혹시 모를 날갯짓 소리를 듣기 위해
숨을 죽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