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늘 조용하게 시작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천천히.
그날도 그랬다.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든 어둠은
방 안의 모든 사물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책상 위에 놓인 펜, 반쯤 접힌 노트,
그리고 나.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빛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언제부터인가 거짓처럼 느껴졌다.
빛은 모든 것을 드러내지만,
드러난다는 건
때론 너무 선명하게 아픈 것까지 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어둠을 택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건
바로 그날 밤이었다.
" 파닥..."
마치 종이 한 장이 살짝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천장 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파닥... 파닥..."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것들은 검은색도, 흰색도 아니었다.
심지어 형태조차 또렷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처럼 생긴 것들이었다.
작게 떨리는 것,
길게 늘어진 것,
어딘가 찢어진 듯한 것.
그것들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날개를 가진 것처럼
공중을 떠다녔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때, 하나가 내 쪽으로 내려왔다.
조심스럽게,
마치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닿았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어린 시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삼켜버렸던 울음.
아무도 몰랐던
작은 절망.
나는 손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떨리고 있었고,
나도 떨리고 있었다.
"너... 였구나."
나는 알았다.
저것들은
어둠 속에서 날아오르는 것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한 번도 날아오르지 못했던 것들이라는 걸.
말하지 못했던 말들,
울지 못했던 밤들,
잊은 척했던 감정들.
그 모든 것들이
이제야 날개를 얻은 것이었다.
하나, 둘, 셋-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내 주변을 떠다녔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둠은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숨겨진 것들이
날아오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다.
찬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 순간-
그것들이 움직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씩,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파닥, 파닥-
그 소리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그 소리는 이제 두렵지 않았다.
나는 창가에 서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
아니,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것들.
마지막 하나가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나를 향해
아주 잠깐,
빛처럼 흔들렸다.
나는 작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
그 말이 끝나자,
그것은 조용히
밤 속으로 녹아들었다.
방 안에는 다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엔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불을 켰다.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처음으로
빛이 그렇게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빛은 어둠을 지나온 것들만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일부러
불을 끄고 앉는다.
혹시라도-
또 다른 것들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어둠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