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는 법
쓰고 싶은 인간에서 잘 쓰고 싶은 인간이 되기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
잘 쓰고 싶은 인간이 되고자 하니 오히려 쓰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사랑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시간을 보냈다.
내일을 위해 잘 살고 싶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수시로 무너져 이후를 구겨버리고야 마는 인간.
어찌 이리도 가엾을까. 그래서 의지가 굳건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드는 것일까. 그 힘든 일을 의식적으로 해내고 있다니 말이다. 인간은 가만히 스스로를 파괴로 몰고 갈 수 있는 존재. 파괴라는 낭떠러지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그 자리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건지도.
밀려나지 않고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자라도, 한 문장이라도 글을 향해 소리치는 일을 해야겠다. 나를 돌보고자, 살리고자, 밀려나지 않고자 쓰자.
요 며칠 펑펑 울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감정을 내비친 것이 언제였더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일상에 무뎌지고 사람들에 무뎌지고 감각에 무뎌지는 것이 살아가기에 훨씬 편한 일이라서 그 편안함에 기대어 있다 보니 무언가 잊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점점 지워졌으면 내 삶이 더 안락하지는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날아오를 듯한 벅참, 기쁘게 소리친 개운함, 코끝이 시큰하도록 터져 나오는 감정이 뛰어오르는 감각은 내가 살아있구나를 느끼게 한다. 사고와 감정, 신체와 두뇌를 적절히 사용하는 활동들이 내 일상에 적당하게 녹아져 있는가를 살펴보니 참으로 불균형하다. 의식적으로 조절할 때가 되었다고 느껴, 이렇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단 신체는 정말 사용하지 않지. 운동을 해야 하는데... 까지만 왔고 계획이니, 새로운 마음가짐이니 귀찮아진 지 오래다. 나이 탓을 하고 싶다가도 역시나 핑계인 걸 알아서 기껏 호르몬이나 들먹거려 본다.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은 말은 아닌가? 이중부정이라니 역시나 핑계고.
에너지. 지속하기 위해, 아니 지속도 전에 일단 하기 위해, 버티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 역시나 운동하는 것으로. 하.. 헬스장을 검색. 이 세상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건 또 어떻게 삶을 지탱해 주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아니 그냥 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힘이 생기면 동기부여라도 될까. 업무적으로는 나는 동기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이런 시시콜콜한 일상을 들여다보면.. 남 말할 처지가 못된다. 뭐, 상담사가 성인군자는 아니니까. 상담사도 인간인데. 원래 평범한 사람의 사례가 더 대단해 보이고 그렇지 않나?
사실 모든 것이 평행선을 그리며 무심한 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내면적으로 꽤나 큰 감정의 널뜀이 있었고, 표출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나 어긋나게 새어 나왔다. 업무적으로 두뇌를 간간히 쓴듯하나 틈틈이 에너지를 아껴왔다. 돌아보니 상태가 안 좋았구나를 깨닫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엉거주춤 앉은 자세를 보곤, 그래서 이렇게 어두운 낯빛이 되었나 살핀다. 원래 내 입꼬리가 이렇게 내려가 있었나. 눈은 왜 다 안 뜬 것 같지. 엉망인 책상과 널브러진 옷가지.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은 방에서도 티가 난다고 했던가. (그럼 우리 가족은 모두 어지러운 마음 상태인가?)
하나 둘 열심히 치웠지만 깨끗해지지는 않고 더러워짐의 멈춤이 된달까. 결국 아주 조금 걷어내고 에너지는 0이 돼버리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글도 쓰지 못하겠고, 피로만 하다가 내일이면 다시 치운 부분이 더러워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뭐가 문제일까.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 졸린 기운이 몰려온다. 뭔지는 몰라도 일단은 체력이 문제다. 상담 교육 때 선생님이 꼭 꾸준히 달리기를 해보라고 연신 추천하셨는데, 나도 안다. 부자 되는 법, 날씬해지는 법, 목표를 달성하는 법. 세상에 그런 방법을 사람들이 다 모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안 되는 거지. 나도 그렇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나는 어디 갔나. 나를 이렇게 만든 건 현실일까, 시간일까.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균형에 집중해 본다.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알면 하면 되지! 할 수 있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나를 돌보는 것, 달래 가며, 채찍질해 가며, 토닥이고 쓴소리 하며 온갖 방법을 다 써보기로 한다. 민지야, 너 잘할 수 있잖아? 난 너밖에 없어. 난 나밖에 없어. 나랑 잘 지내기 위해 오늘은 이렇게 써봤다. 이렇게 혼자 쓰다가, 보여줄 글도 쓰고, 상상의 글도 쓰고, 다듬고, 뱉어내고, 토해내고, 매만지고, 버리고, 세워 쌓고, 무너뜨리고, 부르짖고, 속삭이자. 이렇게 글로 나랑 잘 지내는 것이, 누군가와 잘 지내는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잘 지내도록 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게 감사하다.
일단, 한 줄이라도 쓸 것.
웬만하면,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할 것.
점차 다듬어진 글을 쓸 것.
마구 써내려 갔지만 들여다보고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고 선보일 것.
땅에도 닿았다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날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날도 있겠지만 그 과정과 기록은 너를 높이 세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