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의 힘
독서모임이 좋은 이유를 정리하자면 솔직히 굵직한 이유는 두어 개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속하고 기록할수록 새로이 느끼는 좋은 점들이 생기고 커져간다. 몰랐던 것도 오래 보다 보면 불현듯 발견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정말이지 유익한 활동이어서 자꾸만 깨닫게 되는 것일까. 무언가를 정말 좋아한다는 건, 이런 것일까를 어렴풋 떠올려본다.
어떤 이들과 말하는지에 따라 대화의 흐름이 달라지곤 한다. 그날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의 질문에서 이건 써야겠다 싶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비전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비전이라, 조직이나 팀이 아니고서야 개인으로서 하나의 비전을 갖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법한 질문이었다. 모두들 주춤했지만, 조심스레 자신의 가치관을 꺼내 되고 싶은 모습을 그려보았다. 직업적으로도, 현재의 나의 상태를 객관화해 보거나 방향성을 점검해 볼 수 있는 물음표였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직업상담사로서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내담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이어지고, 감사를 전해받는 감격스러운 날들을 근래에 보냈다. 잘하고 있다는 신호이자 더욱 잘해야겠다는 경종, 힘껏 잘하고 싶다는 다잡음이었다. 내담을 하면서, 어떤 말을 하면서, 삶에 대한 견해를 갖게 되면서 느끼는 공통점은 결국 해보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말할 수는 있으나 그 안의 힘과 울림은 다르다. 나는 경험주의자이기도 해서, 겪어보면서 더욱 느끼고 깨닫곤 한다. 물론 모든 삶을 다 살아 볼 수가 없으니 책이나 영화, 교육이나 사례 같은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많이 배우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삶과 관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나는 나만의 케이스로 삶을 살아가겠지만, 내가 용기 내지 못한 것들을 타인에게 권해볼 수 없고, 나도 잘 모르는 것들로 누군가를 설득시키거나 동기부여 할 수 없다. 그러니 나부터 스스로 살피고 깨어있으며 생각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 감사한 신호와 경종에 대한 응답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모든 일에 도전적이고 만능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치열하게 고민해 봤고, 포기해 보았으며, 삶 자체가 소중해 보듬을 줄 아는 것.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숨 쉬는 법부터 알아야 하는 것처럼 나부터 오롯해야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 공감이란 것도 거기서부터 오는 듯하다. 서로 견주어 크기를 비교할 순 없어도 나도 숨 막히고 컴컴하고 축축하고 실패하고 쓰러지고 울부짖고 불안해 봤어야, 내가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었고, 빛을 향해 나아갔으며, 눈물을 닦고 일어나 불안도 일부라 안을 수 있었는지.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했으니 당신도 해봐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조금만 더 같이 그곳에 앉아있자고, 털썩 곁에 주저앉아 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전부이지 않을까 한다.
비전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어떠한 성공과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는 뚜렷하지 않지만 나의 삶으로 하여금 그런 에너지가, 공기가, 영향력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향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 나의 경험이나 선택의 관점, 감내와 성취와 같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도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의 생각이 맞다고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조차 충실히 고민한 다른 답을 가진이의 것과 아닌 이의 것은 다른 무게를 가질 것이다.
다시 돌아와, 독서 모임이 좋은 이유는 선언의 기능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다짐과 목표를 세운다. 어느 자기 계발서에서는 이런 상태를 주변에 먼저 알리라고 말하는데, 과연 혼자만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이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은 참 다르다. 이러한 선언은 오히려 일상적 관계에서는 엉뚱한 발언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주말 아침 책을 읽고 말하고자 하는 접점만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의 선언은 목표의 시작점이 되기도, 발전적 자기의 점검소가 되기도 한다.
이 또한 상담의 순기능이기도 한데, 인간은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글로 쓰는 것은 저마다 다르게 사람을 정리한다. 고민하고 있던 것을 글로 적거나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생각보다 별 것 아닌 일이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는가? '말하는 대로'가 가진 힘처럼 어느 정도의 형체를 가졌든 상태와 방향성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미 나아갈 태세는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기쁘게 대화할 뿐이다. 당신이 어떤 미래를 그리며 질문에 답을 할지, 어떤 과거를 껴안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지. 상담실에서 벗어났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 곳이기에, 서로의 답을 궁금해하고 묻는 이 자리에서 덕업일치의 색깔을 희미하게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