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우연과 인연

인도네시아에서 온 에어비앤비 룸메이트

by Grace yoon

인도네시아에서 온 언니와의 인연은 참 깊다. 그 당시 언니는 유럽 여행을 온 여행자였고 우리는 에어비앤비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 언니는 지금 현재 프랑스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파리 근교에 살고 있다. 인생은 정말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프랑스에서 또 하나의 삶을 시작하게 될 거라는 건 당시 언니의 여행 계획엔 없던 일이다. 언니는 나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프랑스에 어학연수로 온 내 얘기에 유독 관심을 보였다.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고 그것이 어떤 마음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유럽 여행을 마치고 어학연수로 다시 프랑스에 와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아무튼 우리 인연의 시작은 에어비앤비였고 성격 좋은 언니 덕에 처음 만난 사람과 쉽게 친해져 파리 여행을 함께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관광객스러운 파리 관광을 하기로 한다. 우리는 버스를 탔다. 나의 첫 번째 파리 버스라 버스에 탑승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버스를 타고 물랑루주를 보러 간다. 그동안 책과 예술가들의 그림, 영화로 접하던 파리의 벨에포크를 대표하는 상징물. 물랑루주 근처엔 성인용품점이 많았고 동네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날씨는 우중충해서 더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예전엔 향락과 예술의 동네였다면 지금은 향락이 더 짙게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감정에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린 트로카데로로 향했고 가는 길에 버스는 개선문을 한 바퀴 돌았는데 개선문을 처음으로 가까이 볼 수 있었다. 파리의 웅장한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서울의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의 느끼는 감정의 파리 버전이었다. 트로카데로는 에펠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궁전인데 옛날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졌다가 지금은 그 건물 안에 여러 박물관이 있고 에펠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사진 찍을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우리는 여느 관광객과 다를 바 없이 에펠탑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고 다음 목적지인 갤러리 라파예트로 향했다. 갤러리 라파예트는 파리의 전형적인 클래식함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백화점이었다. 그 웅장함 속에서 언니는 예쁜 선글라스 하나를 샀다. 한창 쇼핑을 하고 백화점 밖으로 나오니 해는 저물며 파리의 건물들이 노을에 반사된 금빛을 띠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버스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창 밖으로 보는 풍경들은 슬로 모션처럼 지나가며 내 눈에, 마음에, 기억 속에 천천히 그리고 깊숙하게 저장되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언젠가 단기가 아닌 장기적으로 살게 될 날이 올까, 파리에 살아보면 참 좋겠다는 상상과 꿈을 품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으로 언니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해주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국적이 다른 낯선 사람과 금세 친해지며 계획에 없던 여행도 하며 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이성 얘기, 결혼에 대한 가치관, 미래에 대한 계획과 꿈, 서로가 살아온 인생 얘기 특히 살면서 힘들었던 시간과 고민에 대해 서로 나누며 ‘정’이라는 것이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단어가 아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게 다른 형태로 존재하며 국적이 다른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언니가 프랑스를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언니는 이탈리아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몽마르트르 공원에서 파리의 전경을 보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내려와 ‘Bouillon Pigale’이라는 파리의 유명한 식당으로 향했다. 파리 물가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프랑스의 전통적인 가정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으로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까지 줄을 서는 항상 활기가 넘치는 맛집이다. 그곳에서 언니와 마지막 식사를 하며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앞에서 작별을 했는데 서로의 앞 날을 응원하고 언젠가 다시 보게 될 날을 소망하며 포옹을 했다. 왜인지 나는 마지막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언니는 눈물을 흘렸다. 서로의 서툰 영어로 대화가 늘 유창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우린 함께 좋은 추억을 쌓았고 그 행복한 감정과 마음이 서로 통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언니는 긴 유럽 여행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오기 위해 불어 공부하는 모습들을 인스타에 종종 올리곤 했다. 그리고 언니는 진짜 프랑스에 다시 왔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어학연수가 끝나 한국에 돌아가서도 언니와 종종 연락했으며 작년 파리에서 워홀을 했을 때 우린 다시 만나 영어가 아닌 불어로 대화를 나눴으며 언니의 임신 소식에 축하를 해주었고 나중에 출산 후에는 남자친구와 집들이를 가서 언니의 애기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에어비앤비에서의 우연한 만남 어쩌면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로 인연이 끝날 수도 있는데 ‘프랑스’라는 낯설었던 땅이 우리의 인연을 더 단단하고 길게 이어주고 있었다. 이제는 여행지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타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인생의 신비로움 같은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