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그녀가 던진 물컵 하나가
그녀가 내지른 고성 몇 분에
참 많은 이들이 참담했다.
수없이 오간 지인들과의
카톡 내용을 요약하면 이거였다.
‘정말 자기밖에 모르네.’
자기밖에 몰라서
대행사 직원에게
물을 뿌리고
자기밖에 몰라서
아버지뻘 직원에게
악을 써댄 거라고.
문득 그녀의 몇 년 전
행적이 떠올랐다.
그녀의 언니가 땅콩으로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았을 때
‘꼭 복수하겠어’라고 했던 그녀.
그녀의 오빠에게
‘이거 오빠 회사야.’라고 했다는 그녀.
최소한 두 명의 가족에게
그녀는 ‘자기밖에 모르지’ 않았다.
사실,
사람은 모두 자기가 제일 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길가에서 마주한 이름 모를 이의
사고에 발을 동동 구른다.
이웃집 아이가 배를 곯을 때
마음이 쓰인다.
십년 만에 상주가 되어 만난
옛 친구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그건
‘내’가 가장 중요한 내 삶에서
내 삶과 맞닿은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웃, 친구, 동료, 선후배, 지인.
굳이 피로 맺어지고
살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을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들의 아픔이 내가 아프고
그들의 상처가 내게도 쓰리다.
조현민, 그 분의 ‘우리’란
고작
우리 오빠
우리 언니
그 뿐.
그 외엔
나와 상관없는
‘우리’라 여겨본 적 없는
‘을’.
그녀가 법적 처분을 받을린 없다.
언젠가 국민들의 분노도 사그라든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곤경에 빠진 그녀를 위해
진심으로 발 동동 굴러줄 이들은
딱 그녀의 ‘우리’. 딱 그만큼이다.
살며 맞닥뜨릴
또다른 고통과 곤경 속에서도
그녀는 늘 외로울거다.
그녀가 쌓아올린
‘우리의 성’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