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의 말_K-POP 데몬 헌터스와 그 시절 J-POP이 마냥 부러웠던 영포티
올해의 수능 금지 송은 아마 K팝 데몬 헌터스의 GOLDEN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머리 속엔 'UP, UP, UP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이 무한 반복되고 있는데 GOLDEN을 들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전체적인 영어가사 속 중간 중간 들어간 몇 마디의 한국어 가사였다.
글로벌 대중을 타겟으로 K라는 이름의 문화가 활용된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어로 제작된 노래에 중간 중간 삽입된 한국어 가사.
영어 가사 속에 들어간 한국어 몇 마디와 그 가사들을 어색하지 않게 따라 부르는 유튜브 속 수 많은 외국인들을 보면서, 동경하는 외국 음악을 베끼기에 바빴고 조금이라도 힙하게 보이기 위해 맥락 없이 노래 가사 속에 영어 몇 마디 집어넣던 불과 얼마 전의 우리 가요계가 비교되며 만감이 교차되었다.
글로벌 문화권력을 이끌고 있는 세계에서 공고해진 K문화 권력에 대해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K팝이라는 장르는 어떻게 성장을 해왔던 걸까.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0년대를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부흥기로 정의하는데 아마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당시 대중들은 지금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을 '공연 윤리 위원회'란 무서운 단체의 사전 심의를 통과한 그저 그런 사랑 노래 또는 건전가요라는 이름의 계몽성 노래에 지쳐 있었다.
당시 버블경제의 끝을 향해 내달리며 아시아 시장을 선도하던 옆 나라의 '세련된' 음악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을 돌며 ‘빽판’을 찾던 대중들에게 민주화와 함께 드디어 90년대라는 자유와 개성의 시대가 찾아오게 된다. (X세대의 출현을 알린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 억눌려 기초체력이 부족했던 대중음악계는 높아진 대중의 시선을 따라잡지 못해 부끄럽게도 옆 나라 음악을 베끼기 바빴고, 교포 가수들의 등장과 함께 어설프지만 서구 음악을 흉내 내면서도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대형연예기획사의 등장과 ‘연예산업’으로의 재편은 세계가 열광하는 K컬쳐의 등장과 번영의 시작을 알린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따라한다는 이야기가 돌때만 해도 사람들은 반신반의 했지만 이제는 K팝스타의 노래가 해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걸 보면 K팝이 세계시장에서 하나의 장르가 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예전 서태지와 아이들이 빌보드 핫100에 들었다며 흥분했던 루머 수준은 더 이상 아니리라...)
동경이라는 이름 아래 J팝을 베끼기에 급급했던, 그리고 맥락 없는 영어단어 한마디씩 넣고 스웩을 외치던 수준이 부끄러워했던 X세대의 영포티는 이제는 오히려 한국어 가사가 한마디씩 섞인 노래를 외국인들이 따라 부르고, 세계적 스타가 된 K-아이돌의 콘서트 중에 한국어로 떼창을 하는 해외 팬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보게 된 것이 마냥 신기하고도 그저 부끄러웠던 시절에 대한 위로가 된다.
그림책테라피스트의 말_ 정·흥·한으로 읽는 K-컬처
9년 전, 터키(지금의 튀르키예)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에요.
공항 환전소 직원이 한국에서 왔냐며 묻더니 갑자기 “나 한국말 잘해요. 오빠, 김치, 안녕” 자랑스럽게 내뱉으며 활짝 웃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스탄불 어느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듣고도 깜짝 놀랐던 기억도 있어요. 90년대 유행했던 가수 ‘리아’의 노래 〈눈물〉이 터키어로 번안되어 트럭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낯선 거리에서 만난 익숙한 멜로디, 그 순간 같은 노래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의 세상이 조금 더 가까워진 듯 했습니다.
K-팝이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된 데는 단순한 비트와 퍼포먼스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바로 우리 문화에 깊이 배어 있는 정(情)·흥(興)·한(恨)!
정(情)은 멀리 돌아서도 끝내 이어지는 마음, 함께 나누는 따뜻함입니다. 아이돌 팬덤이 보여주는 끈끈한 유대와 ‘함께 울고 웃는 마음’은 전형적인 한국식 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흥(興)은 즐거움과 에너지를 터뜨리는 힘입니다. 무대 위에서 아티스트와 팬이 한 몸처럼 뛰고, 떼창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한국인의 흥이 세계인에게 전해진 장면이지요.
한(恨)은 한국 문화의 독특한 정서라고 할 수 있어요. 억눌린 슬픔과 상처가 예술로 승화되며 만들어 낸 깊은 울림. 발라드 속 절절한 감정, K-드라마 OST가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힘은 바로 이 ‘한’에서 비롯됩니다.
이렇듯 K-팝은 단순한 대중음악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흥·한이라는 정서적 자산을 세계 언어로 번역해 낸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학문 분야로 오면, 여전히 우리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이론을 번역해 들여오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서구에서 depression (우울증) 이라 부르는 것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화(火)병’이라 불러왔습니다. 단순히 번역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어온 집단적 맥락과 정서의 뿌리에서 나온 이름이지요. 억눌린 감정이 병이 되고, 풀리지 못한 울분이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경험을 ‘화병’이라 명명한 것은, 이미 한국인의 삶과 문화 속에 축적된 심리학적 통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 고유한 언어를 학문적 자산으로 충분히 확장하지 못했습니다. ‘정’, ‘흥’, ‘한’과 같은 정서는 한국인의 삶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인데도, 학문에서는 여전히 미국식 개념과 도구에 기대어 해석하기 바쁘지요. 마치 K-팝이 세계 무대에서 한국어 가사를 있는 그대로 전하며 공감을 얻어낸 것과 달리, 학문에서는 아직 우리의 고유한 언어를 세계의 학문 언어로 번역해내는 데 소극적인 셈이에요.
저는 여기에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정서적 자산을 우리만의 언어로 풀어내 세계와 연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화병’ 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억눌림과 해소, 정과 흥으로 풀어내는 방식, 한을 예술과 공동체적 경험으로 승화 시켜온 문화적 전통은 이미 깊은 학문적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것은 단지 한국인에게만 의미 있는 정서가 아니라, 불안과 상실, 억눌림 속에서 길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쫒다보니 그림책 〈세상에 필요한 건 너의 모습 그대로〉가 겹쳐져요. 책 속 저마다 다른 국적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적인 방법으로 열기구를 만들어 하늘로 띄워요. 크기와 색깔, 무늬가 제각각인 열기구들이 등장하지요. 다름이 모여 하늘은 더욱 다채로운 풍경이 됩니다. “세상에 필요한 건 너의 모습 그대로”라는 메시지는, 마침내 서로 다른 열기구들이 어울려 하늘을 수놓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다름은 함께할 때 더 큰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을요.
한국 문화가 세계 속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억지로 흉내 내지 않고, 고유한 색을 지켜내기에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요. 아이돌 무대의 뜨거운 떼창 속에도, 드라마 장면 속에도, 낯선 곳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노래 한 줄 속에도, ‘대한민국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은 서로 닮아 있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우리가 빚어내는 ‘다채로움’ 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다움’ 을 있는 그대로를 지켜낼 때 오히려 세계와 더 깊이 이어질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비교와 모방이 아니라 우리 안에 켜켜이 쌓여온 이야기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과 흥과 한이 어우러져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결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멀리 퍼져 나가며 세계를 향한 희망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아나운서님은 GOLDEN을 꼽으셨지만, 저는 아이돌 급 비주얼의 ‘사자보이즈’ 무대에 더 마음이 갑니다. 역시 노래든 사람든, 결국은 눈과 귀가 동시에 즐거워야 오래 기억에 남는 법! 이건 세계 만국 공통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