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스카이캐슬>까지

변하지 않는 한국사회 , 행복은 여전히 수능 순

by 전지적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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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가 세상에 나온 것이 2018년 겨울, 11월23일이었다.

그해 수능이 11월15일에 치러졌으니 수능 이후 일주일만 이었는데 수능성적과 수시발표, 정시를 코앞에 둔 시점에 대학입시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나온 것을 설마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입시가 갖는 의미는 드라마가 가장 주목받을 방송시점을 결정한, 공부 잘했던 사람들이 모인 방송국 사람들이 가장 잘 알 테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시장은 교육시장이라 했다.

‘교육’이란 거룩한 단어에 붙은 ‘시장’이란 표현에 거부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 옛날 과거제도 도입 이래 교육을 신분상승과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해온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인의 DNA는 교육 몰빵의 비논리와 불합리성을 따지지 않는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는 어쩔 수 없는 희생정도로 치부되어버리는 사회분위기니 우리는 자식들이 그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스카이캐슬> 이전에도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를 꼬집은 영화나 드라마는 일찍부터 많았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개봉한 게 1989년.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이다.

부모(주로 엄마)의 성적 압박에 시달리다 투신자살한 여학생 은주(이미연 분)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실제로 이 영화는 1986년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이 남긴 유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O양의 유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중략>

난 로보트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다.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내 삶의

인생관이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땐,

난 그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떤다.


난 그것을 해야만 해. 그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중략>

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것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 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 1986년 1월 15일 새벽에 -


당시 <O양의 유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공개되었던 한 소녀의 유서는 입시가 전쟁이란 단어를 수반할 정도로 과열된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부모들은 우리아이는 괜찮을까 괜스레 자녀의 방문 앞을 기웃거리면서도 자칫 끔찍한 소식에 흔들려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모순된 감정에 시달렸고, 엉뚱하게도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이 ‘극기심 부족’ 때문 이라는 진단을 내린 당시 서울시 교육감은 극기 수련 강화를 지시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참교육을 표방한 전교조가 의식 있는 교사들에 의해 결성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전교조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영화관에 내걸린 1989년에 결성되었다.


그렇게 입시경쟁에 시달린 소중한 생명들이 스러지고 온 사회가 문제를 공감했다면 우리 사회는 일찍이 변했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21세기에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시간이 흘러도 변한 것이 없고 내신과 수능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며 오히려 더 공고해진 경쟁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오히려 당시 O양의 유서를 보며 함께 울고 분노했던 또래들, 우리 자식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청소년들은 이후 세월이 흘러 단군 이래 최악의 사교육시장을 이끌어가며 입시코디네이터라는 기형적인 직업(?)까지 창조한 부모 세대가 되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스카이캐슬>로 흘러온 시간 속에 우리는 양극화로 인해 계층 격차가 더욱 더 공고해진, 올라가기 위한 경쟁에서 ‘그들만의 캐슬’을 지켜내기 입시까지 진화한 세계를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여전히 감정 없는 물건처럼 입시에 소비되고 있는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만나게 된다.


86년 추운 겨울. 시리디 시린 결정으로 온 사회를 울렸던 한 소녀의 기도는 40여년의 시간이 흘러도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인이라는 DNA가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굴레 속에 살아가는, ‘행복은 여전히 수능 순’인 2025년의 은주들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할까.




테라피스트의 말_ 네모 상자 속에서 자율성을 잃어버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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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의 말_ 네모 상자 속에서 자율성을 잃어버린 아이들


아나운서님의 글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고3 아이를 둔 엄마로서 다시 읽다 보니, 마음 한쪽이 유독 먹먹해졌어요. 이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은주’의 세상은 끝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1986년 한 소녀의 “난 로봇도 아니고 인형도 아니에요.”라는 절규가 2025년에도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건 왜일까요.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개봉한 지 36년이나 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건, 그 사이 교육제도가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입시’를 더 정교하게, 더 빠르게 진화시켰고 그 결과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어요. 유치원 입학부터 이미 경쟁의 출발선이 나뉘고, 아이들의 호기심은 ‘영재 판별’이라는 이름 아래 점수화가 되었습니다.


성장은 평가가 되었고, 놀이는 스펙이 되어버린 슬픈 현실입니다.


토니 모리슨의 그림책 『네모 상자 속의 아이들』을 보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겠다는 이유로 커다란 상자 속에 가둡니다. 그 안에는 장난감도, 미끄럼틀도, 물침대도 있지만 아이들은 웃지 않아요. 그리고 어른들은 말하죠.

“얘야, 넌 아마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너처럼 자기 마음대로 구는 건 진짜 자유가 아니야.” 어른들이 만든 그 상자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랑의 공간’이라 믿었지만, 결국은 아이들의 ‘자율성’, 즉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볼 자유의지 를 빼앗은 감옥과도 같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입시제도가 그림책 속 ‘네모 상자’와 닮아 있는 듯 해요. 그 안에서 아이들은 자유를 배우기보다 ‘정답’ 을 배우고, 자신의 의지보다 누군가의 ‘기대’ 를 선택하는 법을 익혀갑니다. 그렇게 자율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잘 자란 아이’가 아니라 ‘길들여진 아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고등학교생활이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여정이 아닌, ‘서열화’를 위한 ‘자료 수집’ 처럼 느껴져요. 3년 동안 쏟아진 학교 과제, 수행평가, 각종 대회 준비, 내신과 수능 속에서 아이는 버겁고, 부모들은 불안 속에서 허우적 거립니다. 이 과정에서 온갖 입시 컨설팅 학원과 고액 과외, 입시 코디네이터들이 생겨나고 불안에 휩싸인 부모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이분들 마케팅은 배워야 해요. 불안을 팔고 희망을 약처럼 포장하니까요.-_-;)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스카이캐슬>까지, 우리는 양극화의 사다리를 견고히 쌓았습니다. 그 견고함 속에서 아이들은 끊임없는 테스트를 견디며 ‘성장할 여백’을 잃어버리고, 부모는 경쟁의 책임과 불안을 대신 짊어집니다. 그 결과 ‘감정 없는 물건처럼 입시에 소비되고 있는 슬픈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은 학원과 정신과를 함께 오가고 있는 것. 아이들과 청년들이 병원 대기실에 줄을 서야 하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그 불안은 36년 전, ‘우리 자식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세대’ 가 만든 그림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아나운서님께 글을 받기 몇 시간 전, 아이에게 부끄럽게도 잔소리를 했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차민혁처럼 말이죠. “조금만 더 하라는 얘기야. 1등급….” 조금만 더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 좀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 정작 살아보니 그것이 꼭 ‘성적순’, ‘수능 순’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결국 저도 주어진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수능을 앞두고는 간절히 요행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는, 부끄러운 수험생의 엄마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수험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리듬으로 천천히 걸어가길 바랍니다. 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초록이 자라듯, 이 시절 또한 언젠가 여러분 안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힘이 되어줄 거라 믿어요.


그러니 부디, 불안이 여러분을 삼키지 않기를, 그 속에서도 마음이 여전히 따뜻하기를,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언젠가 이 시절을 돌아볼 때 “그때의 나는 꽤 잘 버텼어.” 라고 말하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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