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의 말_
드라마의 사회학, 시대를 담은 삶의 이야기
드라마는 시대의 거울이다.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드라마속 이야기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언어로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기에 드라마를 잘 살펴보면 그 시대를 관통하는 코드가 보인다.
미국의 한복판,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여섯 친구들의 삶과 우정, 사랑을 그린 미드 <프랜즈>는 1994년 세기말부터 2004년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을 미국인들, 그리고 전 세계인과 함께 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04년 5월6일 마지막 방송은 미국 전역에서 야외 전광판으로 방영되었고 동거 동락한 ‘친구들’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미국의 거리가 한산 했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글로벌 OTT순위에서 빠지지 않고 있으니 도대체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 걸까.
미래보다는 현재, 가족보다는 친구.
116개월간의 사상 최장기 경제호황, 재정흑자와 재정부채 상환, 30년래의 최저 실업률, 2천2백만 개의 신규 일자리 창출, 최저 범죄율…….
1990년대 초, 건국이래 유래 없는 호황을 이어가고 있었던 미국은 그 풍족함을 바탕으로 가족보다는 친구,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기자는 풍조가 지배했고, 때마침 이뤄진 냉전의 종식은 보수적 가치관의 레이건 정부의 마무리와 함께 좀 더 리버럴한 클린턴 정부의 출범으로 이어지며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한껏 표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 등장한 드라마 <프렌즈>의 유쾌한 6명의 친구들은 가족과 살지 않고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말 그대로의 즐기는 삶을 보여준다. 전문직 고소득층인 두 명의 친구(로스와 챈들러)는 살인적인 뉴욕의 집세를 걱정하지 않고, 결혼식장을 박차고 나와 부모의 신용카드를 잘라버리며 독립한 레이첼은 특별한 자격 없이도 쉽게 직장을 구했으며, 히피(피비)와 배우 지망생(조이) 그리고 요리사인 모니카도 간혹 경제적 어려움은 겪을지언정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 자체를 구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던 드라마속 배경이 바로 이 시기의 미국이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인기만큼이나 엄청난 화제를 모았는데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PPL로 그득한 드라마 속 세트의 소품 하나하나는 호황 속 유행의 정석이자 선구자였고 무겁지 않은 주인공들의 고민과 캐릭터는 당시 사회풍토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30년이 지난 이 드라마는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그렇게 뉴욕의 여섯 친구들은 시청자들과 함께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가면서도 끝을 모르는 인기를 구가했지만 2001년의 9.11테러가 벌어지며 여섯 친구들의 이야기도 전환점을 맞게 된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자 세계 경제 호황을 이끌어갔던 미국의 심장 한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테러는 10여년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낙관주의를 무너뜨렸고 주가는 폭락했으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늪으로 세상을 밀어 넣게 된다.
포용보다는 혐오, 그리고 의심과 불안이 지배하는 시대의 출현.
신나고 흥겨운 음악은 죄의식을 불러왔고 더 이상 인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시대. 세상을 통째로 바뀌어 버렸다.
원래 불안의 시대에는 친구보다 가족을 먼저 찾기 마련이다.
9.11 이후 미국 사회를 비롯한 세계가 보수화되고 테러 여파로 경제도 어려워지면서 화려한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 자유로운 삶의 정점을 보여주던 친구들은 이제 가족을 찾기 시작하며 드라마는 종말을 향해 간다.
챈들러와 모니카는 결혼을 하고, 10년의 세월을 사랑놀이에 헤매던 로스와 레이첼도 마침내 가정을 이룬다. 피비도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오직 조이만이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프랜즈>는 대단원을 마무리 하게 되는데 이후 미국 드라마의 중심은 가족위주, 그리고 교훈적인 스토리로 중심이 넘어가게 된다. (악의 축인 테러리스트를 무찌르며 가족을 보호하는 ‘위대한 미국인’의 이야기들이 이 시기에 넘쳐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드라마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방영 기간 22년 2개월, 무려 1088부작이 방송된
우리나라 최장수 드라마의 기록을 갖고 있는 MBC <전원일기>는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이촌향도 붐이 일던 시절에 도시민들의 애틋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세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아직 공동체적 가치관이 남아있던 시절 인생의 가치를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양촌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도시로 이주한 이들의 자식세대가 성장하고 이들에게 농촌은 더 이상 ‘그리운 고향’이 아닌 시대가 되면서 써내려가던 일기는 끝이 난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는 가족애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육남매>가 큰 인기를 끌었고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가족의 의미를 강조했으며 광고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부자 되세요”를 외치고 국난극복이 어느 정도 이뤄진 시기부터는 다시 소비와 트렌드에 민감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된다.
2010년대 이후의 드라마는 재밌는 양상을 보이는데 양극화가 심해지며 젊은 세대의 고통이 더해지다 보니 주인공이 전지전능한 초능력을 보유한 외계인(별에서 온 그대)이 되거나 신이 되거나(도깨비), 타임 슬립을 통해 주인공이(특히 남자들이) 엄청난 능력을 보이는 드라마가 유행코드가 되었다. (물론 <미생>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드라마도 있긴 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속에도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긴다.
제목이 드라마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이 드라마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욕망과 생존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멸 위기의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똘똘한 집 한 채를 가진 대기업 샐러리맨. 어쩌면 김 부장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삶이 아닌, 이 시대 (인간다운) 생존의 마지노선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보인다.
경쟁이 일상이 되고, 경쟁에서의 승리가 성공이 아닌 ‘생존’을 의미하는, 2025년 대한민국의 평범하고도 고달픈 삶이 이토록 매력적이면서 슬프게 그려질 수 있을까.
과거 <무동이네 집>에서 본 평범한 가족의 행복한 일상이나, <우리들의 천국>이 보여줬던 낭만의 시대, 그리고 <프랜즈>의 여유롭고 즐기며 살아가는 시대는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추억의 한 조각이 된 것일까.
앞으로의 드라마들은 어떤 시대를 그려나갈지 궁금해진다.
사족1.
<남자 셋 여자 셋>, <세 친구>,<논스톱 시리즈>, <으라차차 와이키키>의 공통점은?
정답: 미드 <프랜즈>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 혹은 거친 표현으로 베꼈거나 적어도 스토리를 참조한 흔적이 많은, 뭐 점잖게 표현하면 <프랜즈>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다.
옛날 옛적 이야기지만 80~90년대 방송국 PD가 해외 출장(미국이나 일본)을 가면 호텔방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TV 녹화를 하는 일이 많...... 종종 있었다.
사족2.
시도 때도 없는 찌질한 농담으로 사랑받았던 챈들러, 매튜 페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프랜즈> 속편 루머는 이제는 영영 사라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테라피스트의 말_
드라마의 마음학: 시대를 담은 마음의 이야기
아나운서님 덕분에 오랜만에 <프렌즈>를 떠올려봅니다.
정말 대단했죠. 2000년 초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프렌즈>의 한 장면쯤은 등장하곤 했으니까요. 앞으로 또 그런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요. 요즘은 노스탤지어가 하나의 흐름이니 30년 뒤, 시니어가 된 그들의 일상을 다시 시트콤으로 본다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상상도 해봅니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드라마들을 시대와 함께 다시 바라보니 “그때 왜 그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생깁니다. 아나운서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시대는 드라마의 얼굴을 바꿉니다.
그렇다면 한국 드라마에서는 어떤 마음의 풍경이 시대를 비추어 왔을까?
그 질문을 품고 자연스레 떠오른 작품이 바로 2016년 이후의 드라마들이었습니다.
2018년 <나의 아저씨>는 <도깨비>의 판타지와 달리 현실 한가운데에서 버티는 마음을 보여준 드라마였습니다. 지켜야 할 게 많아서 울 수조차 없는 사람인 동훈과 울 자격조차 없다고 여겨온 지안의 이야기. 거창한 사랑이나 극적인 변화 대신, 사람이 주는 힘을 보여줍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건 극적인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힘이라는 것을요.
2022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너는 봄날의 햇살이야.” 이 말이 오래 남았던 건 대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긴 고립 속에서 우리가 모두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받고, 증명해야만 했던 관계 속에서 “지금 그대로의 네가 나는 참 좋아.” 라는 뜻의 대사는 어쩌면 위로가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제주 바다처럼 조용하고, 감귤 향처럼 은근하게 따뜻한 이야기, 2025년의 <폭싹 속았수다>. 주인공들의 하루는 특별하지 않았어요. 일하고, 밥 먹고, 쉬고,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데 우리가 그 이야기에 오래 머물렀던 이유는 사는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드라마와 그림책의 공통점이 있다면,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는 삶을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크고 거창한 의미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숨 쉬고 있는 우리의 시간을요.
드라마가 한 시대의 마음을 담아낸다면, 그림책은 한 사람을 섬세하게 비춰줍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김효은 작가의 그림책 〈나는 지하철입니다〉를 떠올렸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길을 달리는 지하철 안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삶이 스쳐 지나갑니다. 구두를 고치는 재성 아저씨, 제주 바다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해녀 할머니,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취업준비생 도영 씨. 겉보기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저마다의 사정과 이유, 그리고 버티는 시간이 깃들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미래가 어느 정도 그려지고, 해야 할 역할이 정해져 버린 것만 같은 나이.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군가의 박수나 인정이 없어도,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고요. 그래서 지하철은 오늘도 같은 속도로 달립니다. 덜컹, 덜컹.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실은 채로...
아나운서님이 마지막에 던진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앞으로의 드라마는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어쩌면 더 화려한 서사도, 더 자극적인 전개도 필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랜 동안 과한 이야기 속에서 오래 버텨왔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화려한 서사가 아닌 내가 살아낸 오늘,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곁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우리들의 지하철은 내일도, 모레도 덜컹거리며 같은 속도로 달릴 것입니다.
그 안에는 여전히 저마다의 서사가 실려 있겠죠.
그래서 저는 부디, 그 이야기가 끊기지 않기를, 우리의 하루가 사라지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드라마 〈도깨비〉가 남겨준 그 말처럼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네가 곁에 있어서 모든 날이 좋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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