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징어통찜

by 지도그림

길을 가다가 사방에 간판이 번잡하게 걸린 건물을 보았다. 2층짜리 상가 건물이었는데 앞면과 옆면, 후면, 1층과 2층, 빈 벽이라면 모두 간판이 붙었다.


'육미.'


고깃집 같은 이름을 내건 해물포차이자 꼬치구이집인 이곳은 노란색과 흰색 네온사인, 시트지, 현수막에 이름을 넣어 왕성하게 가게를 알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주력 메뉴를 선보일 때 각각 붙인 것처럼 보였다.


- 선술집 육미 35년 전통 회덮밥

- 육미 모듬전 동태전 김치전 파전

- 선술집 육미 쭈꾸미철판복음 벌교꼬막무침 대구새끼+땅콩

- 싱싱함이 살이있는 생쭈꾸미 육미


B는 저기라고 말했다. 저기가 오징어통찜을 파는 곳이라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만큼이나 빼곡하게 가게 벽마다 메뉴가 적혀 있었다. 종업원은 우리에게 에이포 여섯 장을 엮은 메뉴판도 주었다. 글자가 줄줄이 정직하게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먹물오징어통찜? 이건가?"

저 벽에는 '총알오징어통찜'도 있었다. 사장님은 그게 그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것을 시켰다.


내 인생 처음으로 오징어통찜을 먹게 된 날이었다. 접시에 긴 오징어 두 마리가 보라빛으로 익어서 나왔다. 검은 주방 가위와 함께였다.

사장님은 다리와 몸을 연결하는 부분을 자를 때 조심하라고 했다. "거가 먹물."


오징어를 가로로 착, 착 잘랐다. 고리 모양으로 잘린 단면 안에는 검고 흰 내장이 눅진하게 묻어 있었다. 와사비를 푼 간장에 살짝 찍는다. 입에 넣는다. 담백하고 쫄깃하다. 검은색 내장은 감칠맛이 좋고 고소했다. 우리는 산사나무 열매로 만들었다는 소주를 곁들였다.


덕지덕지 제멋대로의 그 선술집, 포차, 꼬치집, 해물, 횟집, 술찜집에서는 목요일 일과를 끝낸 직장인, 주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를 채우고 각기 다른 각자를 위한 메뉴와 함께 말과 술을 섞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흥성하고 흐릿하고 쫄깃하고 배부른 느낌. 그 뒤로 먹은 오징어통찜은 어떤 것도 그때 기억 속 통찜처럼 맛있지는 않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