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사건 일지>1. "완월동 언니들"

2001년 2월, 부산

by 집녀

(완월동은 이처럼 실내가 훤히 보이는 유리방이 즐비하다)


길가던 사람들 시선이 곱지 않다.

대낮에 유리방에 앉아 있으니 당연하다.

난 지금 완월동 유리방에 앉아 일을 하고 있다.

언니들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인형처럼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을 두드리며 전화를

받고 있다. 말 그대로 일을 하고 있다. 의아해하는 행인들

‘무슨 콘셉트인가?’,‘못 보던 아가씨인데?’

그런 눈빛. 이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당장 이상한 취급을 받더라도 이 기사는 송고하고 볼 일이다. 그나마 화재현장과 가까운 곳, 밝은 곳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여기 언니들이 일하는 유리방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시 24살의 나는 부산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인 완월동의 한 업소 유리방 안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5시간 전)


“아저씨 완월동이요!”

목적지를 들은 택시기사가 표정이 야리꾸리하다.

“일하러 가요”

묻지도 않았는데 괜히 말했다. 오해만 커진다.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 선배다. 크게 말한다.

“죽었다고요? 네... 한 삼십 분쯤 뒤면 도착해요”

궁금하다는 표정의 아저씨.

“무슨 일 있소?”

“네... 불이 나서 사람이 죽었네요. 완월동에서요”

‘완월동, 속칭 완월동.’

정식 명칭은 부산 충무동 3가,

‘달을 즐기는 곳’,‘달을 사랑하는 곳...’.

부산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

택시서 내리자마자 추위가 닥쳤다. 앰뷸런스와 소방차 소리가 요란하다.

화재현장엔 매운 연기가 남아 있다. 불은 5층 건물 중 4층에서 났다. 그을림으로 온통 시커멓다. 경찰과 소방관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 같은 건 안중에 없다.



(건물 내부는 불에 타 온통 검게 변했다)


수습 1개월 차.

출입기자 명함도 못 올리며 얼굴이 덜 알려진 까닭에 내가 누군지 관심도 없는 것이 되레 다행이다. 덕분에 사건 현장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물바다인 건물.

앞으로 불 난 곳에는 절대 좋은 신발을 신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시신은 어디 있죠? 옮겼나요?”

그나마 낯익은 경찰을 찾아 물었더니 윗 층을 가리킨다. 대신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란다. 날 열성 기자로 잘못 본 모양이다. 설마... 내가 건드릴 것이라고는 나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가자 복도 곳곳에 마네킹이 쓰러져 있다.

머리는 없고 까슬까슬한 살갗의 질감. 이상하게도 한결 같이 계단 쪽으로 손을 뻗고 있다. 계단을 향하게 일부러 눕혀놓은 듯한. 한참을 바라봤다.

‘여기에 왜 마네킹들이 놓여있지? ’

몇 분이 지나고서야 피해자 시신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랫동안 시선을 마주쳐 버렸다. 난생처음으로 시신을 봤는데 그것도 시신 눈을 똑 봐로 보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멍청한 것! 돌대가리!’

자책했지만 늦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시신을 본다.

괴로움과 공포가 남아있는 얼굴 표정. 살아나가려는 몸부림.

뒤틀린 마네킹 같은 시신의 몸에서 화재 순간이 보인다.



언니들이 일하는 유리방에 앉아있다.

밤새 비추는 빨간 조명은 없고 아늑한 방일뿐이다.

큰 창문으로 햇살이 잘 든다. 따뜻하다. 전화도 있다.

사망자 4명, 부상자 4명.

사망자 4명에는 손님 3명과 종업원 1명이 포함됐고 부상자 4명은 모두 업소여성이다. 노트북을 꺼내 기사를 쓴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흘끔흘끔 쳐다보지만 버틴다. 얼굴 보면 알아서 판단하겠지. 주어 동사가 맞지 않고 오타가 춤을 치는 문장들을 그래도 기사랍시고 보내고 있다.

혼자 있던 방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중년의 부부. 경찰이 함께 있다.

‘누구지?’

경찰이 중년 부부에게 조그만 물건을 전한다.

“000 씨 신원을 말해주는 소지품입니다. 한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꼼꼼히 쳐다보던 부부. 소지품을 만지던 부인이 갑자기 오열하며 쓰러진다.

시커멓게 탄 시계다. 남편은 아닐 거라는 표정으로 부인이 꽉 쥔 시계를 뺏아 유심히 본다.

“이 시계가... 그때 인기 있는 모델이라서 예 많이들 찰 텐데...

신분증 있습니까? 우리 아 이름이 있는 신분증요! 친구들하고 술 마신 댔으니까 친구들 중에 한 명 일수도 있는 거 아임니꺼! 친구들은예? 연락해보셨어예?”

“친구들은 술 마시고 다들 집에 갔다고 합니다. 취업 기념으로 돈 모아서 0군을 여기에 보내줬다고 합니다.”

“아이고 이놈아!!”

그제야 중년 남성은 무릎을 꺾으며 바닥으로 쓰러진다.

“아이다... 아이다.... 전화 올끼다. 좀만 있어봐라. 이거는 흔한 시계다!

어디서 술 마신다고 정신이 없는기다!!!”

조용히 방을 나왔다. 통곡소리는 계속됐다. 청천벽력.

아들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고통의 순간을 엉겁결에 같이하고 말았다.

절대 겪고 싶지 않은, 겪어서는 안 될 상황을 보게 된 것이다.

수사본부가 마련된 인근 파출소에는 관할 경찰서 직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피해자 가족들도 속속 왔다. 사망 소식에 울며 쓰러지며 분노하며 절망했다.

하지만 언니들을 찾는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 하루 기사는 피해 상황과 함께 성매매업소에 대한 비난에 집중했다.

‘비상구를 확보해 놓지 않았다’,

‘창문마다 방범 창살이 대피를 막았다’,

‘관할 소방서는 화재 감독에 소홀했다’ 등이다.

살아남은 성매매 여성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

혼자 도망쳤다’,

‘손님들 정신을 잃게 만드는 뭔가 먹인 게 틀림없다’등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부상당한 성매매업소 여성 4명에 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혼자 도망친 걸까?

화상을 입고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만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주인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 달 뒤

마스크와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여성 12명이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화재로 부상을 입었던 성매매 여성과 업소에서 같이 일하던 여성들이 나란히 앉은 것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모자이크는 기본이고 음성변조까지 확실히 해주셔야 합니다.”

윤락여성을 돕는 여성단체 직원의 목소리가 카랑하다.

처음엔 마이크를 잡기 머뭇거렸던 언니들.

하지만 이내 하소연이 봇물 터졌다.

“화상치료를 받다 병원에서 쫓겨났어요. 더 이상 치료를 해줄 수 없다고요. ”

“사장이 치료비를 내주지 않아요. 화상 입은 이 얼굴로 일도 못해요”

“화재 나던 날 입은 잠옷 그대로 쫓겨나 여관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성매매 여성들이 처음으로 업주를 상대로 공식적으로 보상을 요구한 날이다. 세상에 목소리를 처음 드러낸 날이다.

지금 그 언니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후로 관심은 사라졌다. 나의 관심도 사람들의 관심도...

하지만 그 후로 성매매 여성 지원단체가 처음으로 생겼고

완월동 언니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성매매 특별법이 생기자 생존권을 위해 마스크를 쓴 채 길거리에 나선 것도

바로 완월동 언니들이 처음이다.

동양 최대라던 완월동은 성매매 특별법과 재개발이라는 변화를 겪으며 사라지고 있다.

완월동 화재는 사실상 이런 변화의 시작으로 기록된다.

많은 업소가 폐쇄되고 언니들은 떠났다.

중장년층 남성들의 무용담의 하나로 완월동이 회자될 뿐이다.

입사 한 달 만에 겪은 큰 사건, 나의 완월동 이야기는,

아니 ‘완월동 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완월동에 불이 난 날은

2001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