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건 일지>2.노인의 앨범

2001년. 부산 강서.

by 집녀


부산의 외곽지역 들판에 들어선 허름한 가옥.

여기서 터진 살인사건.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실종사건.

피해자 핏자국은 가득하지만 시신을 찾지 못했기에 실종사건이다.

경찰서에서 돌아다니다 소식을 듣고 경찰차를 얻어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차도 없고 찾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비가 온 뒤라 땅이 질퍽하다.

고물상을 겸한 가옥은 강한 바람에 지붕이 날아갈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이다.

현장에 도착하자 과학수사팀은 증거를, 경찰들은 시신의 행방을 찾고 있다.

피해자는 이 가옥에 살고 있는 40대 남성

공사장에서 일하며 가족은 따로 없다.


오늘 아침,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긴 옆방 남자가 피해자 방문을 열었다 경악했다.

방안 가득한 핏자국. 핏자국은 방 밖까지 이어지다 마당 한가운데서 뚝 끊겼다

목격자도 없다.

이 집엔 피해자와 신고자인 50대 남성, 그리고 70대 노인 세 명이 방 한 칸 씩을차지하며 살고 있다.

경찰 수사는 이들 세 명의 알리바이부터 시작한다

50대 남성은 당시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됐고 70대 노인은 방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했다. 노인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치며 방으로 들어가는 피해자 목소리를 잠결에 들은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당혹함을 느낀다. 인근 주민들로 수사망을 확대한다.

집안을 수색하던 경찰들이 대부분 마을 주민들에게로 갔을 무렵,

차가 없던 난 돌아갈 경찰차를 기다리며 마당에 앉아 있다.

“학생...”

“네? 저요”

뒤돌아보니 70대 노인이 허리를 구부린 채 손짓하고 있었다.

날은 추운데 얇고 허름한 옷.

“왜요? 할아버지? 뭐 도와드려요?”

“경찰은... 갔어?”

“아니요 다들 주위에 있어요. 왜요?”

“아니 추운데 방안에 들어오라고.. 내가 보여줄 것도 있어”

한발 한발 힘들게 움직이는 노인. 젊을 때 크게 다친 적이 있나?

노인 혼자 사는 방. 들어갈까 망설여지지만 경찰들이 깔려있다.

그리고 제 몸도 못 가누는 노인은 무섭지 않다.

혼자된 지 오래인 듯하다. 곳곳에는 정리되어야 할 살림살이가 널브러져 있다.

“옆 방 아저씨가 실종돼서 놀랐겠어요. 친하셨어요?”

“아니. 매일 술 먹고 난리 쳤다. 시끄러워...”

“그렇구나... 소문도 별로 안 좋은 것 같긴 하더라고요. 근데.. 절 왜 부르셨어요?”

“따뜻한데 있으라고..”

따뜻하지 않은데...

“심심하제. 이것 좀 봐라”

노인이 구석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꺼내 온다.

앨범인가? 그냥 공책에 사진을 붙인... 결론은 앨범이다.

가족들 사진이다.

“야는 첫짼데 지금 서울에 있고 야는 둘짼데 외국에서 일한다”

“와 자제분들이 많으시네요? 왜 같이 안 사시고요?”

“다들 바쁘다”

“손주도 많네요?”

“가끔 내가 선물 사서 보낸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노인은 자식 자랑을 하고 있는 거다.

“놀러 안 오나요?”

“여기에 우째 오노...좀 있다 같이 살 거다”

“언제요? 좋으시겠네요. 혼자 사시면 힘드니까 잘 됐네요”

“내... 돈도 쫌 모아 놨다. 같이 살라고”

고물을 모은다 했다. 노인은 가족과 함께 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나 보다

가엾은 노인. 무슨 사연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까?

근데...

왜 이런 얘기를 내게 할까?

한 30분쯤 이야기를 들었을까? 경찰 소리가 다시 들린다.

노인에게 미안하다며 잽싸게 방을 나선다.

노인은 손님이 나가든 말든 앨범을 계속 넘기며 쳐다보고 있다.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방 안이나 방 밖이나 추위는 비슷하다.

밑바닥까지 내려온 삶. 추위와 가난 속에 혼자 늙어가는 삶.

누구나 상상만으로도 두려워할 말년의 삶.

저 노인은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까?

안쓰러움을 뒤로하고 경찰 순찰차를 얻어 타고 회사로 돌아간다.


다음날 피해자가 발견됐다.

피해자 집과 얼마 멀지 않은 도랑에서다. 사망 원인은 과다출혈.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아 살해된 뒤 도랑에 버려진 것 같다고 했다.

이젠 실종이 아니라 본격 살인 사건이다.

피해자의 만행도 속속 드러났다. 술만 마시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난폭해지기 일쑤라고 했다. 마을 주민들 가운데 혼쭐이 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누구나 원한을 품을 수 있는 상황.

경찰은 살인도구와 목격자 확보에 인력을 더 많이 투입시킨다.


며칠 뒤,

용의자가 검거됐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달려단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중얼거린다.

경찰이 붙잡은 용의자는 피해자 옆에 사는 70대 노인.

나랑 단둘이 가족 얘기를 나눴던 그 노인이다.

노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뒤 들것에 실어 인근 도랑에 유기했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그럴 리가. 그 할아버지 나랑 얘기했는데. 그럴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정말이에요? 진짜 사람을 죽인 거예요? 그리고 태연히 나랑 얘기한 거예요?’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허름하고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노인.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다.

고개를 떨구며 경찰의 질문에 순순히 답을 한다.

나랑 얘기를 나눈 그 노인이 맞다.

잠시 내 쪽으로 눈을 돌렸지만 감정을 읽지 못하겠다.

피해자와 노인은 처음엔 친했다고 했다

노인은 큰 아들 같아서 밥도 챙겨주고 방도 치워주고 정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가 날이 갈수록 횡포를 부렸다.

술만 마시면 만만한 할아버지를 찾아와 패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는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술을 깨면 다시 괜찮았고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자식 같은 마음에 참고 지냈단다.

하지만 술만 마시면 난봉꾼이 되는 생활은 몇 년을 이어졌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 밤.

만취한 피해자가 자고 있던 노인 방으로 들이닥쳤다.

집에 왔는데 안 내다보고 자고 있다고 망할 영감이라며 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날도 계속 두드려 맞았다.

할아버지는 힘이 없었다.

지옥 같은 몇십 분이 지나가고 피해자는 자기 방에서 잠들어 있었다.

울던 노인은 둔기를 들고 피해자 방으로 찾아갔다.

자고 있던 피해자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쳤다.

그리고 피해자를 리어카에 싣고 인근 도랑에 갖다 버렸다 한다.

다행히 비가 와서 옮긴 흔적은 남지 않았다.

하지만 둔기가 발견됐다. 노인과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 있었다.

이게 노인의 진술 내용이다.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여전히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경찰의 질문에 순순히 답을 하고 있다.

나한테 앨범을 보여주며 얘기했던 걸 기억하기나 하는 걸까?

노인은 가족에게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왜.... 왜 그랬을까?

헤어져 사는 이유는 모르지만 이제 정말 영원히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은 알 것 같다.

사건은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을 죽인 노인과 단 둘이 방에 머물렀던 기억은 생생하다.

왜 가족들 앨범을 보여줬을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가족 얘기를 꿈결처럼 하던 노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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