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하냐?”
흔히들 쓸모없는 일, 별 성과 없는 일을 할 때 하는 말.
“삽질 실시!”
군대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눈 내리는 날 삽질하기.
“삽질”
난 아직도 이 말을 들으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삽질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그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구의 나대지.
이곳에 공장 폐기물을 묻었다는 제보를 받았다.
확인을 위해 미리 준비한 모종삽을 들고 땅을 팠다.
삼십 센티미터 깊이를 팠더니 흙 색깔이 다르다. 냄새도 난다. 좀 더 파보면 공장에서 제조하고 남은 폐기물이 땅 속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날.
구청에 미리 요청해 굴삭기를 동원했다.
구청 직원과 제보자, 그리고 촬영 팀이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있는 상황.
한 삽, 두 삽, 세 삽,
굴삭기로 한 뭉텅이씩 흙을 파보지만 아뿔싸. 나오는 것은 흙뿐이다.
구청 직원 :(흙 속의 검은 진흙 같은 것을 만지며) 음.. 이건 성분검사는 해 봐야겠지만 그냥 오염수가 스며들면서 쌓인 것 같은데요? 이걸로는 폐기물을 고의적으로 묻었다고 보긴 힘든데...
난감한 상황. 계속 파 봐도 공장 폐기물처럼 뭉텅이로 나오는 것은 없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기자(나) :(옆에 서있던 제보자에게)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안 나오는 겁니까?
제보자 :음... 사실 미리 말씀드릴까 생각했는데...
기자(나) : 네? 뭐요? 뭐?
제보자 : 사실은 여기 말고 자기 집 마당에 묻었다 하데요
기자(나) : 정말이에요?
제보자: 맞습니다. 어제 확인을 해봤습니다.
기자(나) :근데 왜 지금에야 그 말을?
제보자 : 그게.. 그래도 깨끗하게 다 파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을 해서... 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기자(나) : (성질을 내며) 참 내 그런 건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그럼 그 집 마당에 묻었다는 그 말은 진짜 맞습니까? 이번엔 틀리면 안 됩니다.!
제보자: 거기는 확실할 겁니다. 예전에 묻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고 하데요...
굴삭기를 이끌고 제보자가 가르쳐준 집으로 향했다.
제보자는 제보한 것이 들키면 곤란하다며 동행하기를 거부했다.
집주인, 즉 폐기물을 묻었다고 지목된 남자가 놀라 달려 나온다.
구청 직원은 제보가 들어왔으니 확인 차 왔다고 말한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제보자가 지목한 집 화단부터 파기 시작한다.
처음엔 완강하게 부인하던 남자는 이내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집주인: 그래? 어디 안 나오면 내 고소할 거요! 파봐! 파봐!”
기자(나): (움찔하면서도 목소리에 힘을 준다) 그러니까 한번 파보자고요! 그럼 서로 확실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사장님도 괜한 오해 안 사셔도 되고요. 이렇게 제보 들어올 정도면 사람들이 그렇게 안 좋게 생각하고 알고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냥 좋게 이해하세요. 안 나오면 원래대로 해 드릴게요
집주인 : 누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해서 내한테 이러요! 어? 어!
구청 직원:(귓속말로 기자에게) 근데 정말 안 나오면 어떻게 하죠?
기자(나) :(스스로 다짐하듯) 나올 겁니다. 제보자가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저 텃밭도 다 위장용일 거예요.
굴삭기 삽이 화단을 향해 가고
화단에 심어 놓은 상추 등 작물들이 파헤쳐지기 시작한다.
이때 갑자기 달려오는 할머니.
사색이 된 표정이다.
바로 집주인 남자의 나이 든 모친
할머니: (자신의 가꿔놓은 텃밭이 파헤쳐지는 것에 기겁하며) 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고!
집주인 :(할머니를 붙잡으며)어무이 가만있어 보소. 내가 여기다 폐기물을 파 묻었다고 누가 고발했는가 보요.
할머니 :아이고! 아이고! 무슨 폐기물. 아이고! 아이고! 내 상추!
구청 직원 : (귀에다 속삭이며) 저... 저... 진짜 나오겠지요?
기자(나)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며) 나.. 올 겁니다.
구청 직원 : 진짜 계속 팔까요?
굴삭기로 땅 파기를 몇 번을 했을까.
순간 퍽 소리 난다.
시선이 굴삭기 삽으로 집중되며
‘드디어 뭔가 나온 것인가!’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순간!
집에 전원이 나가 버린다.
집과 함께 연결돼 있는 옆 공장 불도 같이 꺼진다.
구청 직원 :(놀라 굴삭기 기사에게 소리치며) 뭡니까!
굴삭기 기사 :(난감해하며) 저기.. 여기에 뭐가 묻혀 있었나 본데요
구청 직원 : 그러니까 뭐가 뭡니까?
굴삭기 기사 : 전력선이 땅 아래 묻혀 있었나 보네요
구청 직원 :(화를 내며) 그럼 그런 걸 잘 피해서 파야죠!
굴삭기 기사 :(화를 맞 받아치며) 뭐 있다고 말을 해줘야 알지! 그냥 파라고 해 놓고선 내보고 어쩌라고요!
집주인: (집주인이 달려오며 악을 품은 목소리로) 보소! 보소! 이거 진짜! 지금 우리 공장하고 집하고 전기가 다 나갔거든! 보이제! 눈에 보이제!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그래 더 파봐라! 파봐! 어디 끝까지 가자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거나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거나
눈이 팽팽 돈다거나
이 모든 것은 일시적인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그 일시적인 혈액순환 장애는 머리로 피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발생하는,
그 혈관은 바로 심장이 쪼그라들며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여긴 지옥이다!
내가 만든 지옥!
나는 무덤을 파고 있다.
내 무덤은 바로 굴삭기가 파고 있는 저곳!
구청 직원 : 저기... 기자님... 진짜 큰일 난 것 같은데... 이거 뭐라도 안 나오면...
기자(나):...
구청 직원 : 그 제보하셨다는 분에게 다시 한번 연락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팠는데 안 나오면..
기자(나): 잠깐만요
떨리는 손을 숨기며 전화를 건다.
‘뚜.. 뚜... 뚜.. 뚜...’
기자(나) :(혼잣말로) 이 새끼!!!!
연락두절. 지옥이다.
제보자는 거짓말을 한 것일까.
왜 하필 내게. 왜 하필 내가 그 제보를 확인한다 해 가지고 내 무덤을 내가 파게 된 것일까. 어렵게 취직해서 겨우 일하기 시작했는데. 일을 그만둬야 하나.
보상은 얼마나 해야 할까...
.
할머니 : 아이고! 아이고! 내 상추~~ 내 상추~~
기자(나) :(애써 태연하며) 우선.. 우선은 계속 파 보죠. 어차피 엎어진 물. 조금만 더 파봅시다.
구청 직원 : 아이참. 이거 어쩌려고.. 해라니까 하겠는데... 뭐 대안은 있는 거죠?
계속하라고 지시하자 굴삭기 기사는 찜찜한 표정으로 파기 시작한다.
다 팠다. 텃밭 옆에 세워져 있는 간이 화장실 아래까지도 깨끗하게 팠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공장 폐기물이고 자시고 아무것도 없다.
구청 직원이 슬슬 뒷걸음친다.
굴삭기도 슬슬 후진을 한다.
할머니 : 아이고아이고 내가 몇 달을 키워 놓은 게 다 날아갔네 다 날아갔어
집주인 : 어무이요 울지 마소! 괜찮소! 다시 키우면 된다 아이가!
할머니 : 아이고아이고 내 상추
구청 직원 : (기자를 보며) 저... 어떻게... 하실 건데요?
기자(나) :...
구청 직원: 저기.. 저희는 그냥 말씀하신 대로 굴삭기로 판 것 말고는...
기자(나) :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울고 있는 할머니와 그 집주인 아들에게 다가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
방법은 단 한 가지
기자(나) :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못 알았나 봅니다. 제보자가 확실하다고 해서 저는 그 말을 듣고 확인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험상궂은 얼굴의 집주인이 다가온다.
기자(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 대 패려고 하는 것일까. 설마... 나는 여잔데... 근데 아저씨... 노총각인가?
나도 결혼을 안 했다는 뉘앙스라도 풍겨 볼까?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집주인: (크게 한숨을 쉬며) 됐고요. 마 가소! 저 노인네가 얼마나 놀랐는지 저렇게 하고 있다 아입니까! 마 꼴배기 싫으니 가소!
기자(나) : (더 크게 고개를 숙이며 이젠 울상까지 지으며)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사실은 파기는 싫었지만...
집주인: 내가 말이요. 기자 아가씨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일하려고 하다가 그런 거라고 이해하겠소. 그러니까 두 번 다시 꼴 보기 싫으니까 가소! 내 티브이 나온 것도 몇 번 봤는데 앞으로 이렇게 일하지 마소!
기자(나)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 어머님께는 말씀을 잘 좀... 제가 어떻게 보상을 해 드려야...
집주인 : 아이고 됐소 마 가라니까!
맘이 변할까 봐 잽싸게 도망쳐 나왔다.
모두가 잽싸게 철수했다.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는 서로 마주치지 말자
다시는 이런 일로 서로 괴롭히지 말자는 표정으로
구청 직원들과도 작별을 고했다.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 한편에 돌덩이처럼 가라앉아 있는 삽질 사건
어쩌면 이 일은 내 기자 인생에서 적극성이 떨어지고 소심한 기자로 변하게 한 부작용을 낳은 동시에 한편으로는 확신이 들 때까지 섣불리 나서지 않고 전후 사정을 파헤치는 꼼꼼함을 배우게 해 준 사건으로 남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궁금함도 남아 있다.
정말 그 아래 아무것도 없었던 것일까.
집주인 아저씨가 온정을 베푼 이유는 뭔가 있었는데 우리가 못 찾았으니까 용서했다 하면서 일찍 보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심장이 쪼그라드는 경험을 하고도 이런 미련이 남아 있다니
몹쓸 의심병... 기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