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잠이 덜 깨 멍한 의식에 다시 한번 경고음이 울린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다.
이 시간이 되면 들리는 익숙한 소리, 바로 팩스 소리다.
부산지방경찰청에서는 방송국, 신문사 기자들을 위해 각 경찰서 별로 간밤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간략히 적어 보내는 팩스 서비스를 한다.(당시 2000년대 초반임을 감안해주세요)
전화로 소방서와 경찰서를 밤새 체크하지만 혹시 모를 사건들이 팩스 상황 보고서에 적혀 있기도 해서 기자들은 꼭 챙겨봐야 한다.
간밤에는 조용했다.
사무실에 인기척 하나 없었다.
방송 제작을 위해 간혹 밤을 새우는 스텝들이 있기 마련인데 유난히 조용하다.
그러기에 방송국에 울리는 팩스 소리가 비상벨 소음처럼 크게 느껴진다.
그런 팩스의 삑삑 소리가 멈출 줄을 모른다.
‘간 밤에 사건 별로 없었는데 뭐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팩스 수신 소리는 6장을 받고 나서야 멈춘다.
‘헉’
각 경찰서 별 사건 보고서 6장이 팩스로 들어왔다.
그런데 전부 변사사건이다.
'아... 오늘은 명절이다....'
해마다 명절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사건은 바로 변사사건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죽는 사건이다. 사람이 죽는 이유로 살인, 사고사, 병사 등 많을 것이다. 그런데 명절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살이다.
통계상으로 조사한 것은 아니다. 기자로서 십몇 년 동안 해마다 두 번의 명절을 겪으면 체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명절에 목숨을 많이 끊는다.
오늘은 명절 중에서도 설이다.
설날 아침 까치소리가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팩스 소리에 놀라 챙긴 사건 보고서는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80대 0모씨가 가족이 모두 외출한 사이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경찰은 평소 외롭게 지내오던 정 씨가 이를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부산 00동에 사는 60살 0 모씨가 00병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어제 하루 부산에서만 모두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
아침 방송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사업이 망한 것을 비관한 30대의 자살, 기초생활수급자로 중증장애 아들과 함께 살던 70대도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낮에는 40대 여성이 자녀 3명과 함께 숨진 채 발견이 됐다.
자식들에게는 독극물을 먹이고 본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설 연휴 이틀 사이로 모두 10명이 죽은 것이다
전국적인 상황이 아니다.
부산에서만 그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조 이론을 말한다.
남들이 행복해 보일 때 오히려 자신의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을 대조 이론이라고 한다. ‘나는 왜 이런가...’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자기혐오와 자기 비하감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결국 목숨을 끊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는 자살하고 싶다고 느낀 적은 딱 한 번뿐이다.
중학교 때 수학시험을 심하게 망치고 집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며 이 성적표를 보이느니 ‘확 죽어버릴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정말 어제 일처럼 생생한 것은(하늘색이 뭐였는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던 것까지 기억난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인 것이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자살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으로 생각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결코 진지한 생각은 아니었다. 그 ‘죽어버릴까’란 문장을 떠올리면서도 ‘내가 미쳤네’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으니(그리고 시험을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내성도 생겼다. 그해 수학은 게 중에 정말 못 쳤었다)
지금도 그 이후로 죽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들었지만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죽을 만큼’ 힘들게 느낀 적은 많다. 하지만 ‘죽고 싶다’라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은 결단코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을 용기가 있으면 어디 도망가서 신나게 할 거 다 해보자라는 주의다.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제발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지만 결코 죽어서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삶이,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을 직접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남들보다 가장 많이 겪는 일은 ‘단연코’ 각종 사건사고이다. 그중에서도 날벼락같은 사고로 비명횡사하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봐 왔다. 아침에 잘 다녀오겠다고 출근한 딸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고 일 나갔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고... 평범한 일상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한 비극을 얼마나 많이 확인했는지 모른다.
물론 ‘어떻게’ 살아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견디기 힘들어함을 타인인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죽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죽으면 끝이야, 그러니 죽지 마’
할 수도 없다. 그들은 지금 삶을 끝내고 싶기 때문에 한 선택이다.
외로움과 괴로움. 그 두 가지를 이기지 못하면 정신은 약하게 되고 몸을 버틸 힘이 사라지면 소멸해갈 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그럼 이런 의문이 든다. 이 모든 힘든 상황의 기폭제 역할을 한 명절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그냥 쉬는 날들이 여러 날 겹친 연휴와는 다르다.
여름휴가를 낸 직장인이 휴가 기간에 자살을 한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을 보라.
특히 명절 기간에 비극적인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우리는 이 명절이라는 제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대조 이론. 남들과 비교하는 그 마음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명절.
당연히 행복해야 하는 날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는 마음을 더욱 떠올리게 하는 날이 바로 명절이기 때문이다.
행복을 비교하는 잣대가 유난히 강하게 나타나는 날이 명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행복’이라는 것보다 ‘비교’라는 말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절대 행복으로 미소 지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 행복이란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좀 더 잘해서, 내가 좀 더 예뻐서
살짝 나타났던 것 같다.(결론적으로 수양이 덜 됐다)
우리 사회에서 비교로써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이 바로 행복이 아니었을까.
절대 고독을 느낀 적 있다.
절대 행복을 느낀 적 희박하지만 몇 번 있다.(커피를 마시다 문득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확 비추듯이 근심 걱정이 없어지며 절대 행복감을 맛보았던 그날을 기억한다)
그에 반해 상대 고독과 상대 행복을 느낀 적은 많은 것 같다.
그 사람보다 내가 이 정도는 나으니까 안도해야지.. 하며 얄팍한 행복을 맛보았던 그 순간들....
명절을 없애 버립시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기냐고 비난하겠지만
사람들이 상대적 비극을 많이 느낀다면 우리 이제 각기 연휴를 만들어
각기 행복에 젖어듭시다!.
결론을 이렇게 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