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음에는 패키지로 갈까?

2025년 11월 29.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by 집녀

새벽 이른 시간.

눈을 뜨면 차가운 공기가 목구멍에 느껴진다.

유럽은 한국처럼 난방을 세게 틀지 않기에

숙소에서 막 따듯하다는 생각으로 자 본 적이 없다.


여행 와서 좋았던 것은

엄마가 잠을 푹 잤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수면 습관을 바로 옆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10시쯤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에 들어 새벽 6시 전에 항상 깨셨다.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푹.


여행의 마지막 날도 역시

엄마가 먼저 뒤척이며 일어나셨다.

매일 낯선 곳에서 눈을 뜨는 이 느낌.

낯섦에 대한 익숙함.


새벽 4시에 잠에서 깼다.

이른 오전 비행기라 숙소에서 5시 반쯤에는 나서야 했다.

2주간의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이 이제 마무리되는 것이다.


숙소 떠나기 전 창문을 통해 내다본 바르셀로나 풍경




새벽, 아무도 없는 로비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홀로 빛나고 있다.



공항, 특히 국제선을 탈 때 꼭 3시간 전에 온다.

늦어서 숨 넘어갈 뻔한 상황을 몇 번 겪고 난 후에 무조건이다.

쇼핑한 것도 없지만 그 와중에 텍스리펀도 해야 하고, 비즈니스 라운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

비즈니스라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켜 주는데.

아.... 이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구나 또다시 깨닫는다.


유럽으로 올 때 2번의 경유였다면 돌아갈 때는 다행히 한 번의 경유다.

그래서 더 마음이 푸근하다.

물론 갈아타는 것 없이 한 번에 가는 직항이면 좋겠지만 그럼 비행기표 가격이 급격히 올라간다.

경유하며 살짝 다리도 풀고, 비즈니스 라운지도 구경해 보고 나쁠 것 없는 선택이다.


술을 먹어야 비즈니스 라운지를 제대로 이용한 것이라 하지만 술을 입에도 못 대기에

스페인의 추억인 오렌지 환타를 한 번 더 마신다.

이젠 안녕이네 오렌지 환타도.

스페인에서의 마지막 오렌지 환타




비즈니스 라운지의 거만함



바르셀로나에서 프랑크프루트, 인천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여정에는

뜻하지 않은 청년이 등장했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데 키 큰 청년이 뒷좌석으로 가면서 엄마에게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아는 사람이야?"

청년이 지나간 뒤 엄마한테 물으니

"처음 본 앤 데 내랑 눈이 마주치더니 인사를 다 하네?"

라는 것이다.


보통 외국에서도 한국사람끼리 마주쳐도 인사를 잘 안 하는데

참으로 예의 바른 청년인가 싶었다.


인연은 프랑크푸르트 게이트 앞에서도 이어졌다.

마침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 앞에 앉는 것이다.

혼자 스페인에 놀러 온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년은(아.. 청년이란 표현을 쓰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늙었나... 총각이라 하면 더 늙은 티가 나잖아) 엄마에게 이것저것 무용담을 늘어놨다.


"와 물가가 너무 비싸서 저 여기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수돗물 먹었어요! 생수 한 병에 5천 원이에요!"


엄마와 나는 청년의 종알거림에 귀여워서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줬다.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엄마와 나는 대륙간 대형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을 기대하며 비행기로 입장했다.

(후에 이 청년은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 정류장에서도 또 만나게 됐고 엄마는 귀여워서 초콜릿을 선물로 줬다)


눕코노미가 아니라 진짜 누워가는 비즈니스.


루프트한자 비즈니스 음식들. 따뜻한 식기에 음식이 나오다니.


창 밖에는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설산이 보였다.


"엄마 내년에는 스위스 갈까?"

"아이고야. 내가 가겠나..."

"왜 못가노! 이번에도 이렇게 2주 동안 잘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멀리 못 가겠다"

"괘안타!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비즈니스 또 태워줄게! 우리 저어기!! 저어기!! 스위스로 가자!

.... 그런데 스위스 갈 때는 패키지로 갈까?"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알프스 설산


나도 힘들었나 보다.

이제 그냥 아무 생각 안 하고 졸졸 따라다니는 패키지가 좋다고 생각하다니.

이렇게 말하면서도 아마 나는 후에

스위스 자유여행의 일정을 야무치게 짜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여행이라도 내겐

엄마와 함께하는, 엄마와 함께 경험하는

엄마와 함께 설레고, 엄마와 함께 두렵고

엄마와 함께 헤매는 그 여행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자!

건강만 챙겨. 나머진 내가 다 할게


기내 불이 꺼지고 안대를 끼고 있는 엄마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하나 믿고 함께하는 나의 엄마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엄마. 내년에도 여행 또 하자!

이전 29화190년 전통 맛집, '로스 카라콜레스'를 다시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