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쓰는 첫 글.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글쓰기는 나 같은 사람들이 아닌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위한 영역 같았다.

대학교 때까지 꿈이었던 광고 회사에 들어가 어쩌다 보니 카피라이터로 일하기 전까지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글에서 내가 쓰는 '어쩌다 보니'의 의미는, 원하지 않았다거나 수동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찾아 한 발씩 내 딛다 보니 그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좋아하는 것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꽤나 덕스러운 면이 있어서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덕질'을 한다. 그 덕질들이 글을 쓰는 밑거름이 될 줄이야. 머리 속에 반짝 스쳐가는 아이디어들을 가장 이해하기 쉽고 담백한 글자들로 풀어낼 수 있도록, 잊힐 수도 있는 생각을 끈질기게 추적해, 왜 '반짝'했던 것인지 본질을 파악하는 작업에 큰 매력을 느꼈다. 쓰면 쓸수록 가장 간단하게 쓰는 것이 어려웠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즐기고 있었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주변에서 내 카피를, 내 글을 좋아해주었다. 아주 놀랍게도.

생각해보면 어딘가에는 늘 글을 쓰고 있었는데, '글쓰기'는 왠지 고귀해야 할 것 같고 어려운 것 같다는 편견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내가 써 내려가는 문장이 화려하지 않아도 되고 어렵지 않아도 된다는 무척이나 간단한 논리를,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깨달은 셈이다. 지금도 난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글이 아니었으면 한다. 조금 서투르더라도 차라리 날것 그대로, 허례허식과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또 어쩌다 보니 IT/스타트업 업계에서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진행해온 마케팅은 컨텐츠를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이 핵심이었다면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의 마케팅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데이터, 숫자, 퍼포먼스가 가장 중요하다. 굉장히 문과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가 이과적인 마케팅을 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 어딘가에 나만의 컨텐츠를 쌓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던 와중에 브런치를 만났다.

굳이 사진이나 이미지를 붙이지 않아도 글을 근사하고 심플하게 보여주는 UI/UX가 마음에 든다.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에 편하게 글을 써 내려가듯, 오로지 '쓰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글들을 쓰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필름 카메라, 음악, 우주, 장난감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디지털 업계의 마케터로서 일하며 깨달은 것들을 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우 아날로그 하기도 하고 IT스럽기도 한, 어떻게 보면 상반돼 보이는 성격의 글들이 올라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는 아날로그 한 인간들이 아닌가.

아무쪼록 디지털 기반의 아날로그스러운 브런치가 반갑다 :)

꾸준히 써봐야지.

브런치도. 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