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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Nov 18. 2015

진심을 담는 빵집, 오월의 종

'오월의 종' 정웅 Baker와의 만남

이른 아침부터 구운 맛있고 신선한 빵. 몇 년째 그대로인 가격.
비가 오는 날에도 언제나 가게 앞에 줄이 서 있는 정직한 빵집. '오월의 종'을 아시나요?


보슬보슬 가을비가 내리던 날, 오월의 종에서 정웅 대표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대표와 사장이라는 호칭보다는 'Baker'가 더 좋다고 말씀하시며 허허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오월의 종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단번에 이해가 가더군요. 업무 때문에 만났지만 혼자만 간직하기엔 대화 내용이 아까웠어요. 회의하러 갔다가 마음이 따뜻해졌던 날, 진솔했던 그날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공유합니다:)


오월의 종은 판매하려는 빵의 수량을  늘리고 싶지는 않다고 하셨죠?
네, 음식이란 게 그렇잖아요. 갓 구운 맛있고 신선한 빵을 판매하고 싶어요. 그렇게 많이 만들려고 하지는 않아요. 큰 욕심도 없고요.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데?
홍보 활동은 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밖으로 내놓는 게 창피해요. 내가 만들고 내가 맛있다고 하는 말이...
손님들이 "뭐가 맛있어요?"하고 물어봐도 답을 잘 안 해드려요. 잘 나가는 빵이 있다고 해서 그게 꼭 그분의 입맛에 맞으라는 법도 없고요. 이럴 땐 그냥 빵마다 뭐가 들어있는지를  말씀드리고 기호에 따라 선택하시라고  말씀드려요.

사실 커피 리브레와 함께 운영하는 
타임스퀘어점 같은 경우는 용도가 문화공간으로 되어 있어요. 벽의 나머지 공간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서 젊은 큐레이터를 한 명 두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으로 하자는 생각으로 운영 중이에요.

오월의 종 영등포점의 벽면에는 젊은 작가들의 그림이 걸려있다


오월의 종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그걸 많이들 궁금해하시는데요, 이름의 유래는 사실 '빵'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하기는 싫고, 자주 듣던 Bee Gees 노래 중에 'First of May'라는 노래가 있어요. 가사 내용이 시간에 관한 거예요. 추억에 관한 노래인데, 그게 좋아서 나중에 내가 내 가게를 내면 이 노래를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요. 여기서 '5월'이 왔고요, 오월에 발음상 뭐 하나를 붙일까 해서 '종'을 붙인 거예요. 그래서 '오월의 종'이 되었어요. 

오월의 종의 맛있고 신선한 빵

가격이 거의 예전 그대로 같아요. 

제가 만드는걸 비싸게 팔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처음 시작한 것보다는 가격 변동이 있지만 오월의 종이 지향하는 게 식사빵 위주예요. 식사빵이란 건 일정한 시간을 두고 먹는 빵이라서 가격적인 부담을 낮추고 싶었어요.

하지만 절대 무료는 아니에요. 정성이 들어간 건 무엇이든 그만큼의 값어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시식이 없어요. 초창기에는 그게 불만인 고객들도 있었는데, 제가 대답하기를, 새벽부터 제 아이처럼 만드는 빵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냐고 해요. 빵은 정점이 있는데 그게 지나가면 미련 없이 없애니까 무료로 주는 건 거의 안 해요. 딱딱한 바게트를 하루 지나서 어디에 기부를 하더라도 그분들은 맛있게 드실까 생각해요. 그런 분들에게도 남은 빵을 드리는 게 아니라 따로 만들어드려요.

빵 연구소 같은 느낌의 오월의 종 2호점


오월의 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간판 단건 11년 전이고 빵 반죽을 처음 만져본 건 14년 전이에요. 원래는 시멘트 회사를 다녔어요. 시간의 주기가 한 달로 바뀌고 월급 타면 다시 시작하고. 그런 생활을 하다가 '내 의지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란 생각이 들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보이는 창문 사이로 열심히 빵 만드는 사람을 봤는데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빵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럼 궁금한 게 있는데요, 처음 회사 관두고 빵을 하기로 하셨을 때 그게 운명처럼 다가오거나  '이게 내 길이다' 이런 게 있었어요?
후회한 게 300번은 될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런데도 계속하시는 이유는?
정말 내가 원했던 건 빵 자체라기보단 '나만의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내가 두고두고 오래할 수 있는 일이요. 처음 시작한 거니까 여기서 그만 두기는 아깝고. '조금만 더하자. 조금만 더하자'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빵에 대한 열정보다는 빵은 하면서 점점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보기만해도 기분 좋아지는 정웅 대표님:)

지금도 빵 만드는 게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솔직히 빵 만들기 싫은 날도 있죠. 새벽에 추운 날이면 나가기 싫은 날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어느 순간 넘어가니까 '나는 빵을 만드는 사람이구나. 이 시간을 내걸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일을 하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때로는 지겨울 때도 있겠죠. 사람이 항상 열정적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들어가 앉아 있으면 좀 편하고, 계속 끌리고, '내가 제일 편안하고 있어야 할 곳은 여기는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잘 찾은 것 같아요.

Baker 호칭이 적혀있는 명함


명함이 인상적이에요. 호칭도 그렇고요. 따뜻한 느낌이 나서 좋아요.
Baker라는 말을 좋아해요. '빵 만드는 사람'이란 소리를 하는 게 기분이 좋아요. 외부에서도 요즘 많이 쓰는 셰프라는 호칭은 고귀하지만 관리자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Baker'란 이름이 제일 적당하고 기분 좋은 말이에요.


직원 중에 빵을 배우고 싶어서 오는 사람도 있나요?
그런 구분을 두고 사람을 뽑지는 않아요. 지금 우리 빵집에 팀장으로 있는 친구들은 사실 빵을 배웠던 친구들은 아니에요. 처음부터 학교에서 배운 친구들도 있지만 한 번쯤은 인생에서 큰 turn을 한 친구들도 있어요. 자기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본 친구들은 오히려 무언가를 기분 좋게 받아들여요. 얼마 전 들어온 친구는 면접 보는데 예전 직장생활 얘기하다가 난처하게 울고 그래서 (웃음) 그 친구에게는 힘들었던 기억이겠지만 자기 안으로 받아들여주면 또 편해진다고 얘기해줬어요. 그 시간을 지나왔으니 현재의 자신이 있는 거겠죠.



아무 생각 없이 오는 친구들도 있죠. 일이 하기 싫어서 그냥 오는 친구들. 그런 친구들은 사실 보여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본인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요. "어떤 일을 좋아하세요?"라고 하면 대답을 잘 못해요. 내가 이 일을 하면 남들이 좋아하겠지? 하고 남을 기준으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럼 솔직하게 얘기해요. 인생에 관한 문제니까 서두르지 말고 넉넉하게 생각을 잘해봐라. 본인 스스로가 뭘 좋아하는지 천천히 생각해보고 그 후에도  그중에 빵이 있으면 다시 오라고 해요.

"빵을 배우러 왔으면 가르쳐주는 게 맞다."
신입직원 들어오면 한달간은 교육을 시키고 교육이 끝나면 사업계획서를 받아요. 몇 년도 몇 월에 오픈하는 계획을 잡아서 제출하라고 해요. 안 그러면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지 잘 실천하지 않으니까요. 빵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힘든 상황에 부딪히게 되거든요. 목표가 정확한 친구들은 그런 걸 이겨낼 수 있어요. 그런 걸 상기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도 있고, 창업할 때 꼭 필요한 게 사업계획서예요. 미리 연습하는 차원에서도 써보면 좋죠. 그리고 이걸 빌미로 써먹죠.(웃음) 하루 이틀 지나면 권태가 올 수 있거든요. 익숙해지면 지겨워지는... 이때 본인이 썼던 사업계획서를 빌미로 한 마디씩 하죠. 시간 개념을 심어주면 본인들이 좀 더 자기 결과물을 내는 것 같아요. 저는 늘 얘기해요. 내 꿈은 너희들 다 나가고 점점 가게를 작게 꾸려서 혼자 빵집 하는 거니까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삶의 철학 같은 게 있으세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 저는 빵 팔아서 술 마시고 순댓국  사 먹는 사람이에요. 장인 이런 거 아니고요. 빵 만들면서 재밌게 사는 게 제 목표예요. 저는 제 직원들한테 빵에 목숨 걸지 말라고 해요. 빵 만드는 시간 만큼만 만들고 밖에 나가서 놀으라고 해요. 그런 경험이 다 돌아서 빵 만드는데도 도움이 되거든요. 

삶의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시간을 버티고 힘들었던 그런 시절을 다 겪은 후라서 괜찮다고 하는 것도 있어요. 그 시점에 얘기했으면 '하지 마세요'라고 했을지도 몰라요. 빵을 만들어도 팔리지도 않고. 힘드니까. 그런 시절이 다 지나가고 보니 '정말 이길로 가야 돼'라는 열정만으로 하루하루를 넘겼다기보다는, 하루는 술 먹고 뻗어서 자다가 나와서 만들기도 하고, 하루는 또 열심히 만들고. 그러다 보니 그 시간들이 다 제 것이 되어 있더라고요. 지금은 밑에 직원들이 있어서 부지런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은 변하잖아요. 사람도 변하고. 친구도 변하고. 나도 변하는데. 변하지 않는 건 뭐가 있을까 하니까 결국 이 일이더라고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고, 마음 추스르고 그런 건 일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정웅 대표님의 감각이 느껴지는 공간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 씨디
오월의 종에 있는 소품 하나하나 따뜻따뜻. 공간이 주인을 닮았다


해보세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회사는 망해도 나는 안 망한다는 정신으로 회사를 다니시고요. 내가 따뜻해야지만 남의 손도 잡아줄 수 있잖아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세상의 중심인데."



정웅 대표님은 직접 만나뵈니 정말 겸손하고 인간적이고 소탈하신 분이었어요. 해주시는 말씀마다 마음을 토닥토닥. 오월의 종은 그저 주인의 철학을 고스란히 현실로 옮겨온 공간이였어요.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오래오래 맛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며 정해진 수량의 신선한 빵만을 고집하는 정웅 대표님의 마인드. 이게 몇년째 지속되다보니 입소문을 타고, 비가와도 눈이와도 해가 쨍쩅해도 사람들이 빵을 사먹기 위해 몇년째 이 앞에 줄을 서는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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