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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Mar 24. 2017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2)

지나간 기억의 단편집 #2 - 동생과 영감 주고받기

동유럽 여행으로부터 약 1-2년 정도가 흐른 후, 나는 동생과 또 조금은 더 사적이고 깊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당시 내 동생은 환경과 지속 가능한 에너지, 녹색 성장에 빠져있었다. 언젠가부터 동생을 보면 녹색 성장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갑자기 환경 서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녀는 인스브루크에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한 번 겪은 상태였다. 교환학생을 하는 동안 20개국을 넘게 여행한 동생은 유럽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지구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점점 더 그 분야에 빠졌다고 했다. 수업 내용 중 일부를 얘기해주었는데, 그 대화에서 나는 또 한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평가할 때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라는 잣대를 댄다.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에서 창출한 최종 생산물 및 서비스를 합쳐 화폐 단위로 나타내고, 이것으로 그 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평가한다. 한 마디로 나라를 평가하는 기준을 '돈'으로 환산해 평가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다. 다른 기준에 대해서는 크게 배운 적이 없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 동생이 설명해 준 기준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작년 대비 행복 지수, 작년 대비 나무가 몇 그루가 늘었는가, 참치가 몇 마리나 늘었는가 등 자연과 사람의 행복을 재산으로 보고 계산하는 전혀 색다른 기준이었다.


실제로 부탄의 경우, 나라가 얼마큼 발전했는가를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총행복)로 평가한다. 부탄 국왕이 직접 도입한 것인데, GDP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GNH를 만들었고, 국민총행복을 부탄의 모든 국가정책의 중심에 놓는다. 이는 부탄의 헌법에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그 문장은 이렇다: 

"정부가 국민을 위한 행복을 창출할 수 없다면 정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국왕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추진한 최초의 왕인데 그의 말과 행동에서 얼마나 멋진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를 나는 부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처음 접했었는데, 국왕이 부탄과 부탄 국민들을 대하는 방식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부탄은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


내가 졸업한 경영대에서도 회사의 최종 목적은 이윤창출이라고 배웠다. “The goal of companies is to make profit”이라는 문장은 경영대의 다양한 수업 시간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시험 문제에도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회사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란 답변에 나는 'to make profit (이윤창출)'을 적어 내야 했다. 회사가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맞는 말이긴 한데, 한편으론 씁쓸함을 느꼈다. 결국 모든 일의 최종 목적은 돈 벌기란 말인가. 물론 이윤을 창출한다는 말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돈을 벌기 위해선 사람들이 지갑을 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거꾸로 한 단계씩 짚어보면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돈이 있어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지속 가능성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회사의 목적은 이윤창출'이라고 한 문장으로 단정 짓자니 너무 영혼이 없어 보였다. 그 회사의 철학이나 서비스를 시작하는 이유는 '돈 벌기'란 목적에서 밀려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들렸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학생 시절의 나에게도 그 문장은 좀 불편한 감정을 일으켰는데, 회사를 다녀본 이후에도 확신에 찬 그 문장에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이 크게 변함이 없다. 단순히 이윤창출이 최종 목적인 회사는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윤창출에만 과하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빈틈이 생기고 파산까지 가기도 한다.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손꼽히던 enron이 한순간에 망한 것도, 승승장구하던 우버가 창립 이래 현재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것도 모두 성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기업 윤리를 져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잘 되는 회사들, 멋진 브랜드들은 기업의 색깔과 철학이 명확하고, 윤리적이다. 명확한 가치관과 진정성을 가진 브랜드는 소비자를 넘어선 팬들이 생기고, 그 관계가 모든 일에 있어 제일 큰 강점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경제와 돈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이상하게도 그 보다 더 중요한 환경, 도덕성,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서는 등한시되기 일쑤다. 성공의 척도는 얼마나 돈이 많은가와 연결될 때가 많고, 내가 어느 결정을 내리기 앞서 물질적인 기준보다 내면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아직 어려서 그렇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나에게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무조건 물질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떤 기준을 더 중요시하는지는 나이와 관계가 없다. 

나는 물질적인 것과 돈을 적대시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자본주의만큼 민주주의와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는 찾지 못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으면 더 많은 자율권이 생기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나도 돈을 적대시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돈을 내 편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것 자체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면 불행하지도 않은데 불행해지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 대한 '모범 답안'을 만들어 놓고 그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면, 정작 내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한다. 


뉴스에 매일 같이 나오는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와 도덕성이 결여된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눈앞의 단기적인 목표에 눈이 멀어 정신적인 기준을 잃어버리고, 그 결과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세상을 재는 잣대가 돈이 아닌 사람들의 행복지수라면, 정치인들도 사람들이 최대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비리 사건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지 않을까? 나라를 평가하는 기준에 환경적인 요인들을 포함시킨다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는 않을까.


동생과 얘기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나만의 철학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강요하는 기준에 나를 맞출 필요도 없고, 그 기준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도 아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원래부터 그런 것도 없다. 삶을 진짜로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돈은 수단일 뿐이지 최종 목적지는 아닐 텐데. 우리는 스스로 설정해둔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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