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로하융 Mar 24. 2017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1)

지나간 기억의 단편집 #2 - 동생과 영감 주고받기

내 동생을 소개할 때 나는 '내 동생 재밌어. 내가 봐도 대단한 애야'라고 소개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평범하지 않다. 그녀는 엄청난 추진력의 소유자다. 마음먹은 게 있으면 몇 날 몇 밤을 지새워서라도 원하는 것을 따내고 만다. 대학 시절의 그녀는 광고 공모전에 여러 번 당선되고 대상을 받아 독일과 오슬로 노르웨이에 다녀오는가 하면, 환경에 관심이 생긴 이후에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해 스위스의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하고 오기도 했다. 지금은 정부 지원금을 받아 북촌에서 한복 대여를 해주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집에 손 벌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일들을 자기 힘으로 이뤄내는 동생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긴 대단해' 하고 새삼 놀랄 때가 많다.


엉뚱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와 나의 관심사는 비슷한 듯 서로 파고드는 분야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동생과 얘기하다 보면, 몰랐던 걸 알게 될 때도 많고 새로운 영감을 받을 때도 있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를 정리해 볼까 한다.




2011년 가을, 나는 엄마, 동생과 함께 50일간 동유럽을 여행했다. 그전까지 뉴욕에서 일을 하던 나는 한국에 아예 들어가기 전에 떠난 여행이었고, 내 동생은 인스브루크에서 교환학생을 시작하기 직전에 떠난 여행이었다. 내가 뉴욕에서 일하고 오느라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가 감명 깊었던 수업과 책, 예술 작품에 대해 여행하는 내내 신나게 공유하고 떠들었다.


당시 나는 터키의 공항 서점에서 구매한 파울로 코엘료의 신간 소설 ‘알레프’를 읽고 있었다. 코엘료의 다른 책들처럼 현실과 현실을 넘어선 세상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듯한 책이었는데, 여행 도중 나는 그 책에서 말하는 작은 우주, 3cm 정도로 작지만 그 안에 우주 전체가 있다는 ‘알레프’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류블랴나의 티볼리 공원을 들렀을 때, 야외에서 무료 전시 중이던 드라고류브 쟈무로비치(Dragoljub Zamurovic)의 사진들을 보게 되었는데, 작가가 담은 지구의 풍경들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늘 위에서 담은 꼬불꼬불한 강부터 온통 새빨개진 밭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그때만 해도 드론이 지금처럼 널리 퍼져 있던 게 아니라 하늘 위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들은 마치 어느 외계 행성처럼 생소해 보였다.

쟈무로비치 작가의 사진들:


더 많은 사진을 보려면 이곳에:

http://www.serbia-photo.com/fotografije_en.php


비행기 타고, 에어벌룬 타고 사진 찍는 아저씨. 이렇게 별나 보일 정도로 뭔가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인 것 같다. 멋진 사람:)


만약 나사에서 보낸 무인탐사기가 어떤 행성을 발견해, 똑같은 사진을 찍어 보냈다면 온 세상이 정말 아름다운 행성이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심지어 이건 지구 전체도 아니고, 세르비아 출신의 사진작가가 세르비아 상공을 날아다니며 찍은 사진인데.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만 골라 찍은 것도 아닌데. 무한한 우주를 열심히 뒤져도 이렇게 아름다운 행성을 또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행성 위에 살고 있으면서 왜 보려고 하지 않을까.


류블랴나의 공원에서 지구의 생소하고도 아름다운 모습과 마주친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세상이 멸망한 후에 누군가가 지구의 기억이 담긴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순간. 현재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왜 갑자기 이런 상상이 난 건지는 모르겠다. 조용한 공원을 산책 중이라 그랬던 건지. 내 상상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먼 훗날 지구가 멸망한 후의 어느 외계인의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지금의 난 그 순간 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나무 그늘 아래를 천천히 걸으며 작가가 담아낸 지구의 단상들을 바라보자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우주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에게 우리는 외계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모든 것이 신비롭고 신기해 보일 것이다. 별나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상상은 늘 봐 오던 것을 새롭게 보고,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인식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게 해주었다.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상하게 우주와 가까워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집중해서 요가를 하고 땀을 쫙 뺀 후 요가 매트에 누워 눈을 감으면 가끔 그런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영혼이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라고 해야 되나. 정신적으로 조금 더 높은 차원에 잠시 다녀온 기분이랄까. 그런 기분이 살짝 들 때면, 사람들이 이래서 명상을 하는구나 실감이 나곤 한다.


내가 내 동생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면, 나를 별나게 보거나 우습게 보는 게 아니라 함께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여과 없이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건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생각이 덧붙여져 더 크고, 더 구체적으로 발전되기도 했다. 비슷한 영감을 떠올리게 해 준 서로 다른 책이나 예술 작품을 얘기하며 그걸 서로 연결시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영감을 공유한 끝에 나름대로 내렸던 결론은 이 세상에는 가끔 우리를 넘어선, 우리가 모르는 사실들을 깨우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로 발표를 하거나 모두에게 알려주기에는 사람들이 믿지 않거나 무시하기 쉽기 때문에, 또는 아직 세상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책이나 영화, 예술작품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예술 작품 안에 존재하는 세계는 현실보다 현실 같을 때도 있고,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없어질 때도 있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이미지의 배반>


예를 들면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인 <이미지의 배반>이 그렇다. 이 작품에는 "this is not a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는데 이 모순이 우리 머리를 빙글빙글 돌아가게 만든다. 이 그림은 분명 파이프가 맞다. 하지만 그림이니까 진짜 파이프는 아니다.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도 파이프가 맞긴 맞다. 그러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은 사실인 동시에 거짓일 수 있는 관점인 것이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이 작품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여부 보다도 내가 영감을 받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가 중요해진다. 


-

생각보다 좀 길어져서 다음 편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