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무거운 진실
*김윤식 작가의 코멘트 : 기다림, 설렘, 두려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무거운 진실
이미 제목에서 오늘 할 이야기의 대부분을 암시한 셈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끊임없이 인연이 발생한다. 어떤 인연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듯 하고, 어떤 인연은 영원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며, 어떤 인연은 제발 계속되지 않았으면 하기도 한다. 상당히 오래갈 것 같은 인연이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며, 끊어질 것 같은 가느다란 실 같은 인연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도 한다. 머리나 마음속으로 예측하는 인연의 견고함과 가벼움은 실제로 벌어지는 일과 상당히 무관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맺어진 인연을 잘 유지하기 위해 의지와 노력이 들어간다면, 좋든 싫든 인연의 고리를 자신의 예측대로 정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모든 인연에는 의지와 노력과는 무관한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1994년 영화 <중경삼림>에는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떠난 연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생일까지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서 모으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결국 그 유통기한인 자신의 생일에도 연인이 돌아오지 않자,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으며, 아니 잊기 위해 파인애플을 먹어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오래전 영화이지만 20대 시절에 내가 본 중경삼림에 비친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무려 24년의 세월이 지나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갔고, 여전히 내 곁에 있고, 앞으로 나한테 올 미지의 인연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불꽃 위에 아스라지는 종이재처럼 잊혀진 인연, 당연히 오래 유지될 거라 생각했던 인연이 물리적 환경 변화에 의해 소멸되기도 했고, 유통기한이 끝난 인연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 적도 많다.
그런데 우리가 미래를 예언할 수 없듯이 모든 인연의 유통기한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중경삼림>의 통조림 뚜껑에 딱 찍혀 있는 선명한 유통기한 날짜가 인간이 살아가는 인생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정신 차리고 보니 한 여름밤의 꿈처럼 이미 내 곁을 떠난 인연인데 그것조차 한참 동안 자각하지 못한 적도 있다.
지금보다 훨씬 젊은 시절에는 인연의 유무와 깊이의 정도에 상당히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간당간당한 유통기한을 늘이고자 온갖 방부제를 들이붓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고, 소멸된 인연에 자책하거나 상대를 비난하거나 내 멋대로 인격을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주변에 많이 존재하는 인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중에 어떤 인연이 먼저 내 손을 놔버릴지 모르지만 크게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커다란 설렘으로 내 삶에 훅~ 들어온 인연이라도 크게 호들갑 떨지 않는다. 이기적인 마음과는 다르다. 나에게 도움과 기쁨을 안겨주는 인연이었다면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후회와 상처로 인한 흉터가 남은 인연이라도 크게 탓하지 않는다. 덮어두지는 않겠지만, 털어내고 잊으려고 한다.
여전히 내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연의 통조림 바닥에는 유통기한이 찍혀있을 것이다. 다만 굳이 그걸 들고 뒤집어서 날짜를 확인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일이 그것을 확인하기보다 그 통조림 안에 있는 다양한 내용물이 뭔지 맛보고 감상하고 경험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게 바로 인간으로서 인생을 살아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 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연의 통조림에 감사한다.
단, 내용물이 사라진 빈 통조림 캔은 아무 데나 널려놓지 말고 잘 분리수거하도록… 그게 사는데 깔끔하다.
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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