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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重版出来)

2쇄를 찍는다는 의미



출간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에게 이상향은 ISBN 이 찍힌 자신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거다. 남들도 다 낸다는 책, 여기저기 원고 투고를 해도 막상 내 책을 내준다는 출판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작가로서 첫 책 출판하겠다는 출판사와 미팅을 하고 계약서를 쓰는 순간은 정말이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 막상 책을 내면 그다음 목표는 2쇄다.

2쇄, 즉 중쇄를 찍는 것은 출간하면 당연한 이치인 줄 알았다. 유명 작가는 초판을 선예약 판매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서점에 가도 책이 없기까지 하다. 내 책도 나오면 사람들이 줄 서서 책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출간을 하고 세렝게티의 도서시장을 바라보니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교보, 예스24, 알라딘 등 취미 실용 분야의 주간 베스트에 올라도 쉽사리 책은 소진되지 않았다. 초판 2천 권이 별거일까 싶었는데, 정말 팔아도 팔아도 끝나지 않는 옹달샘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이쯤 되면 인세고 뭐고 다 떠나서 자존심 하나로 통장 털어서 자비로 내 책 한 1000 권쯤 살걸 그랬나 싶을 정도다. 그러기에 난 순진하고 자존심이 센 작가였기에 출판사에서 하는 마케팅을 숨죽여 지켜볼 뿐… 더군다나 첫 책을 낸 작가는 그렇게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출간 이외에도 계속 글을 쓰고, 연재 작업을 했기에 출판사와의 미팅은 계속됐다. 내 글을 보고 마음에 들어한 편집자는 많았다. 책을 한 번 내니 내가 제안하지 않아도 계속 미팅을 하게 됐고, 편집자의 기획서가 출판사 데스크로 넘어가면, 항상 마지막 관문인 오너 컨펌에서 브레이크에 걸렸다. 내용도 좋고, 의도도 좋은데… 과연 발레 인구를 봤을 때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연속이었다. 오히려 나에게 미팅 제안을 했던 많은 편집자들은 굉장히 미안해하며 더 좋은 출판사를 만나기를 기원해줬다. 나도 이해가 가는 게 책은 좋은 내용을 담아야 하지만, 세상에 나오는 순간 상품이다. 좋은 내용을 담은 상품… 그렇기에 팔려야 가치가 있는 거다. 아직은 취미발레 인구 시장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출판사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가 도서출판 플로어웍스(FLOORWORX)를 창업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내 손으로 좋은 책을 만들자. 큰 규모의 출판사가 아니기에 욕심을 버리고 군더더기를 버리면 적은 이윤으로 발레 분야의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를 차리면서 편집인, 마케터, 저자 등 혼자서 다양한 역할을 도맡아 해야 한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재미있는 일본 드라마를 보게 됐다. ‘중쇄를 찍자(重版出来)’ 우리나라와 일본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지만_예를 들어 일본은 보통 초판은 5,000부부터 시작한다. 만화 같은 경우는 10,000부로 출발해야 서점과 도서관에 기본이 깔린다고 하니 출판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부럽기만 하다_그래도 명색이 출판사 대표가 된 이상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재미있게 드라마를 본 아이들에게 부탁을 해서 엄마 출판사 잘돼게 중판출래(쥬한슛타이, 重版出来)를 써달라고 했다. 큰 아이는 말로 대신하고 ㅎㅎ, 둘째, 셋째는 자신들의 느낌대로 작품을 선물해줬다.

나는 너무 마음에 들어 새로 주문한 편집인 책상에 이것을 붙이기로 마음먹었다.


도서출판 플로어웍스 중쇄를 찍자, 重版出来 (ⓒ정아진, 정아린)


<어쩌다 마주친 발레> 重版出来

그림 선물을 받은 그 날, 내가 플로어웍스를 창업하고 공식 홈페이지 및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페이지를 오픈한 날.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나의 처녀작이자 혼신의 힘을 쏟았던 저서 <어쩌다 마주친 발레>의 뒤늦은 2쇄 소식이다. 책을 낸 지 무려 2년 3개월 만이다. 사실 출판사에서는 2쇄를 찍을 때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물류 및 창고비를 고려해서 이 책을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2쇄 결정이 나지 않으면 절판을 밟는 게 수순이다. 더군다나 출간한 지 2년이 지난 책, 난 유명 작가도 아닌데 이 책을 살려서 2쇄를 들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책을 내면서 산전수전 공중전 함께 겼었던 체코 프라하 국립발레단의 김윤식 발레리노 겸 사진작가와 요즘 가장 핫한 여행 영상작가인 금손남친 김경식 감독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책 곳곳에 나오는 모델 김보라 님에게도 고맙고, 멋진 추천글을 써준 마린스키 발레단의 김기민 발레리노, 뮤지션 자우림의 김윤아 님, 치과의사 겸 방송인 김형규 님 생각도 많이 났다. 좋은 책을 내도록 이끌어준 현재 책책 대표 선유정 편집자 님께도 감사했고…

아마 책을 내면서 나와 경식 씨, 윤식 씨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어려움, 기대, 쓴맛, 단맛, 도전…

이 책이 있었기에 우리 셋은 현재 각자의 길에서 큰 도전의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출간한 지 며칠 만에 당당하게 2쇄를 찍는 멋진 작가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반대로 출간을 하고도 1쇄에서 절판될지 말지 숨죽이는 더 많은 작가들이 있다는 것.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출간을 한 당신은 이미 큰 산을 넘은 것임을. 동시에 이왕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멈추지 말라고 하고 싶다.

베스트셀러보다 더 좋은 것은 스테디셀러다. 간간히 팔려도 당신 책을 읽고 단 몇 사람이라도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작가다.



<어쩌다 마주친 발레>가 절판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회자되고 응원해주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더 좋은 책, 더 가치 있는 책 만들도록 많은 고민 하겠습니다.

책은 초판이 더 가치 있는 것 아시죠? 참고로 <어쩌다 마주친 발레>에는 글도 좋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무용수들의 멋진 사진이 집약적으로 실려있습니다. 게다가 사진작가가 누구겠어요? 최고의 작가 김경식, 김윤식 님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서가에 계속 꽂혀있기에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글 : 윤지영 YOON JI YOUNG (작가, 도서출판 플로어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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