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춤의 언어로 채워질 그녀의 캔버스
온전한 춤의 언어로 채워질 그녀의 캔버스
이상은 발레리나 인터뷰 1편
https://brunch.co.kr/@yoonballet/219
윤여사 (이하 윤) : 발레 무용수도 아티스트의 한 영역이기도 하죠. 물론 다른 다양한 직업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각자의 아티스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도 발레리나 이상은이 꿈꾸는 아티스트의 삶은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요?
이상은 (이하 상) :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안일해지지 않는 것. 그런 것이 제가 생각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인 것 같아요.
윤 : 아… 이것이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인 마인드인데… 사실 살다 보니 이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그냥 겉으로 마냥 멋있어 보이는 것보다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것. 그렇다면 이것의 바탕은 성실성이 내재되어 있을 것 같네요. 하루에 보통 어느 정도 연습하세요?
상 : 저희 출퇴근 시간은 10시부터 6시까지예요. 아침에 클라스 하고, 리허설 준비하고… 그러나 업무 시간에 국한되지 않는 것이 새 작품을 하게 되면, 집에서 캐릭터에 대한 분석, 영상으로 보면서 미리 공부하고, 동료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연구를 끊임없이 하다 보니 결국 보통 일상이 온통 춤과 작품에 대한 것으로 채워지는 셈이죠. 그래서 저희들끼리 하는 이야기도 있어요. “우리 밖에서는 절대 춤 이야기는 하지 말자.”라고 약속까지 하는데, 결국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에는 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하하하
윤 : 기승전 춤 이야기군요. 하하
상 : 그런데 할 것이 춤 이야기밖에 없나 싶은데 또 한편으로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춤 이야기예요.
윤 : 진정한 예술가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네요. 일상에서도 나를 맴돌고 있는 춤 이야기라… 그렇다면 상은 씨에게 많은 작품이 기억에 남겠지만 유독 자신에게 새롭게 다가왔거나, 접하지 않았던 영역을 확장시키거나 인상적인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 : 다음 시즌에 피나 바우쉬(Pina Bausch) 작품을 해요. 이번에 의미가 있는 것이 서기 10주년이 됐고, 이피게니헤 아우프 타우리스(Iphigenie auf Tauris)라고 피나 바우쉬의 초창기 작품인데 탄츠테아터 부퍼탈(Tanztheater Wuppertal)에서 올리고, 다른 컴퍼니에서는 아직 올리지 않은 작품이에요. 다음 시즌 12월에 프리미에가 있어요. 그런데 작품 스케줄 때문에 전 시즌 막바지 3주 정도 그 작품을 연습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이 너무 강렬해서… 보통 휴가 때 될 수 있으면 이전에 연습한 작품에 대한 생각이나 그런 것 남기지 않고, 작품에 대한 생각을 끊고 휴가 자체를 즐기고 릴랙스 하려고 해요. 잘 쉬어야 다음 시즌도 더 좋은 컨디션으로 시작할 수 있고요. 단장님도 시즌 막바지에는 일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쉬라고 하는데… 하하 이 작품이 휴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더라고요.
윤 : 혹시 단장님이 휴가 내내 고민하라고 막바지에 연습을 시키신 게 아닐까요? 하하하
상 :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작품 자체가 너무 강렬하기도 하고요. 탄츠 오퍼, 즉 오페라 작품에다 만든 작품이고, 제가 해석하고 알아야 할 텍스트도 있고요. 안무도 배워야 하고요. 사실 현재 순서만 배운 상태예요. 아직 전체의 깊은 단계까지 못 배웠는데 휴가를 오니까 휴가가 휴가가 아니더라고요. 제가 좀 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렇지만 욕심을 조금 버리고 작품에만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발레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천 가지의 모양으로 다가온다.
짧은 박자 사이에서의 간극이 존재하듯이 춤이 주는 그 공간에서 무한대의 시간이 펼쳐진다.
그래서 항상 무대를 오르지만, 매번 무대를 대하는 그녀의 진지함이 그대로 내 마음에도 전달됐다.
우리가 하는 일에 이렇게 집중을 한다면 모든 순간이 예술이 되고,
우리는 그 무대에 충실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윤 : 여러 무용수와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오는데요. 저는 일반인 입장에서 이렇게 작품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좀 딴 세상 사람들 같아요. 춤을 보는 입장에서 ‘아… 이 부분은 이렇게 표현이 되는구나… 이런 스토리가 요런 방식으로 전개가 되는구나.’를 막연히 떠올리다가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깊이 있게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싶어요. 아닌 거 알면서도 ‘과연 이분들도 밥은 먹고살까? 땅은 밟고 살까?’ 이런 식의 엉뚱한 상상도 하게 돼요. 그렇게 깊게 고민하기에 우리가 더 좋은 작품을 공유할 수 있겠죠.
상 : 저희도 다른 분들과 똑같은 생활이에요. 하하.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것이 이렇게 생각하고 작품에 대해 몰입을 함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불과하잖아요. 무용수로서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공연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무대에 설 때는 오로지 작품, 그리고 그것을 소화해야 하는 나 자신에 집중을 하죠. 잡생각은 싹 지워버리고요.
윤 : 수치로 따진다면 만약 공연 100개 중에서 나 스스로 만족할만한 공연은 약 몇 퍼센트 정도 될까요? 이건 단순히 뭔가 기술적으로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내가 나를 평가하기에 최고의 만족도를 묻는 쪽에 가까워요.
상 : 음… 만족도를 수치로 나타낸다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공연에 집중했냐가 관건인 거죠. 테크닉을 완벽하게 하겠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내려놓았어요. 테크닉에 완벽도만 추구한다면 제 스스로 너무 속상하고, 그 자체만으로 공연의 질을 좌우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어떤 작품의 어떤 기술을 소화하느냐 마느냐는 이미 동영상 같은 것에서 많이 오픈이 되어 있고요. 하지만 공연 무대 자체는 어떤 마법 같은 것이 생기는 곳이에요. 그래서 저는 라이브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해요. 짧은 찰나를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하죠. 그 만족도란 것은 무대에 섰던 내가 그 공연을 얼마나 즐겼냐 안 즐겼냐 그 기준으로 나뉘는 쪽이 더 가까울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아이러닉한 게 공연 전체를 봤을 때 어떤 부분은 즐겼고, 어떤 부분은 힘들었고,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갑니다.
윤 : 개인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분들에게 궁금한 점인데요. 무대에 오르면 객석은 암전이 되어있고 무대에만 빛이 들어오잖아요. 내 순서가 돼서 딱 등장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른 의식 없이 오로지 집중인가요?
상 : 저는 우선 관객 쪽은 의식을 안 하는 편이에요. 누가 있고 없고는 생각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집중으로 시작을 합니다.
윤 : 상은 씨 공연의 특징은 굉장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단순히 피지컬의 특징, 키가 커서 선이 시원시원하다는 1차원적인 언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제가 느끼기로는 분명 아우라가 있는데 이게 관객을 압도하는 아우라가 아닌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져요. 같이 고민하게 만들고 감정 이입하게 만들고 어느새 상은 씨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하는 힘. 사실 이런 에너지는 굉장히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걸 볼 수 있는 저희는 행복하고요.
상 : 후후. 너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계를 한정 짓지 말라.
마음을 내려놓고 진짜 꿈을 꿀 때 자신다운 모습을 보게 된다.
윤 : 수석무용수가 되고 나서 변화는 어땠나요? 우리나라의 승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지도 궁금해요.
상 : 사실 주역이 되기 전까지는 저는 제가 여기서 주역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키 때문에도 그랬고, 어릴 때부터도 ‘너는 솔리스트까지는 돼도 수석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거든요.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욕심도 많이 내지 않았어요. 그러다 승급을 하고 처음 주역을 됐는데 저도 모르게 압박감을 많이 받게 됐어요. 오프닝 공연하고 투어를 다니는데 그전에 안 하던 짓을 좀 했죠. 하하. 사실 제가 무대에서 실수를 자주 하고 그런 편이 아닌데, 약 1년 동안은 안 하던 실수도 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저만의 본성이 나오지를 않더라고요. 돌이켜보니 그게 압박감에 의한 것이었고요. 그래서 ‘아… 내가 압박감을 가진다고 뭔가 잘되는 것이 아니구나.’라고 깨달은 순간 그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작품에 집중을 하고 좋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죠.
윤 : 발레 이외에 상은 씨가 특별히 좋아하는 예술 분야나 취미 생활 같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상 : 특별히 어떤 것을 선호한지는 않아요. 요즘 가지고 있는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과 시간 되면 영화 보고 전시회 가고요.
윤 :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세요?
상 : 타란티노 영화를 좋아해요.
윤 : 아… 화끈한 복수에 피를 양동이로 퍼붓는 스타일을 좋아하시는군요. 하하! 혹시 영화 기생충 보셨어요?
상 : 아직 안 봤어요.
윤 : 제가 스포는 안 할 거고 꼭 보세요.. 타란티노 감독의 절친인 봉 감독의 영화. 그리고 왠지 타란티노의 느낌과도 뭔가가 통하는 것이 있어서 타란티노 좋아한다면 그 영화도 좋아할 것 같아요.
상 : 약간 기분에 따라서 보는 편이라서 보는 장르도 좀 달라지기도 해요.
윤 : 이건 뭔가 수습하는 답변 같은데요. 하하하! 사실 저도 타란티노 좋아합니다. 아주 속 시원하고 좋아요.
상 : 하하 로맨틱 영화도 좋아하고, 우디 앨런 작품도 좋아합니다.
윤 : 요즘 인스타 다른 계정에 나오는 사진도 엄청 감각 있게 찍으시던데…
상 : 아빠가 쓰던 카메라가 있어서 그냥 찍게 됐어요. 백 스테이지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무대에 서 보면 무대와 백 스테이지가 주는 괴리감은 뭐랄까? 상당히 비현실적이에요. 백 스테이지에서 무대를 바라보면 갑자기 무대에서 춤추고 있는 동료, 친구들이 굉장히 신기해 보이기도 해요. 뭐지? 이 양쪽에 다른 세계는…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죠.
지금까지 했던 어떤 무용수보다 가장 답변이 충격적이었다.
흰색도 아닌 백지라니… 아주 단호하게!
윤 : 이 질문도 항상 제가 하는 편입니다. 편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 중 하나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질문. 나의 현재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무슨 색일까요?
상 : 하하. 백지예요. 백지. 그 이유는 지금 정말 처음 시작하는 느낌이에요.
윤 : 그냥 흰색…?
상 : 네… 요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내가 이제 진짜 시작하는구나. 클래식 발레를 깊이 있게 좋아하게 된 것이 최근 약 2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윤 : 아… 그래요?
상 : 네. 클래식 발레에 대한 회의감도 많이 들고, 힘들다고 여겼는데 2년 전부터 재밌더라고요. 그동안 내가 하나도 모르고 했구나… 란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지금 무엇을 안다.”라는 것보다 “이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윤 : 그렇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애정하게 된 클래식 발레 중에 유독 좋아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상 : 라 바야데르, 백조의 호수, 지젤… 로맨틱 발레. 어느 정도 스토리가 있는 발레를 좋아해요.
윤 : 음…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라… 어떤 계기였을까요? 어떤 마음이 왔길래 클래식 발레를 바라보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인지.
상 : 백조의 호수를 연습하면서 올가 코스트리츠키(Olga kostritzky)라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선생님과 함께 하게 됐어요. 클래식 발레를 연습할 때 보통은 테크닉, 파 드 두, 솔로, 이런 것을 신경을 쓰게 돼요. 물론 그것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것은 맞아요. 그러나 선생님이 공연을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예를 들어 파트너의 손을 잡는다든가 서로 안는 장면 등, 그동안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장면일 수 있는데 그런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써서 작품 준비를 하다 보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안목이 생겼어요. 그러니 작품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윤 : 저는 상당히 막눈을 가진 일반적인 관객의 수준인데요. 사실 저도 작품을 보러 가면 무용수가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주며, 끝내주는 훼떼에 무대 위 날아다니는 마네주를 보면 우와!!! 하기도 하지만, 저에게 훅! 들어오는 감동은 테크닉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아요. 무용수의 표정, 서로 간의 감정을 교차하는 아주 짧은 순간에 정말 예상치 않은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아마 그 선생님은 저 같은 일반 관객이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런 부분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무용수들에게 역으로 전달해주신 것이 아닐까 싶어요.
상 : 맞아요. 그런 짧은 순간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서 사실 굉장한 연습이 필요해요. 턴듀, 폴 드 브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한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요. 그렇지만 그 과정의 작업에서 상당한 재미를 느끼게 돼요. 디테일을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고요.
윤 : 어떤 스타일의 파트너랑 호흡할 때 편하세요?
상 : 힘이 좋거나 그런 친구들이랑 할 때 편하지만, 작품을 할 땐 역시 영감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랑 작업하는 게 가장 좋죠. 테크닉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해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고, 캐릭터 분석을 하며 함께 몰입할 수 있는 파트너가 좋습니다.
윤 : 아… 이 내용은 많은 예비 발레리노들이 알아야 할 것 같네요. 여자 파트너를 배려하는 것은 힘이 좋아서 번쩍번쩍 드는 것도 좋지만, 작품에 있어서 깊이 공부하는 연구자의 모습이 파트너를 위한 최고의 모습이라는 것을요.
윤 : 해외에서 꽤 오랜 시간 활동을 하셨는데 그래도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은 한국 팬들과 소통할 수 있잖아요. 여기에 상은 씨 팬들도 상당히 많고요. 앞으로 많은 팬들과 소통한다면 상은 씨의 어떤 면을 강조하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상 : 우선은 저를 아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많고요. 제가 메인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보통 컨템포러리이기도 하고 모던발레이기도해요. 또한 오래된 작품들, 윌리엄 포사이드 작품들, 30년 대 작품들을 하는데 이런 다양한 작품을 더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하고요. 제가 외국에 있지만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고요. 제가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에 컨템포러리 작품을 가져오는 이유도 그것에 있거든요. 차라리 한국 공연에 맞췄다면 다른 작품을 가지고 올 수 있었지만, 제가 현재 이런 것을 하고 있습니다… 란 맥락에서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모던 발레에 관한 관심도도 높아진 것이 가장 뿌듯했어요.
윤 : 네, 저도 관객으로서 너무 기뻤고, 상은 씨도 참 뿌듯했을 거 같아요. 드레스덴의 더 많은 작품도 궁금한데 혹시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단의 내한 공연에 대한 계획은 없나요?
상 : 아직은 없지만 이야기는 계속 오고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윤 : 수년 내로 꼭 내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레스덴에 직접 가서 보는 것도 좋지만, 여기서 많은 한국 팬들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윤 : 마지막으로 사람의 미래를 미리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은 씨가 꿈꾸는 앞으로의 약 10년 뒤 나의 모습은 어떨까 생각해보셨는지.
상 :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다시 발레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배워나가는 요즘이에요. 배워야 할 작품도 많고, 깊이 있게 소화하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단순히 예술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성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이 제 스스로 성장을 해야 작품 안에서도 성장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무대에서 춤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이젠 공연을 보러 가면 춤에 그 사람이 보이고 예측이 된다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무용수 이전에 사람으로서 풍성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윤 : 저도 그 부분에 공감을 합니다. 제가 상은 씨보다는 조금 연배가 위쪽이잖아요. 나이 먹은 게 뭐 자랑은 아니지만, 물리적 시간이 흘러서 그냥 나이 들어가는 의미 말고요. 진짜 나이를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40살까지는 어떻게 해. 한 해 또 나이 들었어… 하면서 1년씩 세다가 40 세 이후부터는 시간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요. 아마 50대, 60대가 되면 더 하겠죠. 30대만큼 왕성한 무언가는 없어도 나이 들어가면서 무엇인가 하나를 하더라도 책임감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무대에 서는 많은 무용수를 보면서 이 친구들이 참으로 좋게 나이 들었으면 하는 혼자만의 바람을 가져요. 그들이 추는 춤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어떤 기록으로도 전체를 표현하기 힘든 강렬한 영감을 주거든요. 그렇기에 그 소멸성이 더욱 가치가 있고요. 잘 나이 들어가는 무용수의 춤은 객석에서도 알 수 있게 되는데 상은 씨는 그 고민과 철학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참 고맙게 느껴져요.
상 : 그 마음을 알고 공감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이제 더 어려 보인다 그것보다는 제 나이처럼 그대로 보이기를 바라요. 춤에서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를 바라고요. 지금으로써의 방향은 발레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서 풍성함을 지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여겨요.
윤 : 앞으로도 더욱 풍성해질 상은 씨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볼게요. 종종 여기 팬들이 상은 씨의 매직에 흠뻑 빠질만한 기회를 갖게 해 주세요. 긴 시간 진솔하고도 예술에 대한 깊은 얘기를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상 : 저도 편하게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집약적으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또박한 말투 속에 담긴 깊은 겸손함을 읽어내고 깜짝 놀랐다.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이제 이루었다!’라고 여길 자리임에도 그녀는 한결같이 풍성한 인간의 삶을 꿈꾸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춤을 춘다는 말을 했다. 사실 거의 충격적인 수준이다. ‘아니 수석 무용수인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춤을 춘다고? 이제 춤을 좀 알 것 같다고?’
이상은 발레리나를 만나고 문득 파블로 피카소가 떠올랐다. 피카소는 천재 화가다. 그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즉흥적이고 빠른 속도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의 대작 [아비뇽의 처녀]들도 그냥 슥슥 그렸을 거다라는 추측을 했는데, 피카소 사후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비뇽의 처녀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끊임없이 습작한 것이 발견됐다. 그것은 그림 연습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것에 머물러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잡기 위한 연습이었다고 한다.
이상은 발레리나는 새로운 캔버스를 꺼냈다. 지금까지 배워왔던 춤으로 채우지 않고, 온전한 그녀의 언어로만 채워갈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녀의 시원스러운 눈매와 긴 팔다리에 어울릴 커다란 백지 캔버스가 준비된 것 같다. 우리는 그녀가 채워갈 그림을 바라볼 것이다. 평면의 캔버스에서 입체로 뛰어오를 그녀만의 춤을 기다리고 싶다.
이상은 발레리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angdiii/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제공 : 이상은,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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