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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_한서혜 02

처음에는 몰랐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아름다운 무지개 컬러로 나타난다



제2부 / 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



4. 한서혜 발레리나 (미국 보스턴 발레단, Boston Ballet)_02

1박 2일의 얼짱 발레리나 수식어를 훌쩍 뛰어넘은 보스턴 수석무용수




발레단 내에서 진정한 세계화(globalization) 추구하는 보스턴 발레단.
앞서 나가는 문화 행정과 그것에 호응하는 예술 인프라가
은근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윤 : 보스턴 발레단에도 여러 국적의 무용수가 있나요?

한 : 여기는 17개국 정도의 무용수가 함께 있어요.

윤 : 와아… 많군요.

한 : 굉장히 인터내셔널한 발레단이에요. ‘우리 발레단에는 수많은 국가의 무용수가 같이 있다’ 이 자체가 발레단의 자부심이기도 하고요.

윤 : 그런데 그게 하나의 힘이 될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이기도 하고, 각 나라의 춤의 느낌이 좀 다를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같은 아시아 계열이어도 자국의 독특한 색깔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한 : 굉장히 다르고 특이하죠. 그래서 이 발레단의 장점은 그 각 나라와 개개인의 개성을 바꾸거나 원하는 대로 짜맞추려고 하지 않고, 개성을 인정해주고, 그것이 전체를 위해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항상 가르치는… 저는 그 점이 좋은 것 같아요.

윤 : 제가 또 문외한 같은 질문 하나 할게요. 단장님이 누구시죠?

한 : 여기 단장님은 미코 니시넨(Mikko Nissinen) 이예요. 미국 사람이 아니고 핀란드 사람이에요.

윤 : 아… 그렇군요. 제가 단장님이 궁금한 이유가… 그게 참 어려운 과제거든요. 하나로 통일하지 않고 각자의 색깔을 인정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다는 것이요. 관객들 입장에서는 참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춤이어도 무용수에 따라 다른 느낌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성이 제공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한 : 네 제가 봐도 참 대단하신 거 같아요. 지금 단장님은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주역으로 활동을 하실 정도로 발레를 잘하셨던 분이세요. 단장으로서 본다면 예술가이기 이전에 발레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비즈니스 마인드가 탁월하신 것 같아요. 일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 것 보면 대단하고, 참 멋있는 것 같아요.

윤 : 행정가로서의 역할이 대단한 거네요. 또한 보스턴 도시 자체가 워낙 분위기 있고 멋있잖아요. 메트로시티의 느낌은 아니어도 미국의 대도시와는 다른 그 도시만의 독특함이 있죠.

한 : 학구열이 강한 도시이면서 우아한 도시예요. 뉴욕과 비교해 본다면 조용하고 백인 우월주의가 좀 강한 편이고요. 하지만 생활하기에 참 좋은 도시입니다.

윤 : 그런 도시에서 발레 아이템으로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게 참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vvnL-xkPFOU&feature=youtu.be

ballerina / seo hye Han (Boston ballet),  film / kyungsik Kim, 2017 e.balletshop making film story



윤 : 2012년도에 보스턴 가시고… 부모님이 금지옥엽 키워놓은 딸 보내고 대견해하면서도 속상해하셨을 것 같아요.

한 : 네, 그전에 해외 콩쿠르 때문에 외국에 나간 적은 많은데 막상 외국에 입단을 하고 와서 홀로 생활을 해야 하니 부모님이 많이 안타까워하셨어요. 자주 못 보니까…

윤 : 만 4년이 넘은 셈인데 이제는 그쪽 생활이 익숙해지고 활동하기도 더 좋지 않나요?

한 : 지금은 이쪽에서 활동하는 것이 훨씬 좋아요. 그래도 그 당시에는 도전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여기에 와 있는 게 너무 감사하고 그래요.

윤 : 아… 서혜씨 너무 기특하다. 저는 서혜씨 많이 알릴 거예요. 물론 여기서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솔직히 외국으로 가면 처음에는 ‘아… 아쉬워… 궁금해…’ 그러다가도 새로운 소식이 들리지 않으면…

한 : 잊혀지죠…

윤 : 어쩔 수 없는 인간 세계와 인생의 원리인 것 같아요. 물론 해외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쪽에서의 팬들도 늘겠지만, 그래도 고국의 팬들이 잊지 않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잖아요.

한 : 저도 그런 거 많이 느꼈어요. 이 분야에 있다 보면 오르락 내리락의 상황을 누구보다 많이 알게 되죠.

윤 :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해외 발레단에 진출해 있는 무용수를 인터뷰하는 이유가 국내 발레 팬들이나 대중들에게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미국에는 이런저런 발레단도 있고, 네덜란드에는 이런 발레단, 러시아에는 이런 발레단 등등… 이런 식으로요.




각각의 무용수의 색깔을 변화시키지 않고, 전체를 하나의 프리즘에 통과시켜 본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프리즘을 통과한 빛은 아름다운 무지개 컬러로 나타난다.

다양함을 수용하면서 혼란이 아닌 그것을 넘어선 조화가 있다면 그것이 진정 통합의 예술이 아닐까 싶다.


윤 : 제가 인터뷰 중 꼭 묻는 질문입니다. 보스턴 발레단을 한 가지 색깔로 표현한다면?

한 : 꼭 한 가지 색깔로요?

윤 : 아니오. 색을 표현할 수 있는 추상적인 단어도 상관없어요.

한 : 음… 굳이 색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감히 ‘무지개색’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워낙 여러 가지 색깔이 모여 있어서 한 가지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자체가 아름답게 배색된 무지개 칼라가 아닐까 싶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있고, 각 나라의 특유의 문화나 역사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하나가 스페셜하게 다가와요.

윤 : 제가 지금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프리즘이 떠올랐어요. 각자 무용수가 어떤 색을 드러낼지 모르지만 작품을 만나면서 각자의 무용수에 투영이 되면서 진한 무지개가 표출되기도 하고, 연하고 넓게 퍼져있는 무지개가 나오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오늘 서혜씨 이야기 듣기 전에 보스턴 발레단이 이렇게 인터내셔널한 발레단인지 몰랐어요. 음… 17개국이라… 그래도 현재는 한국 무용수가 세 명 있으니까 서로 한국말도 하고, 각자 자기들 나라말 하기도 하고 그러겠네요.

한 : 그게 참 재밌는 것이요… 어느 곳이든 발레 세계에서는 시기, 질투란 메뉴가 빠질 수는 없죠. 후후후 그래서 자기 나라 애들과는 자국의 언어로 대화를 해요.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인지 서로 아무도 몰라요. 한국애들은 모여서 우리끼리 속시원히 얘기해요. 숨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그게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어요.

윤 : 작게 말할 필요도 없겠네요.

한 : 그렇죠. 크게 대놓고 앞에서 얘기하는데 가끔 되게 통쾌해요. 후후후

윤 : 발레리나들만의 의외의 통쾌한 스트레스 해소법일 수도 있겠군요. ㅋㅋ

한 : 지금은 세 명이라도 있으니까 이렇죠. 처음에 왔을 땐 저 진짜 혼자라서 한국말을 할 상대조차 없었어요. 한국말이 그리워서 드라마 켜놓고 혼자 대화한 적도 있어요.

윤 : 아… 그 심정 백분 이해가 갑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자리에 올라갔기에 서혜씨가 더 대견해요.

보스턴 발레단 공연 직전 동료와 함께 (사진제공 : 한서혜)




자신의 장점을 얘기할 때도 참 유쾌하고 귀여웠던 그녀.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춤과 동작에 대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윤 : 다음 질문 넘어갈게요. 발레리나 한서혜만의 강점,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맘 놓고 ‘내가 제일 잘났어!!!’ 해도 되는 시간입니다.

한 : ㅎㅎ 잘난 척이라… 부끄럽습니다. 음… 저는… 일단 잘난 척이 생각보다 참 어렵네요.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어요.

윤 : 어우~ 잘난 척해야 해요. 서혜씨 스스로 많이 알려야죠.

한 : 제가 이게 장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제가 인중이 좀 짧아서요…

윤 : 어… 그래요? 이쁘기만 한데…

한 : 하하하… 인중이 짧아서 입이 잘 안 다물어져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항상 웃는 얼굴이에요. 발레 할 때 웃는 얼굴이 되더라고요,

윤 : 아~~ 어쩌면 장점이 될 수 도 있는 거네요. 그런데 인중이 짧은 게 좀 매력적으로 보이는 면도 있을 것 같아요. 못 느꼈는데 마스크에 묘한 매력이 있는 점이 그거였군요.

한 : 제가 예전에 춤추면 김선희 교수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입 좀 다물고 있으라고 했어요. 어쨌든 예전에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장점이 될 수 있었던 거죠.

윤 : 하하하 인중이 들려 있으면 항상 웃는 인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네요. 네… 그런데 서혜씨 그것은 외모에 의한 의외의 장점이고, 춤에 관한 장점은 뭐가 있을까요? 그래도 명색이 보스턴 발레단 수석까지 가셔서 인중 하나로 다 밀어붙일 수는 없잖아요. ㅎㅎㅎ


한 : 하하하! 아 네… 춤이요.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한국인만의 특유한 선이 있거든요. 그것을 잘 사용하면 상당히 세련되게 보일 수 있어요. 외국인들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물론 이것도 혼자서 상당히 연구를 많이 해야 해요. 한국만의 특유의 아름다움이 무대에서 잘 보이면 두배 이상으로 아름다워 보이죠.

윤 : 서혜씨는 그것을 발전시킨 거군요?

한 : 저는 그 점을 찾은 것 같아요.

윤 : 구체적으로 어떤 동작에 있어서, 예를 들어 나만의 폴 드 브라, 다리 사용의 노하우가 있어요? 이렇게 하면 굉장히 세련돼 보여… 뭐 이런 거?

한 : 시선 처리와 나만의 라인을 세우는 법의 차이점이죠. 외국인들은 너무 바르고 자신 있게 ‘나다!! 내가 발레리나다!!’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해요. 물론 이런 자부심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지만, 그렇게 그냥 보이는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섰을 때 예쁜지 그 라인을 알고 만들어서 서는 게 되게 매력 있어 보이더라고요.

윤 : 약간 더 섬세한 부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냥 정직한 교과서 같은 느낌이 아니라… 음… 서혜씨가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아요. 클래스 시간에 거울 속의 내 모습도 제대로 못 보는 저로서는 몸으로 절대 따라 할 수 없겠지만, 머리로는 좀 이해가 가요. 제 비유가 적합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나라 전통 건축 양식에서도 지붕의 처마선, 기둥의 배흘림 같은 것이 곡선이 없는 듯 하지만 절묘하게 곡선이 존재하는…  버선코 살짝 들리듯이?  그래서 그 세련미를 배가 시키는 그런 느낌… 그런 것을 발레 라인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한 : 네 맞아요. 와… 정말 엄청나게 딱 적합한 비유였던 것 같아요. 제 맘에 쏙 드네요. 그 표현…

윤 : 저는 배운 게 이쪽이라서 뭐든지 비유할 때 어쩔 수 없이 건축이랑 연관을 시키게 되네요. ㅎㅎ 어쨌든 춤으로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한국인만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면 묘사하기 힘들 것 같아요.

한 :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더욱이나 다 커서 미국에 왔잖아요. 저에겐 한국인의 기질, 그리고 정중함, 예의바름 그런 것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다 배우고 몸에 배서 이곳에 왔고요. 춤에서도 정중함이 묻어 나오고 정리정돈이 되어서 나만의 스타일로 나오게 된 것 같아요.

윤 : 우와… 참 좋은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는 미처 그렇게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오히려 이곳에서의 문화, 예절 등이 서혜씨만의 강점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거네요. 항상 무용수 인터뷰할 때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고민을 춤으로 표현하다보니 생각 자체가 참 성숙한 것 같아요. 아깐 말한 ‘정중함’이란 느낌이 발레리노에게만 해당된다고 느꼈는데, 흔히 말하는 젠틀함이죠. 그런데 서혜씨 이야기 듣고 보니 서혜씨의 춤에도 그것이 묻어 나오겠다고 생각이 드네요. 성별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Dancer / seo hye Han (사진제공 : 한서혜)



자신의 직업인 발레도 사랑하고, 사람도 사랑할 줄 알고, 그 외의 음악, 예술, 타 분야 춤까지 모두 사랑할 줄 아는 그녀. 마음속 깊은 애정이 많기에 그녀가 수석무용수라는 자리에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울러 그녀의 솔직담백한 귀여운 고백도 공유해 본다.


윤 : 그곳 수석이 약 11명 되나요?

한 : 네 맞아요.

윤 : 한국인은 서혜씨가 유일하죠?

한 : 네 아시아인으로는 일본인 언니 한 명 있고요. 후후

윤 : 아… 언니? :)

한 : 네… 언니죠. 나이상으로…

윤 : 서혜씨가 정말 많은 역할을 맡았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랑 참 잘 맞았던 인생 역할이나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무엇을 꼽고 싶나요?

한 : 저는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할이고요. 해봤던 역할 중에 참 좋았다고 느낀 역할은 이번에 해봤던 <해적>의 메도라 역할이요.

윤 : 아… 그렇군요. 잘 어울리네요. 메도라… 그리고 줄리엣 역할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한 : 네, 줄리엣은 정말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저희 내후년에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다면 꼭 시켜줬으면 좋겠어요.

윤 : 저도 서혜씨 그 역할 꼭 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기도할게요.

한 : 하게 되면 보러 오시면 안 돼요? 보스턴으로?

윤 : 보스턴 가야겠네요. 서혜씨 만나러…

한 : 보스턴 구경할 것도 되게 많아요.

윤 : 이야… 이거 발레 팬들과 계 하나 들어서 공연 보러 다녀야겠어요. ㅎㅎ

윤 : 서혜씨가 좋아하는 취미생활, 잘하는 특기 같은 거 뭐가 있을까요?

한 : 저는 한국에 있을 때는 춤추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발레뿐만 아니라… 저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을 다 듣는 편이거든요. 특히 대중음악도 너무 좋아해서 춤을 배우러 다녔어요. 힙합 클래스, 재즈 클래스도 다니고… 좀 신기하죠? 그렇게 이런저런 춤 배울 수 있는 것은 다 해본 것 같아요.

윤 : 참… 그 같이 춤추는 일반 회원들 참 주눅 들게 오징어 만들어 놨겠네요. 하하하

한 : ㅎㅎㅎ(아주 부정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아니 아니에요~~

윤 : 왜 그러셨어요…?? ㅎㅎㅎ 그분들은 즐겁게 취미생활하려고 하는데 프로 발레리나가 가서…

한 : 하하하 그러기보다 저를 정신 나간 애 취급했었어요. 저는 부모님이 굉장히 엄하세요. 마음 같아서는 밤새고 춤추고 놀고 싶은데 꼭 새벽 두시면 친구들과 있던 장소에 데리러 오셨어요. 사실 그게 지금까지도 한이 맺힐 정도였는데, 그래서 보스턴에 오면서 우와 드디어 자유다!!! 하고 왔어요. 이제 클럽에서 밤새고 놀 수 있겠다 했는데 보스턴은 클럽을 새벽 두 시에 닫더라고요.

윤 : 하하하하

한 : 저는 한 번도 밤을 새며 놀아본 적이 없어요. 클럽에 가서 미친 듯이 춤을 추고, 그리고 집에 와서 잠을 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는 그것조차 안되더라고요. 나이를 먹으니까 밤새고 놀기도 힘들고 다음 날 가서 발레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체력을 소진하면 안 되니까 춤도 못 추겠고…

윤 : 이래저래 애로사항이 많네요.

한 : 그렇죠? 대신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 여기 와서는 집에서 영화 보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여가 시간이 있으면 영화를 보는 편이에요.

윤 : 아… 영화를 보는군요. 원래는 작정하고 밤새고 춤추고 놀아볼까 했는데 여건도 안되고, 힘도 들고… 이거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요?

한 : 하하하 보스턴은 참 신기한 도시인 게 옷가게나 상점 이런 곳이 저녁 7시면 전부 문을 닫아요. 그 점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좀 싫었던 점이기도 해요.

윤 : 너무 교과서 같은 도시인 건가요?

한 : 네 맞아요. 그리고 사람들이 대부분 참 일찍 일어나고요. 그래서 아침에는 운동을 엄청 많이들 하고 있어요. 보스턴 사람들은 공부와 운동에 미쳐있는 사람들 같아요. 그리고 클럽이 새벽 두 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요??

윤 : ㅎㅎㅎ 서혜씨 지금 약간 감정이 격해 있어요. 좀 화내고 계신 것 같아요.

한 : 어… 제가 말하다 보니 좀 화가 나네요. ㅎㅎㅎ

윤 : 두 가지가 놀랍고 화가 난 거네요. 첫 번째가 보스턴 발레단 가봤더니 생각보다 엄청 큰 발레단이었다. 두 번째가 보스턴 도시 왜 이러냐… 클럽이 새벽 두 시에 닫다니… 하하하

한 : 제가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서 사람들 만나고 어울리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 와서 그걸 못했거든요.

윤 : 서혜씨 너무 귀엽네요… ㅎㅎ


2017년 e발레샵 캘린더 화보 (모델 / 한서혜, 사진 / 김경식, 사진제공 / e발레샵) kyung6ⓒ 2016



발레리나 한서혜의 롤모델이 궁금해졌다.
앞으로 그녀의 모습도 살짝 비슷해지지 않을까?


윤 : 무용수로서 롤모델 있어요?

한 : 제가 보스턴에 와서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생겼는데 현재 우리 발레단에서 티칭을 하시는 라리사 선생님(Larissa Ponomarenko / Ballet Master)이세요. 국적은 러시아이고  보스턴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계셨던 분이세요. 제가 이 분을 왜 사랑하냐면 나이가 꽤 많으신 50 정도인데 아직도 동화 속에서 살고 계세요. 외모로도 너무 젊어 보이고, 이 분을 보면서 사람이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몸과 마음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분은 아직도 동화 속에서 공주님처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참 아름다우세요. 가르칠 때도 발레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지적을 해주세요. 예를 들어서 제가 호두까기의 설탕요정(Sugarplum Fairy)의 손동작을 해요. 설탕요정은 설탕처럼 달콤해야 하는데 손동작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싶으실 땐, “이렇게 생각해봐… 네가 이 쪽으로 손을 보낼 땐 이쪽에는 캐러멜이 뿌려져 있는 사과가 있어. 저 쪽으로 손을 보낼 땐 저쪽에 솜사탕 맛이 나는 포도가 있어. 그러면 얼마나 달콤하게 손동작을 해야겠니?” 이런 코렉션을 받으면 이해가 확 되면서도, 가끔씩… ‘괜찮으신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시지…?’ 그래도 저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윤 : 음… 그분은 진정한 예술가 마인드를 갖고 계시는데요?

한 : 네… 사실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됐어요. 지금은 그냥 생각 자체가 그런 분이세요. 그래서 저한테 동화를 꿈꾸게 하는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세요.

윤 : 어른이 되면 완전하게 동화를 꿈꾸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냥 그것이 어떤지 머리로 아니까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동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표현, 가르침을 준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저 같은 문외한도 그 얘기를 들으니까 그 손동작이 뭔지 막 알 것 같아요.

한 : 그렇죠? 막 상상이 되죠? 라리사 선생님은 지금 현역에서 당장 춤을 춰도 될 정도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계세요.



발레에 국한되지 않고 더 큰 비전을 향한 도전을 꿈꾸는 그녀.
그녀의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낸다.

윤 : 많이 하는 질문이에요. 서혜씨 인생에 있어서 여기까지의 도전도 대단하고요. 생각해보면 발레만 20년을 넘게 한 것이잖아요. 이것이 예술가로서의 종착점이 아니고 계속 가는 과정일 텐데… 나중에 생각하는 예술인의 모습이나 서혜씨만이 생각하는 비전? 이런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한 : 사실 저는 발레리나로서 꿈꿨던 목표는 현재 어느 정도 도달했어요. 수석무용수가 된 것만으로도, 감히 이 자리까지 온 것만으로도 저는 제 꿈을 어느 정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어요. 나중에는 발레리나로서의 삶보다는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요. 발레를 전공하면서 발레에만 정신을 집중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지금 지영씨가 하고 계신 일도 그렇지만 저도 발레에 관한 것을 좀 더 알리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일반 사람들이 발레를 접하기 어려운 이유가 발레리나(리노)들은 발레밖에 안 해요. 다른 것을 접할 기회도 적고요. 요즘은 조금 세컨드 잡 개념으로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런 분들도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고요. 저는 공부를 좀 더 해서 발레 분야를 대변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윤 : 저는 서혜씨가 다른 무언가를 꿈꾸는 것을 정말 응원해요. 발레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발레 이외의 것, 행정, 경영 이런 부분에 안목을 넓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같은 일반인이 이런 일에 동참하는 것보다 서혜씨처럼 기존의 영향력 있는 분들이 이 분야에 더 나서 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서혜씨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것도 너무 고마웠고, 서혜씨가 이런 작업에 상당히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고요.

한 : 네 저도 이런 작업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분야에 관심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있었으면 해요.

윤 : 이야… 그럼 서혜씨는 무용수의 모습 말고도 다른 멋진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는 거네요.

한 : 인생은 어차피 한 번인데 하고 싶은 일, 꿈꾸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유쾌한 언니 한서혜 발레리나가 전해주는 취미발레인을 위한 원포인트 레슨!!


윤 : 취미발레가 한국에서는 붐이 많이 일었어요. 보스턴 발레단 수석무용수 한서혜씨가 현지에서 전해주는 원 포인트 레슨… 어떤 것일까요?

한 : 음… 이 질문이 진짜 어렵네요. 후후후… 원 포인트 레슨이라… 뻔하고 많이 들었을 이야기 같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에요. 제가 여기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이 남의눈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예요. 60세 할아버지가 타이츠를 입고 와서 발레를 하시는데 그것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본인도 그 모습을 너무 자랑스러워하면서 춤을 추시는데 그게 정말 멋있더라고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랑하면서 춤을 췄으면 좋겠어요. 취미발레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발레리나다’라고 생각하고 춤을 췄으면 좋겠어요. 나는 발레를 하고 있어요! 꼭 취미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니까 그것을 충분히 누렸으면 해요. 그런 마음은 발레를 하는 데 있어서나 관람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윤 : 정말 맞는 말이네요. 서혜씨 이야기 들으니 그런 마음으로 발레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 : 서혜씨… 오늘 즐거우셨나요?

한 : 네, 너무 재밌게 얘기했어요.

윤 : 오늘 긴 시간 서혜씨의 마음속 이야기 진솔하게 이야기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내년 여름에 오면 만나요.

한 : 내년에 가면 지영씨 아이들도 만나게 해주세요. 애기들 너무 좋아해요.

윤 : 네, 꼭 그럴게요. 건강하게 즐겁게 생활하시길 기원해요.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YucP0hPDk0&feature=youtu.be

ballerina / seo hye Han (Boston ballet),  film / kyungsik Kim, 2017 e.balletshop making film story




해외에 진출한 우리 무용수들을 인터뷰하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그들이 속한 발레단에서 연습 관련 공식 동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내가 인터뷰한 무용수의 모습을 찾게 된다. 한서혜 발레리나는 요즘 보스턴 발레단의 2월 작품인 Artifact를 한창 연습 중이다. 아무리 인터내셔널한 발레단으로 여러 나라의 무용수가 있다고는 해도 그 무리 중에 발레리나 한서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똑같은 발레번을 하고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어도 그녀는 빛이 난다. 검은 머리, 예쁜 두상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 무리 중에 흑진주를 발견한 기분이 든다. 

인터뷰 녹취를 받아 적다 보니 인터뷰어인 필자는 아하하하 웃음소리가 대부분일 정도로... 유쾌함을 넘어서 그녀의 무제한 개그 본능에 실컷 웃느라 정신없었다. 그런데 그것 아는가? 유쾌함으로 무장한 그녀의 연습 동영상을 보면 열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춤에 임하는 또 다른 그녀를 만나게 된다. 무대 위에서 항상 최고와 최선의 줄다리기를 영리하게 조절할 줄 아는 그녀이기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하게 된다. 그녀의 또 다른 행보와 도전에 마음을 다해 응원을 보낸다. 





취미발레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발레리나 한서혜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eohyehan/


이발레샵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balletshop/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및 영상 : 형제발레리노 (김경식/사진,영상, 김윤식/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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