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_안재용 01

발레는 인간의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제2부 / 우리가 사랑하고픈 그들의 이야기



5. 안재용 발레리노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Les Ballets de Monte Carlo)_01

발레는 인간의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2016년 봄에 우연히 한 발레리노를 알게 됐다. 필자와 한참 작업을 진행하던 김윤식 발레리노와 함께 회의를 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친구가 와서 윤식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김윤식 발레리노는 자연스럽게 필자에게 그를 소개해줬다.

“지영씨! 제 선화, 한예종 후배고요. 이번에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하게 됐어요.”

큰 키에 발레리노로서 가지고 있는 훌륭한 몸, 커다랗고 착한 눈을 지닌 청년. 초면이지만 그 청년이 너무 대견해서 필자는 입단을 진심으로 축하해줬고, 그렇게 재용군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인터뷰하고도 이후로도 몬테카를로에서 계속 주역을 맡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이다. 필자의 저서 <어쩌다 마주친 발레>에 나온 사진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해준 몬테카를로의 멋진 루키 안재용. 젊은 무용수이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발레를 대하며 열정을 지니고 있는 그를 만나보도록 하자.



만능 스포츠맨, 사춘기 시절에 발레를 만나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다.


윤여사 (이하 윤) : 반갑습니다. 재용씨 먼저 한국에 있는 팬들을 위해 자기소개 간단히 해주세요.

안재용 (이하 안) : 안녕하세요. 저는 안재용이라고 합니다. 현재 만 23세,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이것저것, 처음에 발레를 전공하기 전에 레저 활동이랑 스노우 보드 등 다른 활동을 많이 하다가 중학교 때 누나가 성악을 전공해서 누나의 권유로 발레에 서서히 관심을 갖고 이후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원래 꿈은 성형외과 의사였어요.

윤 : 아… 그래요?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나봐요? 아님 재용씨 외모에 좀 자신이 있어서?

안 : 하하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어릴 때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화재나 사고로 인해서 외형이 변형된 그런 분들을 치료하는 의사를 보고 저렇게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윤 : 재건 성형 쪽을 말하는 거군요?

안 : 또 자라면서 자동차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래서 한때는 자동차 디자이너도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누나가 무용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을 때 ‘어휴! 남자가 무슨 무용이야? 타이츠, 쫄쫄이…’하면서 듣지도 않았죠. 당시 저는 발레리노의 서포트, 댄스 벨트(발레 타이츠 안에 입는 남성용 언더웨어)의 존재도 아예 모르고 있었어요.

윤 : 후후후 비밀스러운 부분조차 모르셨군요.

안 : 네, 그래서 난 안 할 거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누나가 알겠다고 하면서 시간 나면 한번 보라고 하면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나오는 ‘백야’ 영화를 제 방에 던져놓고 갔어요. 당연히 안 봤죠. 관심도 없었고…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집에서 놀다가 너무 심심한 거예요. 그래서 이게 뭔지는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 틀었어요. 아… 그 첫 장면… ‘Le Jeune Homme Et La Mort’라고 젊은이와 죽음. 롤랑 프티의 작품인데 거기서 바리시니코프가 와… 정말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게 발레구나… 하면서… 앉은자리에서 영화를 세 번 돌려봤어요.

윤 : 백야… 많은 발레리노들과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 영화 중 하나죠.

안 : 저 같은 사람 많을 거예요. 발레리노 중에서… 해봐야겠다. 나도 발레 시작하면 바리시니코프처럼 되겠다… 되나 보다… 하면서 시작을 했죠.

윤 : 후후후 그럼요. 가능해요.

안 : 하하하 아… 물론 시작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해서 발레를 시작하게 됐어요.


윤 : 발레를 조금 늦게 시작했네요. 원래 다른 운동을 하셨었나요?

<어쩌다 마주친 발레> b컷 중 (모델 / 안재용. 정영서, 사진 / 김경식) kyung6ⓒ 2016

안 : 중학교 때까지 스케이트 선수였어요. 스노우 보드도 타고, 산악자전거도 탔었고요. 제가 누나가 하나 있는데 누나가 성악을 전공했거든요. 발레를 시작한 계기는 누나의 권유로 인한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오히려 남자가 무슨 발레냐고 발끈했었는데 진짜 운명처럼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성악도 했었어요.

윤 : 아… 성악도 했었구나… 노래도 잘해요?

안 : 제가 콩쿠르도 한번 나갔어요.

윤 : 뭘로요… 성악으로요?

안 : 후후 네, 성악으로요. 그때 제가 감기에 걸렸는데 그래도 콩쿠르 나가서 잘했어요. 그렇게 마지막 마무리 부분을 부르는데 기침이 나오며 켁~하고 걸린 거예요. 그렇게 첫 번째 노래를 끝냈어요. 노래를 마치고 속도 상하고 기죽어 있는데 선생님이 괜찮다고 두 번째 노래를 네가 더 잘하던 거니까 잘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자신감도 생기고 두 번째 노래도 잘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똑같이 켁~하면서 소리가 그렇게 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다시는 노래하나 봐라! 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거부했죠. 사실 노래하고 음악 듣는 것 굉장히 좋아하는데 안 하게 되더라고요.

윤 : 초등학교 시절이었나요? 어릴 적이었는데도 트라우마가 생겼나 봐요.

안 : 그랬던 것 같아요. 어려서 더욱 그게 크게 와 닿았었을 수도 있고요.

윤 : 재용씨 누나랑 재용씨? 부모님이 예체능 쪽으로 굉장히 열린 사고를 가지고 계셨나 봐요.

안 : 네, 어머니도 미술을 전공하셨어요.



신체 조건만 갖추고 있다고 발레를 할 순 없다.
발레에 대한 고민으로 좀 더 성숙한 발레리노의 길을 향해 가다.


윤 : 그러면 한 중3? 그 정도인가요?

안 : 아니오. 그때 정도 결심을 한 거고 부산에서 처음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요. 발레를 배우며 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예고로 전학을 간 거죠. 그래서 처음에 1년은 부산에서 했었죠.

윤 : 약간 혜성 같은 존재였겠어요. 몸이 좋다는 이유로 늦게 시작해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당시에 그랬을 것 같아요. 동기들 입장에서 “쟨 뭐지?” 그러지 않았나요?

안 : 아… 어쩌면 주변에서는 그랬을지도 모르는데 저는 전혀 못 느끼고 있었어요. 아마 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여담으로 발레 배운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일이었어요. 클래스를 하면 양손바 잡고 턴듀 하면서 거울을 보잖아요. 거울 속에 비친 제 자신의 모습이 너무 역겨운 거예요. 격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토할 정도록 너무 이상한 거예요. 라인이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너무 동떨어져있고, 옆에서 하고 있는 여자 애들은 예쁘게 잘하는데 내 모습이 너무 보기 흉해서 수업 도중에 소리를 빽 지르고 바를 밀어버리고 성질을 내면서 나가버렸어요.

윤 : 헉… 하하하 선생님 급 당황하셨겠어요.

안 : 하하하 네… 선생님이 당황하시면서 쫓아 나오셔서 너 왜 그러냐고 그러셨죠. 울지는 않았지만 너무 북받쳐 올라서 울컥하면서 얘기했죠.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봤냐. 내가 생각한 발레가 아니라고 했어요. 너무 역겨워서 볼 수가 없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클래스 끝나고 자기랑 처음부터 다시 잘해보자 하시더라고요. 수업 끝나고 발레 슈즈 신은 더러운 발 손으로 다 만지면서 모양 잡아주시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셨어요. 그때부터 뭔가 차분해지고 진지해졌던 것 같아요.

윤 : 그런데 그 순간이 재용씨에게는 엄청난 계기였을 것 같아요.

안 : 네. 그런 생각은 했죠. 어? 이게 뭔데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속상하고 그런 기분이 들지? 그러면서 발레에 대해 좀 더 애착을 갖고 하나씩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윤 : 그러다가 선화예고, 한예종으로 진학을 한 거고요?

안 : 선화예고로 간 계기도 좀 특이해요.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여름, 겨울마다 발레스쿨을 개최하잖아요? 저는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동계 스쿨을 하러 서울로 올라갔어요. 그때 유병헌 감독님이 너 가르치고 싶은데 너 집이 어디냐?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사투리 쓰면서 ‘부산인데요~’ 그랬죠. 왔다 갔다 하면 힘들 텐데 그러시길래 제가 주말이라도 왔다 갔다 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러면 안된다고, 매일 본인과 해야 한다고 하시고, 다음날 바로 문단장님(문훈숙 단장)이 오신 거예요. 그러더니 배우려면 선화로 전학을 오라고 하셔서…

윤 : 스카우트 되신거네요?

안 : 아니 뭐 제가 발레단도 아니고… 스카우트까지는…

윤 : 발레단은 아니지만 선화예고 입장에서는 이 정도 재목이면 가르쳐볼 만하겠다고 한 거죠.

안 : 그런가요? 그렇게 되면서 고3 때 선화예고로 전학을 오게 됐어요. 그러면서 그렇게 레슨을 받는데 서울로 와서 잘하는 친구들 많이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윤 : 맞아요. 다른 사람들, 특히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의 동작이나 라인을 보는 것은 중요한 것 같아요. 다양한 것을 봐야 나에게도 발전이 있죠.

안 : 환경적인 요소. 그냥 생각하던 것과 내가 직접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크더라고요. 그때 처음 다른 발레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되게 다르다.. 뭔지 모르게 체계적이고 깔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당시 함께 발레 했던 친구가 정한솔 군이라고 현재 시카고의 조프리 발레단(Joffrey Ballet)에 있어요. (이후 정한솔 군은 2014년도에 미국 잭슨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한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때는 남학생이 저와 한솔군 둘 뿐이었는데 남자 클래스가 따로 열렸거든요. 그 친구는 테크닉도 좋고, 짱짱하고 그랬던 친구라서 함께 배우면서 제게 큰 도움이 됐었어요. 어떻게 해야 깔끔하고 멋진 라인이 나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고요. 그러다가 선화예고를 졸업하고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을 보고, 운이 좋게 합격을 했고요.

윤 : 무용원이 몇 명 정도 되고, 그중 남학생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됐나요?

안 : 남학생이 한 20-30명 정도, 여학생이 그보다 조금 더 인원이 많고요. 하지만 해마다 유동적인 것 같아요. 저희 동기들은 남녀 비율이 딱 반반이었어요. 동기들은 남자 여섯, 여자 일곱 이렇게요. 저희 아래 학년은 남자가 넷 여자가 열명 정도로… 해마다 좀 비율이 다르죠.

(모델 / 안재용, 사진 / 김윤식, 2016) yoon6photoⓒ 2016



안재용과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묘한 인연의 끈. 그 시작…


윤 :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한예종 졸업과 동시에 가게 된 건가요?

안 : 졸업하면서 졸업하는 시기에 맞춰서 해외 오디션을 보게 된 거예요.

윤 :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나요?

안 : 음… 처음에는 그냥 몬테카를로 발레단 좋다더라. 이야기만 들었었고, 또 윤혜진 선생님도 갔다 오셨고, 그렇게 들어서 알고만 있었어요. 정확히 어떤 발레단이다라는 인포메이션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예전에 국립발레단에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신데렐라를 본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당시 클래식 발레의 안무도 아니고 특이한 꼬불꼬불한 튜튜를 입고 나온 것 등등, 마냥 신기한 기억만 있었어요. 그때 재밌게 보긴 했지만, ‘우와 감동이다!!’라는 느낌보다 ‘와… 특이하다… 다르다…’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내가 가려고 하는 발레단이 내가 봤던 그 작품을 만든 발레단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DVD를 찾아봤더니 완전 새로운 작품으로 보이더라고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왜 예전에는 이 작품을 이런 눈으로 보지 못했나라는 생각이 들며 놀라고, 이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어요. 그러고 나서 이 발레단에 가보고 싶다. 내가 이 작품의 로미오를 한번 해봐야겠다. 하하하 아직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어요.

윤 : 아직 몬테카를로 발레단 현지에서 동양인 로미오는 없었나요?

안 : 네… 한국에 판권으로 작품이 들어왔을 때는 국내 무용수가 했지만 몬테카를로에서 했던 롬앤줄에서는 없었어요.

윤 : 재용씨가 한번 하긴 해야겠네요.

안 :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해외에 진출한 무용수로서 바라보는 가장 한국다운 발레.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다.


윤 : 아까 함께 발레 했던 한솔씨 이야기도 잠깐 나왔지만, 어때요? 외국에 나가서 활동해보니 한국 무용수, 특히 재용씨 입장에서는 한국 발레리노들만의 강점이 느껴지는 것이 있나요?

안 : 해외 발레단 어딜 가나 동양인 무용수는 꼭 있어요. 특히 일본인이 많고,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이 있죠. 제가 입단하고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나 발레 마스터인 죠반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같은 동양인이지만 춤을 보면 그들 눈에도 한/중/일 각 나라의 색깔이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일본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깔끔하고 단정한 춤을 추고, 중국 친구들은 완벽한 테크닉을 만들어 온대요. 음… 뭐랄까? 중국스러운 좀 아크로바틱한 면이 있다고 하면 될까요? 그에 비해서 한국 친구들은 춤에서 세련미가 느껴진다고 해요. 사실 그들 입장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아주 잘 알지는 않죠. 하지만 춤에서 뭔가의 여백으로 인한 세련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수의 춤을 보고 나면 오히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멋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해서 놀랐어요. 한국은 전통적으로 건축물이나 의상, 문화에서도 그런 ‘멋스러움’이 존재하잖아요. 우리 조상들이 막 살지 않고,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잖아요. 한국에 있을 땐 자연스러운 부분이었는데 외국 나가서 보니 그게 정말 소중한 문화유산이더라고요.

윤 : 그런 멋스러움이 바로 ‘풍류’잖아요. 우리 일상에 알게 모르게 깊이 배어 있는 문화이기도 하고요.

안 : 맞아요. 그런 것이죠. 우리 전통 무용도 보면 그런 선이 살아있죠. 언뜻 보면 외향적인 것 같지만 동시에 내면을 품고 있는 그런 것들이 발레에서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발레가 서양에서 시작된 춤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표현했을 때 우리의 멋과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직 그런 면을 전부 가지거나 표현하지는 못해도, 저의 선생님이나 선배들의 춤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돼요.



몬테카를로의 색깔은 필자가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강렬함이 더욱 궁금해지게 만드는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마력의 안무. 그의 작품을 보면 ‘천재 안무가’란 수식어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클래식 작품을 현대적으로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그의 예술성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재용씨의 입을 통해 들어본다. :)


윤 : 그렇다면 재용씨가 바라 본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색깔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지금 재용씨의 상황에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말 그대로 지금 루키잖아요. 막 새롭게 시작하고, 계속 도전을 하는 재용씨의 일상에서 비춰본 몬테카를로의 모습이 궁금해요. 물론 정답이 없는 질문이고요.

안 : 제가 단정 짓기는 뭐해도 지금 바라 본 발레단은 Red, 빨강이예요. 왜냐하면 모나코가 프랑스와 굉장히 가까워요. 그런데 프랑스에는 뭔지 모르게 차갑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에 비해 모나코는 완전히 독립적인 왕국이고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어요. 그 도시의 색깔이나 발레단의 색깔을 레드라고 말한 이유는 저희 발레단을 구성하는 단원들의 국적이 굉장히 다양해요. 17개국에서 왔어요.

윤 : 단원 전체 인원은 어느 정도 되나요?

안 : 약 60명 정도 돼요.

윤 : 와… 그러면 정말 다양한 국적을 가지고 있는 거네요.

안 : 네 맞아요. 어느 나라에서 3명, 어디서 2명, 저는 한국에서 한 명 이런 식으로요.

윤 : 아… 만약 혜진씨(윤혜진 발레리나)가 있었다면 한국인 두 명이었을 텐데… 살짝 아쉽네요. 남녀 한 명씩…

안 : 사실 제가 가장 아쉬운 게 발레단 가면 다 같이 얘기하다가 같은 나라 단원들끼리는 자기네 언어를 사용해요. 그게 어쩔 땐 너무 부러워요. 저도 다 같이 얘기하다가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션을 취하다가) 혼자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죠.

윤 : 정말 그랬겠네요.

안 :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한국말도 하고 싶고 말할 상대도 없고 답답한 마음에 아무 단원이나 붙잡고 “야… 배고픈데 밥 먹자…”이랬더니 그 친구가 “what???”하더라고요. 하하하. 그래서 영어로 이런 뜻이다 얘기했더니 한국말도 따라 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요즘엔 한국이 워낙 여러 가지로 유명하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궁금해하며 저한테 다가와서 물어보고 그러기도 해요. 이렇듯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보니 자기 안의 것을 가두고 있을 수가 없어요. 내놓아야 하고 서로 이해하고 조금 더 양보해야 하고요. 흔히 말하는 텃세라는 것이 존재하기보다 새로운 사람이나 문화에 대해서 포용력이 있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여요.


윤 : 모나코라는 나라의 분위기가 그런 것을 만들어주지 않았을까요? 마음이 여유로울 수밖에 없는?

안 : 그럴 수도 있어요. 발레단 스튜디오 앞에 바다가 있고, 항상 날씨가 좋고, 태양 광선이 딱 좋게 내리쬐고…

윤 : 우와… 그렇다면 마음이 여유롭지 않을 이유가 없죠. 윤식씨(김윤식 발레리노)가 몬테카를로 다녀왔을 때 어땠냐고 제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뭐라고 그랬는 줄 아세요? “지영씨 거기는 그냥 춤이 나와요. 발레단에 들어가서 클래스를 하는 순간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됐어요” 그 이야기 들을 때 정말 그랬겠다 싶더라고요.

안 : 예전 윤혜진 선배님이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무용수들의 천국이다’라는 말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생활하는 것도 보면 발레단 자체의 생활이 쉬운 건 아니지만, 일과가 끝나고 여가를 즐길 땐 수영하고,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며 피자 먹고, 저녁에 함께 음악 들으며 요리하고… 말 그대로 일은 하지만 휴양지에서 지내는 것처럼 마음에 여유가 있어요. 편안한 느낌이 들어요.

윤 : 와… 다음 휴가지로 꼭 가보고 싶네요. 삶에 있어서 그런 여가는 중요하죠.


안 :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지내면 춤추는데 처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희 단장(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재용군은 그를 장형이라고 불렀다)이 상남자에다 유머러스하고 성격도 좀 불같아요. 그의 안무를 보면 그냥 하나도 흘러가는 것이 없어요. 모든 동작들이 꽉꽉 채워지고, 그렇기 때문에 무용수들에게는 굉장한 체력을 요구해요. 예를 들어 코르 드 발레가 창만 들고 서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해요. 그래서 장형은 연습할 때 코르드를 솔리스트라고 부르기도 해요. 오히려 춤추는 비중이 더 많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리허설 때는 소리 지르며 막 욕도 해요. 반대로 잘할 때는 폭풍 칭찬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에너지 분출이 있기에 단원들의 실력을 계속 향상 시키는데 한몫을 하는 것 같아요.

윤 : 하하하. 장형(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진정한 상남자 맞네요 동네 맏형 캐릭터.



루키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담(?) 하지만 이건 실수라기보다
루키다운 열정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리지 않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나눠본다.

안 : 하하하 맞아요. 그래서 장형이에요. 그런데 단원들도 재밌는 게 진짜 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한다는 거예요. 제가 처음에 갔을 때 클래스를 하는데 다들 너무 대충하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아… 이 사람들 이렇게 성의 없이 해도 되나…’하며 생각하고, 저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갔으니 심기일전으로 혼자 땀 흘리면서 진짜 열심히 했죠. 를르베 더 열심히 하고, 밸런스 더 오래 잡고, 혼자 죽기 살기로 하는데 다들 힘 풀고 순서 자기 맘대로 하고, 각자 스트레칭하더라고요. 그리고 클래스를 하는데 솔직히 썩 잘해 보이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아… 이 사람들 실력이 이 정도구나…’라고 생각하며 리허설을 들어가는데 아까 클래스에서 봤던 사람들을 한 명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전부 다 괴물로 변하더라고요. 표정부터 손끝 발끝 하나하나까지 다 살아서 움직이는데 완전 충격받았어요. 제가 제일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 친구들은 이미 그 경지를 다 넘어서 클래스는 일상이고 릴랙스를 하는 수준이고, 체력 조절부터 진짜 힘써야 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이 신입인 제가 땀 흘리며 클래스 하니 어깨 툭툭 쳐주며 “어이~ 재용~~ 잘하네!!!”했으니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얘들이 날 얼마나 우습게 봤을까… 등등 별별 생각 다 들었어요.

윤 : 하하하하 단원들이 너무 페이크를 취한 바람에 재용씨 당황했겠네요. 죽기 살기로 클래스 했는데…

안 : 다른 발레단에서 솔리스트 이상 하다가 온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그러니 얼마나 잘하겠어요.

윤 : 재용씨가 거기서도 어린 편이죠?

안 : 네… 제가 어린 편이에요. 저보다 나이 어린 친구가 두 명 있어요.

윤 : 재용씨한텐 정말 좋은 곳이네요. 그런데 하하하 아까 그 이야기 너무 웃겨요. 선배들 입장에서는 재용씨 모습이 너무 귀여웠을 것 같아요.

안 : 하하하 아마 잘한다는 소리가 나도 소싯적에는 저랬어~ 하면서 귀엽다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 빨강이 따스함을 포함하지만 순간적으로 타오를 수 있는 절제력 있는 빨강이요. 장밋빛 진홍색 같은? 하지만 다음에 얘기하면 색깔이 바뀔 수도 있죠.

윤 : 아… 그건 당연한 거예요. 사실 저도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자세히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아까 이야기 초입에 든 이미지가 저 역시 빨강을 연상했어요. 그런데 365일 긴장, 비상사태의 빨강이 아닌 좀 여유로운 빨강이라고 해야 하나요? 좀 그랬어요.

안 : 네… 붉은 느낌이라면 더 어울릴 거예요.


몬테카를로 발레단에서의 클래스 (사진제공 / 안재용)



발레리노 안재용이 말하는 자신의 모습.
무대 위에서 강점을 만들어내는 그만의 힘.

윤 : 재용씨가 좋아하는 동작은 뭐가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사실 발레 하기에 아주 적합한 몸은 타고났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안 : 아… 이 질문 너무 어렵고 민망해요. 하하하 제 입으로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음… 사람들이 저보고 발레 하기 좋은 몸에 외모도 수려하다고 해주시면 감사하고요. 하하하 그런데 사실 제가 밖에서는 상당히 허당 캐릭터예요. 좀 허술한 면이 많죠. 그러다가 무대에 오른 제 모습을 보면 저를 알던 사람이 “야… 아까 너 맞아? 너 진짜 다르다”라고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저는 그런 말 들을 때 상당히 기뻐요.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캐릭터를 제 몸을 통해서 훨씬 극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즐기고, 그런 면이 저한테는 무대 위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특히 감정적인 부분을 나타낼때요. 예를 들어 똑같은 아라베스크, 턴듀, 똑같은 점프를 하나 뛰더라도 관객 입장에서 더욱 와 닿을 수 있도록 좀 더 나만의 라인을 생각하고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해요. 무대를 올라가면 긴장도 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관객이 저를 보고 있다는 것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에요. 그래서 연습 때 안 하던 것을 더욱 강조해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것을 좋아하고요. 라인으로 감정이나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진짜로 즐기는 것 같아요.

윤 : 무용수에 따라서 같은 역할을 해도 어떤 사람은 좀 더 남성적으로 어떤 사람은 강박적인 섬세함으로 나타내기도 하죠.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고 그 다양함 속에 캐릭터의 해석도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함을 볼 수 있는 행운은 관객들이 누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안 : 역할이 주어지면 그것에 더욱 몰입해서 나를 통해서 어떻게 표현될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돼요. 이번에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패리스 역할을 맡았을 때도 그런 감정 연기가 재밌더라고요. 줄리엣의 약혼남으로 모든 것을 가진 남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 캐릭터죠. 줄리엣의 엄마인 캐퓰렛 부인이 우리 딸과 결혼해달라고 했을 때 그 마을에 한번 놀러 가는 심정으로 가는 남자. 정략결혼 같은 의미죠. 그곳에 가서 나이스하게 굴지만 마음속으로는 상대를 약간 얕보는 듯한 거만한 캐릭터를 나타내는 역할이었어요. 그런 감정이 춤으로 나와야 하죠. 같은 아라베스크를 해도 예쁜 아라베스크 짠~! 이런 게 아니라 이 마을에서 한 단계 위의 것을 나타내야 해요. 그런데 내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줄리엣에게 거부를 당하잖아요. 예상치 않은 거부에서 오는 모욕감, 모멸감을 세련되게 표현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에요. 패리스의 등장으로 인해서 줄리엣이 더욱 로미오를 갈망하고 갈등을 고조시키는 흐름을 이어가죠.

윤 : 그렇네요. 패리스의 등장으로 극의 긴박감을 몰고 가는 상황으로 흘러가죠. 줄리엣이 쫓기는 입장이 되죠. 감정적이나 결단에 있어서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그 정략결혼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잖아요. 극 중반 이후 그것을 끌고 가는 인물이 패리스네요.

안 : 그 역할을 표현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제가 완벽하게 연기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사람 자체가 되는 그 과정이 참 즐거웠어요.

윤 : 그러고 보니 패리스… 재용씨랑 잘 어울린다. 그래도 이 역할만은 해보고 싶다면 어떤?

안 : 당연히 로미오죠. 하하하

몬테카를로 발레단 롬앤쥴 스튜디오 리허설 중 (사진 /김윤식, 2016)




발레는 인간의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입니다.


윤 : 저는 사실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물론 주인공은 로미오와 줄리엣 두 사람이지만, 그 주변의 인물을 너무 매력적으로 표현해서 그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캐릭터 하나하나 너무 입체적이고, 흔히 말해서 버릴 캐릭터가 한 명도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중구난방으로 전부 주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캐릭터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낸 것 같아요. 재용씨가 맡은 패리스 역할, 레이디 캐퓰렛은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고, 티볼트, 벤볼리오, 심지어는 유모까지 그 캐릭터가 생동감 있게 느껴졌어요. 무대 장치도 정말 인상적이었고요. 안무가의 역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한국에서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직접 와서 한번 공연했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보고 싶어요.

안 : 저희 2년 뒤에 투어 있어요.

윤 : 앗! 그럼 그때 로미오로 오는 거예요?

안 : 하하 그건 아직 모르고요. 제가 발레단에 딱 입단했을 때 마이요가 저한테, "Hey Jay After 2 years, we have tours in Korea"라고 하더라고요.

윤 : 음… 기대해볼게요

안 : 마이요 작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왜 재미있고 의미 있는지 아세요? 마이요가 저희에게 직접 이야기해준 건데 셰익스피어 원본에 가장 가깝게 해석을 했기 때문이래요. 리허설 중에 그 동작을 설명하는데 원본에 나오는 그 문장 하나를 그대로 말해주는 거예요. 그때 딱 느꼈어요. ‘아… 춤이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맞아… 말을 그대로 표현하는 거였지?’ 그것을 보면서 또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진짜 유명한 안무가는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genius란 말이 딱 맞구나… 아… 내가 진짜 장형이랑 작업을 하고 있는 거구나. 공연을 하면 단원들도 서로 그 춤을 보고 구경하고 그래요. 사실 그 상황이 좀 웃긴데 단장 자체가 워낙 유명한 안무가다 보니 공연을 하면서도 서로 관객 입장에서 보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https://www.youtube.com/watch?v=Yqeu5sYNI2E

Motion in square, Dancer /안재용, Director / 김경식 kyung6ⓒ 2016



필자와는 19살의 나이 차이를 지니고 있는 청년 안재용. 실제로 필자의 조카와 나이가 같아서 재용군을 바라볼 땐 내 조카를 보는 기분이다. 서로의 호칭은 지영씨, 재용씨 또는 재용군이지만 인터뷰 이후 기쁜 소식이 있으면 간간히 연락을 취해왔다. 2016년 9월에 있었던 <한 여름밤의 꿈_Le Songe>으로 중국 투어에서 오베론 숲의 왕의 역할로 주역 데뷔를 했다. 이후에 모나코로 돌아와서 <잠자는 숲 속의 미녀_La Belle>에서 데지레 왕자를 맡았다. 이후 프로그램인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매력적인 악역 티볼트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그가 하나씩 역할을 해낼 때마다 필자는 축하와 응원을 함께 하며 기뻐했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되는 발레리노. 그가 펼칠 다양한 역할과 행보에 더욱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2017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 중, 티볼트 역할 (사진 /Alice Blangero,사진제공 / 안재용)



안재용_02에서 계속...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ballet_writer/


발레리노 안재용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ragon186/



*글 : 취미발레 윤여사
*사진 및 영상 : 형제발레리노 (김경식/사진,영상, 김윤식/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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