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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넘어서 온 아이

by 윤모음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에는 옆집으로 이어지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 안방에 있던 창문을 열면, 다른 집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원래는 한 집이었을 공간을 집주인아저씨가 가벽을 설치하고, 양쪽으로 현관문을 만들어서 두 세대에게 세를 놓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옆집과 우리 집의 주인은 같았으니까. 우리 집과 옆집 모두는 쫄딱 망해버려서 이곳에 온 신세였다. 그러니까 창문 하나쯤을 이웃과 공유한다고 해서, 집주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입장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 이상한 구조에 대하여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 중 옆집으로 이어지는 창문을 여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어린 나는 창문을 열면,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그래서 아무 때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옆집에 있던 아줌마, 아저씨, 그리고 나와는 3살 차이가 나던 오빠를 불러 해맑게 “안녕” 인사를 건네고, 과자를 전달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면 옆집 가족은 한껏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고, 과일을 깎아주고, 대답을 해주었다.


그 무렵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가 많았다. 아픈 아빠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엄마는 아침 일찍 일을 갔다가 병원을 들러야 해서 늦게야 돌아왔으며, 중학생이었던 언니는 한창 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유 없이 겁이 났다. 텅 빈 집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저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런 마음이 들면 무작정 병원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무서워. 언제 집에 와?"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걸 몇 번씩 반복했다. 그러고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안방 창문을 열고 옆집 이웃을 향해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만 먹으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놀 수도 있었다. 현관문을 열지 못할 만큼 키가 작거나 힘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근처 공터만 가도 땅따먹기나 소꿉놀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 아닌, 옆집으로 향하는 창문을 택했다. 그들이라면,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에 놀란 옆집 가족은 매번 창문 쪽으로 달려와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면 나는 손을 뻗어 그들에게 안겨 옆집으로 넘어갔다. A4용지 정도의 크지 않은 창문이었지만, 나는 그 창문보다 더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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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가면 따뜻한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갓 지은 밥과 반찬, 그리고 고소한 보리차가 있는 저녁 식사였다. 아줌마는 고운 손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밥을 먹고 나면 아저씨와 오빠는 책을 읽어주거나, 공책에 함께 낙서를 해주며 놀아주었다. 그렇게 아무 걱정 없이 편히 놀다 보면,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시간이 흘러 늦은 저녁이 되면, 엄마나 언니가 집에 돌아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잠이 든 나를 깨우지 않았다. 조심히 안아 들고, 돌아가야 할 곳으로 데려다 줄 뿐이었다. 엄마는 고맙다고 말하며 슈퍼에서 사 온 야채와 과일 같은 것을 그들의 손에 쥐어 주었는데, 아줌마, 아저씨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다가 이내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하여 작은 성의를 받아주곤 했다. 고생이 많다며 엄마의 어깨를 쓰다듬는 걸 몇 번 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잠결에 이런저런 어른들의 소란을 느끼며, 누군가가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왔음에 안심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옆집 가족이 갑자기 사라졌다. 내쉬는 숨이 하얗게 변하던 어느 겨울 새벽녘이었다. 동네에서는 그들이 빚을 지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옆집 아줌마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업자한테 빌린 돈의 이자가 산더미처럼 불어난 거라고들 했다. 창문을 열고 옆집을 살피면 챙기지 못한, 혹은 챙기지 않은 몇몇 물건들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의 인사를 받아줄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이후 그 집을 보러 오는 사람마다, 우리집과 이어지는 창문에 대하여 한 마디씩 불평의 말을 던졌다. 그 집에는 새로운 사람이 이사 오지 않았고, 우리도 이내 그곳을 떠났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길에서 옆집 오빠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웃으며 옛이야기를 잠시 했다. 오빠는 내게서 그들이 떠난 뒤 얼마되지 않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오빠에게서 아줌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랬구나, 다들 힘들었겠다."라고 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서로 바라보다가 “안녕”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내게 남아 있는 아주 작은 다정한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그 이상한 집을 떠올린다. 그리고 작은 창문 하나를 공유하며 함께 살았던, 그 따스했던 사람들이 기억날 때면 매번 울컥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찾지 못할, 그리고 우리에게서 사라진 어떠한 것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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