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우울증을 겪은 친구가 있다. 그 시기 친구는 연락도 잘 되지 않았고, 집 앞에 찾아가도 만나기 어려웠다. 현관 앞에서 몇 번이나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조차 없던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문 앞에 조그만 간식을 두고 돌아오곤 했다. 누군가 여전히 너를 기다리고 있단 걸 알리고 싶었다.
“오늘 시간 돼?” 어느 날 뜻밖에도 친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짧은 메시지에 마음이 울렁였다. 매번 닫혀 있던 아주 작은 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예전보다 얼굴이 조금 환해진 친구가 보였다. 그게 몹시도 기뻤지만, 나는 티 내지 않았다. 장난스럽게 친구를 번쩍 안아 들어주고, 먹고 싶은 음식을 물은 후 배달을 시켰을 뿐이었다. 곧 음식이 도착했고, 우리는 텔레비전을 켜서 예능을 틀어놓고 음식을 먹었다. 그러는 내내 친구의 반려견은 우리 사이에 끼어 앉아 꼬리를 살살 흔들고, 배를 보여주면서 애교를 부렸다. 혼자 있는 친구를 10년째 곁에서 지켜주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친구는 이 아이 덕분이라고 했다. 자기는 밥을 먹지 않아도, 죄 없는 강아지를 굶길 순 없으니 억지로 일어나서 밥그릇을 씻고 사료를 채워줬다고. 화장실도 치워줘야 했고, 종종 간식도 챙겨줘야 했다고. 큰 눈동자로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미안해져서 가끔은 어렵사리 나가서 산책도 시켰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여지고 하루가 흘러갔다고 했다. “내가 굴 속에 들어가려 하면, 얘가 자꾸 날 끌고 나가.” 그 말을 하며 친구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친구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털뭉치 반려견에게 고마웠다. 작고 따뜻한 존재 하나가 누군가를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주는 일, 그건 분명 기적이었다.
몇 해 전, 나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왔다. 그전까지 나는 본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위치한 원룸에서 꽤 단출하게 살고 있었다. 식탁 겸 책상 하나, 프레임 없는 매트리스와 나무 옷장 하나 정도였다. 필요한 생활용품의 대부분은 본가에 있었기 때문에, 미니멀로 살아도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본가와 멀리 떨어진 새집으로 가자니 이것저것 새로 구비해야 되는 것이 많았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가지고 싶던 물건도 몇 가지 샀다. 적당한 침대 프레임과 냉장고, 세탁기, 그리고 책상과 따뜻한 조명 스탠드 등을 구매했다.
한동안 새집에는 크고 작은 물품이 배송되어 시끄러울 예정이었다. 걱정되는 건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는 둘째 고양이, 바바였다. 새집에 짐이 다 들어오고 정리하려면 한 달은 걸릴 거였다. 고민을 하다가 엄마에게 사또와 바바를 잠시 맡기기로 했다. “언니가 금방 데리러 올게.” 한 달 뒤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며 사또와 바바의 몸에 얼굴을 비볐다.
이삿날, 텅 빈 공간에 첫발을 디뎠다. 아무것도 없는 집은 참 낯설었다. 아직 물건이 채워지지 않아 휑한 공간에서는 작은 소리로도 메아리가 돌았다. 전화기 너머 가족들은 축하해 주며 말했다. “이제 진짜 너의 공간이란 게 생겼네. 축하해. 이제 행복해한 일만 있을 거야.” 기뻐하는 엄마와 언니의 목소리가 집 안 깊숙한 곳까지 메아리치며 스며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배송 문제가 생겨서 내일 일찍 가져다 드릴게요.
이사 직후 며칠 동안은 세찬 비가 내렸다. 기상악화로 택배는 오지 않았고, 나는 며칠은 이불도 없이 지냈다. 가지고 있던 무릎 담요와 옷가지 몇 개를 꺼내 이불처럼 사용했다. 그나마 큰 무릎 담요를 침대 매트리스 위에 깔고, 두툼한 패딩을 최대한 크게 펼쳐 덮었던 것 같다. 불을 끄고 누우면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정적, 내 호흡 소리마저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조용했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지나치게 고요해서 두려웠다. 온전한 내 공간이 생겼다는 행복보다,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는 공포가 더 크게 밀려왔다. 몇 달 전, 상담가 선생님은 내게 불안 장애와 공황 장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죽음이 코앞에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는 내 말을 들은 직후였다. 새로운 공간의 숨 막힐 정도로 적막함이, 잠잠하던 내 불안 증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미친 듯이 두근 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손을 떨며 밤을 지새웠다.
며칠을 그렇게 지내다가, 나는 계획을 바꿨다. 짐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사또와 바바를 서둘러 데려오기로 했다. 이제 13살이 된 고양이 할머니 사또와 바바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새로운 공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탐색했다. 그리곤 위험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내 종아리에 몸을 비볐다. 그리고 곁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 소리와 온기가 내 마음의 공기를 180도 바꿨다. 숨을 내쉬는 몸이 점차 편안해졌다.
집안 어디서든 내 곁을 지켜주는 고양이 할머니들 덕분에 나는 정말로 점점 괜찮아졌다. 그들의 숨소리와 그릉거림이 내 불안한 마음을 다독였다. 친구의 반려견이 친구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듯, 나의 고양이 할머니들은 내가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새집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었다.
털뭉치 귀여운 반려동물과의 사랑으로 가득 찬 시간을 지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털뭉치들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지. 나는 그 사실을 정말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