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 하고 시픈거 다 하고 사러라!
유명한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가 한 말이다. 사실 대단히 신선한 내용도 아닌데 유독 이 말이 나를 붙잡았다.
하고 싶은 것, 그게 뭘까.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한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살았다.
글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하고 싶다고 말하거나 생각했던 것들은 많았다. 중학생 때였나? 특정 직업군을 다루는 MBC 다큐멘터리가 매주 방영됐는데, 한 번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소개해줬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부터 내 꿈은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타인의 시선을 꽤나 신경 쓰기 시작한 나는 다른 친구들이 의사, 변호사, 선생님, 과학자 등을 장래희망으로 적어낼 때 뭔가 더 있어 보이는 '카피라이터'가 멋져 보였다. 매일 보던 TV 광고 속 임팩트 있는 한 문장을 만드는 직업이라니, 마치 상업용 시인 같았다. 엄청난 아이디어로 단 한 줄 안에 팔고자 하는 물건의 매력을 아주 농축해서 보여주는 시인! 그리하여 추억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 다녔던 신방과(신문방송학과)가 나의 목표 학과가 되었다. 신방과를 가서 광고 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취직을 하는 것이 직업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가지 못했으니 다음 단계를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은 열망이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금강오길비라는 회사에서 AE로 일하시는 분이 학과와 상관없이 대학생들을 모집해 광고에 대해 알려주는 일을 하셨다. 나는 지원했고 운 좋게 선정되어 오길비 회의실에서 수업도 듣고 미션으로 준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때 내가 그다지 아이디어가 아주 번쩍이는 참신한 사람은 아니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학기 동안 모임에 참여하고 그리고 서서히 광고와 멀어졌다.
나는 얼렁뚱땅 4학년이 되었고 진지하게 현실적 진로를 결정할 때가 다가왔다. 다른 친구들은 취준생으로 스펙을 스피디하게 쌓아나갈 때 나는 토익 하나 따 놓고 고민만 하고 있었다.
요즘식으로 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INFP다. 다들 조금씩 다르게 이해하겠지만, 내가 판단한 나는 쓸데없지만 재밌는 생각을 좋아하고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내향인이다. 벌써 아득한 나의 대학생 시절에는 MBTI가 유행하지 않았지만, 그때도 이미 나는 나를 이런 정도의 느낌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원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술을 한잔도 마시지 못한다. 그럼 회식자리에서는 어쩌지? 일만 죽어라 하고 상사가 주는 술 한잔 마시지 못해 계속 눈밖에 나려나? 과도한 상상이 회사원은 안 하고 싶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그러면 카피라이터는? 그 역시 회사원이라는 것을 오길비에서 알게 되었다. 20대 중반, 지금 생각하면 아주 창창한 나이에 벌써 나는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생겨버렸다.
수익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하고 퇴근은 빨라야 하며, 쉬는 것도 보장된 직업!
그래, 교사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대학을 갔다. 사범대학교에 편입한 나는 새롭게 바뀐 나의 꿈인 교사가 되기 위해 나름 열심열심 공부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늦었다고 생각하니 더 빠르게 한방에 합격을 해야 한다는 강박과 함께 나는 하면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몰아붙였고, 딱 삼 세 번만 해보자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패했다.
결국 나는 카피라이터도 교사도 아닌 그냥 회사원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과 복리후생이 달콤했고 다행히 전공을 살려 일을 할 수 있었기에 과거에 헛짓거리만 한 게 아니었다며 위안 삼았다. 물론 지금 하는 일도 나름 성취감도 있고 재밌다.라고 가끔, 아주 가끔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왜 하고 싶은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을까? 하고 싶은 것들마다 족족 실패를 해서일까?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을 직업,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는 것,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취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 이런 것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아기를 낳고 육아를 해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커피숍에서 그냥 아무 일 없이 책이나 한 권 들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는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 살아볼지 모르지만, 자연경관이 멋있고 날씨가 좋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 가족과 함께 여행도 자주자주 가고 싶다.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솔직히 전공인 국어보다 영어 공부가 더 재밌다.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멋있다. 그리고 나는 글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 말은 글쓰기를 꾸준히 잘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리고 낮잠을 퍼질러 자고 싶다. 아주 늘어지게. 여유롭게.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봐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나 많다.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도 꽤나 많다.
2024.09.10.
글쓰기를 하고 싶은 오늘 하고 싶은 거 함.
대문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