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가 소멸한 세상에서

by 윤이

어렸을 때 바둑, 장기, 체스를 좋아했다. 규칙에 따라 돌과 기물을 놓는 재미가 있었다. 부루마불 같은 보드 게임도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컴퓨터 게임도 좋아했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동시에 출발해 공정한 승부를 가르는 일이 주는 쾌감. 상대를 누르고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의 만족감.


조금씩 생각이 깊어지면서 그 위, 그 너머의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 출발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언제 출발했냐와 얼마나 빨리 달렸냐의 문제가 뒤따르는 일이었다. 조훈현, 이창호, 가리 카스파로프, 마그누스 칼슨, 임요환, 홍진호, ... 같은 출발선에 섰다는 것은 이들을 따라잡는 일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동네 1위, 지역 1위, 전국 1위, 세계 1위의 그늘 아래에서.


공부 역시 그랬다. 정해진 규칙 사이에서 열심히 뛰어 모두를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가는 일. 서울대와 고려대와 연세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기업과 멋진 동반자와 막대한 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달려야 한다, 이 인파를 가르고 나아간 끝에 비로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그럴 것이란 신념을 갖고 나아가야 했다.


그런 신념을 갖게 하는 구조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신념은 실체화하여 정말로 우리에게 차등의 보상을 주었다. 가장 먼 거리를 달려온 사람에게는 1등 보상을, 한참 뒤쳐진 누군가에게는 참가상을, 팡파레와 폭죽은 '우월한 소수'에게만 허락되곤 하는 전유물과도 같았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이 급부상하면서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다. 인간을 압도해가는 인공지능. 현시점에서 이미 인공지능을 바둑과 체스와 공부 면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선천/후천적 능력에 기반을 둔 '우월한 소수' 개념이 해체되고,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여 삶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이제 바둑과 체스와 공부의 권위자는 사라진다. 그야말로 즐기는 영역으로 나아갈 것이다. 권위자의 한 수보다는 그 사람의 진지한 표정과 발자취가 중요하다. 결국 사람의 권위보다 사람의 태도와 자세가 남는다. 박학보다 심학이 남을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 1864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딸깍 한 번으로 정리될 일을 살피는 것을 넘어, 사람의 내면 세계를 넓히는 양식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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