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by 윤이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옛날 할머니께서 나에게 잘 해주셨던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고 알고 있었는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멍하니 지금 해야 할 일을 했다, 연구소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둘렀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넥타이는 검은 외투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터미널로 향하며 몇 자리 남지 않은 버스자리를 예약했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올라 안전벨트를 맸다, 도착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때에 정류장에서 내려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까지 걸었다,

늦겨울 어둑한 낯선 길을 걷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오는 내내 나는 슬픔보다는 공허함 속에 내던져진 것 같아 두려웠다, 그 공허함은 이내 먹먹함과 떨림을 불러왔다,

상실은 공허하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누군가가 사라지면, 나의 가족, 친구, 지인, 지인의 지인, 그의 빈 자리는 공허에 삼켜진다,

나는 그 공허를 본다, 나의 가족, 친구, 지인, 지인의 지인과,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될 나의 공허까지,

되돌릴 수 없는 공허의 크기만큼, 우주는 끝없이 팽창한다, 그들은 우주의 공허 어딘가에서 자유로이 부유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괜찮다, 기막힌 인연으로 여러 물질이 한데 모여 거대한 우리를 만들고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으니, 누군가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고 마냥 그를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제인가 우리는 함께 공허를 천천히 헤엄칠 것이므로, 적어도 이 찰나와 같은 먹먹함과 떨림은 오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메모를 보낸다, 전자세계에 흩어질 낱말들아, 외할머니와 나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과 지인의 지인과 모든 삶과 그리고 나의 공허에 잘 닿기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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