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읽는다는 것

by 윤이

여느 때와 같이 되도 않는 문장을 휘갈기고 있었다.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총동원해 하늘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땅에 주저앉히려 용을 쓰는 시간들. 손에 쉽게 잡히지 않아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가까스로 끌고 내려온 생각이 총알처럼 튕겨져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허무하고 허무하다.


공부하는 사람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 노다공소, 노력을 힘껏 해도 결과로 내보일 수 있는 게 적은 날이 많다. 그런 일상을 견디면서 작은 파편들을 모아 좀 찌그러지고 여기저기 금이 간 도자기 하나를 만든다. 그 불완전한 도자기 하나에 담긴 애틋한 마음이란.


그런데 어느 논문을 살피다가 덜컥,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내 이름을 보았다. 내 찌그러진 도자기가 여기에. 놀라움에 뒤따르는 것은 기쁨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초학의 글이 다른 연구자의 글에 논거로 활용되어도 괜찮을까. 난 그만큼 꼼꼼히 자료를 살피고 글을 써왔을까.


글을 아주 오래 손에 쥐고 다듬고 다듬어도, 여전히 모자란 부분이 계속해서 눈에 띈다. 심지어 이미 공간된 글을 다시 볼 때에도, 아쉽고 부끄러운 마음은 쉴새 없이 밀려온다. 내 이름을 보면서 그 부끄러움에 한동안 침잠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럼에도 써야 한다. 내 미진한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찌그러진 도자기 하나 빚기 위해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그 엉망진창의 공부가 초라하더라도 언제 어디선가에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내 미숙함에 지쳐 바닥을 전전하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글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다시금 노다공소의 장에 기꺼이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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