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마주하는 마음

by 윤이

책상 앞에 앉아 하염없이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연구자가 있다. 무엇을 보고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일단은 무어라도 해야 하니 기어코 의자에 앉아 이리저리 글자 사이를 헤매고 다닌다.

글자들 안에서는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지역민이 관리의 선정을 칭찬하며 만인산(萬人傘)을 만들어주는 모습, 그 관리가 지역민의 난동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며 파직되는 모습, 누가 잘못했다며 욕하는 사람, 그걸 점잖게 꾸짖는 어른, 그러니 그 어른을 욕하는 사람, 예기치 않은 화재로 집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 여기서는 못 살겠다며 강 건너 국경 밖 외지에 나갔는데 험한 일을 당하며 억울해 하는 사람들, 국경 밖으로 나간 죄가 있어 돌아오지도 못하다가 이를 용서해주겠다는 말에 울며 돌아오는 사람들...

묵묵히 이 광경을 지켜본다. 수백의 삶이 몇 개의 글자에 담겨 있다. 또다른 글자에는 수천, 수만의 삶이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삶이 가득한데, 그 삶은 많은 경우 잊혀지고 다만 몇 개의 글자만 남았다.

역사를 연구한다는 건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함인데, 역사를 읽을수록 그들을 연구대상으로 바라봐야 하는 연구자로서의 나와, 그들은 언제 어디선가에 살아갔던 또다른 나라는 감정적인 나, 둘 사이를 오가면서 사실 '인간 이해'라는 게 과연 실현 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인지 회의가 가끔 든다.

그런 먹먹함을 갖고 있던 차에, 그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어느 사료를 펼쳤다. 읽다가 아래의 글을 보았다.

"이로부터 증거로 삼을 만한 문헌이 있게 되었으니, 먼 훗날 역사가들이 혹시라도 여기서 취할 것이 있다면, 아마도 풍속을 살피고 사실을 기록하는 데 하나의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自此有文獻之可徵, 而異日掌故氏, 或有取焉則庶爲探風紀實之一助也否)"

아, 그랬지. 나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많은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따뜻한 애정을 갈망하기도, 냉철한 비판을 기대하기도 한다. 나는 과거에 살아갔던 사람들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 그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단단한 균형을 찾아 사료를 잘 가다듬어 우리 삶에 의미 있는 글을 써내야 한다. 능력이 부족해 그런 글을 써내지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안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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