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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인 Nov 04. 2015

마션

우주 미아의 명랑한 화성 생활 일기

  국제 미아를 넘어, 우주 미아가 되어버린 한 남자가 있다. <마션>의 마크 와트니다.


  마크 와트니는 어느 날 화성에 혼자 남겨진다. 말이야 쉽지,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국제미아가 되어도 눈 앞이 깜깜할 텐데 우주미아라니. 스케일도 남다르다.


  마크 와트니가 혼자 남겨진 화성에는 물도, 공기도, 땅도, 심지어 사람도 없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이 사는 동네가 바로 옆이라는 점이다. 지구라는 행성인데 약 70000000km 떨어져 있다.


  한 마디로 좆된 거다. 누가 뭐래도 확실히 좆됐다. (작품 속 표현)



  <마션>은 이런 상황에서도 생존해 가는 '화성의 왕' 마크 와트니의 명랑한 화성 생활을 그려나간다. 사실 이 점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명랑할 수 있다는 것. 이미 마크 와트니라는 캐릭터가 정상은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라면 어땠을까. 물론 사나이답게 현실과 상황을 직시하고 차분하게 운명을 받아들여 남은 여생을 사과나무나 심으며 (화성에서는 사과나무가 자랄 수 없지만) 보내기는 개뿔. 하늘에 대고 각종 신들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눈물 콧물을 질질 쏟아내겠지.


  하지만 마크 와트니는 달랐다. 산소 발생기가 고장 나  질식사하든가, 물 환원기가 고장 나 갈증으로 죽든가, 막사가 파열되어 그냥 터져버리든가,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식량이 떨어져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그는 아주 명랑하게 화성에서의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낸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



  기본 설정부터가 참담하기 그지없는 <마션>이라는 작품에서 마크 와트니라는 캐릭터의 존재감은 단연 빛을 발한다. 그럴  수밖에 없지만. 왜냐하면 이 작품은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옆동네에 사는 지구인들의 도움이 간혹 등장하긴 하지만 결국 생과 사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마크 와트니 본인의 몫이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막상 지구인들은 별로 한 일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마크 와트니에게 남겨진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으니, 그와 함께 화성에 남겨진 건 바로 그가 가지고 있 '지식'이다. 전국에 초 중학생, 나아가 고등학생 아들·딸을 두고 있는 부모님이라면 이 작품을 반드시 아이와 함께 보시길. <마션>은 그야말로 "배워야 산다"라는 주제를 아주 명확하게, 그리고 아주 단호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문계냐 이공계냐로 고민하고 있을 많은 분들, 이 작품에는 그 명확한 답이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이 과연 나에게도 일어날까를 물을 순 있겠다. 뭐 안 일어나리란 법도 없지. 마크 와트니라고 자신이 화성에 홀로 남겨질 줄 알았겠는가?


  일찍부터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고 과학과 수학을 멀리했던 나에게 이 작품에서 나오는 각종 과학 용어와 지식들은 참으로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 처음에는 '흥, 그까짓  거'라고 생각하던 게 나중에는 멋져 보이기까지 하더라. 제길. 부러우면 지는 거랬던가. 난 이미 루저였다. 그렇다고 절망 할 필요는 없다. 친절하게도 작품 속에서 마크 와트니는 과학 용어와 지식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까. 하지만 기억하자. 우리들은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설명이 나빠서 혹은 불친절해서 못 알아먹던 게 아니다.


  이랬든 그랬던 저랬든 어쨌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 작품은 꼭 그렇지도 않다. 과학적 지식이 없으면 화성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지 몰라도 이 작품을 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살아남는 건 내가 아니라 마크 와트니니까. 단순한 이유다. 애초에 과학적 지식이 이 정도로 없으면 화성에 갈 일도 없다. 다른 사람의 쌩고생을 지켜보는 꼴이지만 그것이 상당히 유쾌하고 재미있다. 이러면 나쁜 놈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음을 이 작품을 본 이라면 묘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왠지 모르게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그렇다면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나? 그것이 바로 마크 와트니가 발하는 빛이다.



  이 자리를 빌려 <마션>의 원작 소설을 선물해 준 이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보낸다. 정말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아이의 선물 센스는…… 그만큼 표현하지 못해 매번 미안하지만.


  사실 영화 따로, 소설 따로 감상평을 남겨두고 싶은 작품이었으나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원작 소설까지 모두 읽은 후였다. 둘 다 보면 가장 좋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겠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냥 꼭 둘 다 보시라. 쉽고 간편하게 보기야 단연 영화 쪽이 좋겠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또 그만큼의 대가를 누릴 수 있을 테니.


  여기 혼자만 보기는 조금 아까운 일기가 있다. 어느 날 화성에 홀로 남겨진 남자가 쓴 일기인데, 엿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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