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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lbi Mar 03. 2022

주택청약


엄마는 내가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마자 주택청약을 넣으라고 했다. 그래서 난 평생 한국에 살지 안 살지도 모르는데 왜 벌써부터 여기에 집을 사냐, 벨기에에 가서 살 수도 있지 않냐, 고 했다.


보험도 그렇다. 이십 년 동안 매달 일정한 금액을 꼬박꼬박 내는 건,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이상해 보였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행여 다른 나라로 유학이든 이민이든 가게 되면 해지하고 상환도 못 받을 텐데.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사는 게 나에겐 하나의 가능성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당장 떠올릴 수 있는 변수만 생각하더라도 이십 년짜리 계약을 맺는다는 것은 나에겐 정신이 아득해지는 개념이었다.


난 오 년, 십 년, 이십 년 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5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라’ 같은 질문이 제일 싫었고,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씨알머리 없는 짓으로 보였다. 내일조차 알 수 없는데 무슨 언감생심 몇 년씩을 내다보겠다는 걸까. 다들 본인을 그 정도로 믿는 건지 하여간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고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주택청약과 보험도 몇십 년을 묶는 일이기 때문에 가까이 가기 싫었다.


내가 이렇게 장기적인 계획이나 약속 같은 것을 믿지 않게   아마 불안정한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놀랍게도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처음엔 전혀 다른 방향의 전개를 생각했는데 갑자기  앞에 유년 시절이 ‘하고 떨어졌다.


엄마 아빠의 이혼이나, 재혼이나, 두 번째 이혼이나, 아빠가 오빠를 내쫓은 일,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있기 전 열세 살 때까지 살았던 그윽한 아파트 단지, 내 어린 시절을 받쳐 주었던 그곳이 앞으로의 일을 예고라도 하듯 전부 부서져버리고 그 자리에 각진 재건축 단지가 들어선 일까지, 죄다 내 기반을 송두리째 흔든 것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럴수록 더 단단히 대비하고 준비하는 경향을 키우기도 할 텐데, 난 그쪽이 아니었던 거겠지.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도모하는 일은 다 공허하고, 연약하고, 내 약속과 믿음이 배신당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그래서 내 기저에는 미래에 대한 어떤 사소한 확신도 유예하는 태도가 자라게 된 게 아닐까.


하지만 삼십 대가 되니 그래도 좀 길게 보고 기반을 다지는 일이 필요하게 느껴진다. 경력을 쌓아야 하고, 돈을 모아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집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한 번에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대책 없이, 뭔가를 해보겠다는 결심으로부터 도망치며 살 수는 없다. 어렸을 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밑바닥이 무너졌을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웬만하면 다 내 선택에 따른 결과일 테다.


얼마 전 엄마는 다시 주택청약에 가입해 다달이 십만 원씩 무조건 부으라고 했다. 몇 년 전 내가 벨기에 운운할 땐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처럼 들렸지만, 이제 엄마가 보기엔 계속 한국에 있을 것 같다는 거다. 일리 있는 말이다. 몇 년 전엔 코로나도 없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굴비’도 입양하기 전이었으니까.


이 글을 썼으니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해 볼 여지를 갖게 됐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왜 그렇게 미래지향적인 가치에 거리를 느껴왔는지, 나를 더 이해하게 된 것만으로도 마음 속 방이 확장된 느낌이다.


이번 달부터 십만 원씩 부어볼까.






2022.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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