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금만 여유 있게 살아요.
카페 근무 경력이 약 5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여느 직업도 그렇겠지만, 카페에서 일을 하면 아주 다양한 인간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건 다음에 차차 풀어내도록 하겠다.)
카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는 무엇이냐 묻는다면.
부동의 1위는 바로 아메리카노.
아메리카노는 고온의 압력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 1-2샷을 정수에 넣어 만든 것으로
뜨거운 물에 넣으면 부드러운 크레마가 올라간 따듯한 아메리카노, 얼음이 담긴 시원한 물에 넣으면
눈이 번쩍 뜨이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일명 아아가 완성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커피는 사치품이 아닌 이제는 어린아이 빼고 모든 이가 즐기는 음료, 어쩌면 살아가는데 정신을 깨우기 위한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요즘은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도 커피를 입에 달고 산다고 하니 그것은 꽤나 마음 아픈 일.) 물론 맛으로 즐기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시중에는 다양한 맛의 원두가 판매되고 있으며, 커피는 좋아하지만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을 위해 카페인을 제거한 디카페인 원두도 나와있으니.
카페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는 아무래도 아침 출근시간과 점심시간, 그리고 저녁식사 이후 19-20시 정도.
카페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한 카페들은 대부분 아침 출근시간이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그 시간대에는 열에 여덟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사람들의 피곤한 아침을 깨우기 위한 물리적인 포션(게임이나 판타지에서 체력을 회복하거나 능력을 올려주는 액체.)이 될 것이다.
아메리카노. 사람들은 물에 커피만 넣으면 되는 거 아니야? 제일 빨리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이제부터 아메리카노의 핵심 재료인 에스프레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한다.
내가 바리스타학원에서 배운 고품질의 에스프레소의 정의는 "곱게 분쇄된 약 18g의 원두를 사용해 9 bar의 펌프압력으로 25~30초 동안 약 36~40g을 추출한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카페마다,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에 따라 모두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반자동머신에 추출값을 세팅해 두었기 때문에 버튼 하나로 일정한 맛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지만 기계도 언제나 늘 정확할 수만은 없는 법. 하루에 수십 잔, 어쩌면 수백 잔을 뽑아내면 머신도 완벽할 수 없지.
출근시간에 빠르게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다 보면 커피의 맛보다는 속도와 정확도에만 신경 쓰게 된다.
대면주문과 키오스크 그리고 어플주문, 다양한 메뉴를 감당하고 있으면
내가 기계가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모든 값이 세팅된 머신을 사용하면 꽤나 간단한 과정으로 커피를 만들어낸다.
자 주문이 들어온다. 아메리카노 2잔 하나는 따듯하게 하나는 차갑게.
컵에 물을 받는다. 따듯한 물 한잔, 정수 한잔. 아이스는 정수가 담긴 컵에 얼음 가득.
그라인더에 포터필터를 장착하고 누르면 정해진 양의 원두가루가 담긴다.
탬핑기로 원두를 일정한 힘으로 눌러주고 머신에 장착.
에스프레소 머신의 버튼을 누른다. 에스프레소 추출, 컵에 담고 각자 맞는 뚜껑을 덮는다.
컵홀더를 끼운 뒤 필요하다면 캐리어에 담고 손님에게 전달.
어쩌면 손님이 계산한 카드를 지갑에 넣고 의자에 앉기도 전에 커피를 받아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손이 많이 가는 머신을 사용하는 매장이라면...?
모든 과정마다 저울을 이용해 계량해야 한다.
그라인더로 원두가루를 추출한 뒤 넘치는 양은 덜어내야 하고, 부족한 건 더 담아내야 하고
탬퍼로 포터필터에 소복이 담긴 원두가루를 일정한 힘으로 눌러내어 추출 시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해야 하며, 머신에 장착 후 추출버튼을 누르고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시간을 계속해서 확인한다.
똑같이 잔에 물을 담고 에스프레소를 넣어 뚜껑을 닫은 뒤 컵홀더를 끼워 전달하면
내 커피 언제 나오나 봐 안을 기웃하는 손님과 어색하게 마주치기도 하지.
확실히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만 그만큼 신경 써서 내리기 때문에 음료의 맛도 일정하고, 제공하는 사람도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이유는.
아메리카노는 그냥 검은 쓴 물, 잠을 깨우는 각성제 정도로 생각하고 마시는 세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의 여유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아메리카노는 처음에 묵직한 쓴맛이 입안을 감싸지만 목으로 넘기기 전에 향과 넘기고 난 후의 입에 남는 맛. 원두의 특징을 느끼기 아주 최적화된 음료이다. 향을 가만히 느끼고 있노라면 바쁜 하루 중에서 한숨 쉬고 가는 템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아 오래 걸리나요? 바로 나오나요?
생각보다 꽤나 듣는 말이다.
고객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샷이 추출되고 있어요.
저는 고객님께 맛있는 커피를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아주 잠깐만 숨을 고르며 기다려주시겠어요?
이 말을 다 하지는 못하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며 아메리카노를 전한다.
Q. 당신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기다려볼 여유를 가져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