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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키키 Apr 20. 2020

김치볶음밥

완벽에의 충동 

이런 날이 가끔 있다. 회사에서 월차를 쓰고 하루 쉬는 날 일하러 가는 아내를 배웅한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의 밥을 다 먹이고 아이가 놀아 달라고 하면 온 몸으로 놀아준다. 아이가 낮잠을 자면 밀린 집안일을 한다.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씻고 잘 준비를 하면 아내가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오늘은 아빠로서 또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육아와 집안일을 모두 완벽하게 혼자 마무한 날이다. 아내는 오늘 고생했다고 하며 칭찬을 해주려는 찰나 싱크대 배수구에 음식물이 남아 있는 걸 보고 한마디를 한다. 저녁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처리를 깜빡했던 것이다. 설거지 마무리가 안된 것 때문에 오늘 하루의 수고는 알코올 100% 손세정제처럼 순식간에 날아간다. 마지막 한 수를 잘 못 놓아 대국을 말아먹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은 정말 많다. 


지난 주말에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봤다. 먼저 재료를 손질한다. 김치 한 컵을 가위로 잘게 썰어준다. 대파는 뿌리 부분 한 개 정도를 반으로 갈라서 잘게 잘라 준다. 소시지는 2개 정도를 얇게 썰어준다. 팬에 기름 3큰술을 두르고  파와 소시지를 노릇할 때까지 볶아준다. 그리고 김치를 넣고 볶아준다. 설탕 1/3 큰술, 간장 한 큰 술을 넣고 조금 더 볶아준다. 그리고 불을 끈 다음 밥을 팬에 쫙 펴서 눌러준다. 그리고 다시 불을 켜서 볶아주면 끝. 노른자를 안 터트린 계란 프라이는 필수. 


요리를 다 끝낼 무렵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볶음밥 마지막에 버터를 넣으면 버터의 풍미 때문에 더 맛있지 않을까? 리스크를 줄여야 하니 일단 반 정도는 미리 덜어놓은 다음 버터 3큰술 정도를 넣고 다시 볶았다. 버터 향이 확 올라온다. 아내한테는 미리 덜어낸 기름으로만 볶은 김치볶음밥을, 나는 버터를 넣은 볶음밥을 먹었다. 버터 김치볶음밥은 버터 향 때문에 고소함이 더 해졌다. 그런데 버터향 때문에 다른 재료의 맛이 줄어드는 듯했다. 맛은 없지 않았지만 노릇하게 볶은 김치와 소시지의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에게 준 일반 김치볶음밥을 넣으니 더 맛있었다. 버터를 넣은 나의 한 수는 '신의 한 수'가 아닌 '신의 물림 수' 같았다. 마무리의 중요함은 요리에서도 이렇게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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